도망은 답이 아니었다 (4)

차갑고 매웠던 수련회

by 박태초


아침은 밝아왔고 몸은 여전히 꿉꿉했지만

정신은 이상하게 차가웠다.


그렇게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그래, 오늘만 버티자. 내일이면 집에 간다.’


낮 동안의 활동은 거의 정신력으로 버텼다.

도저히 버티기 힘들 때는 보건실에 가 있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시간을 넘겼다.


하지만 체력은 이미 한계였다.


크디큰 급식실에서 혼자 식판을 들고

밥을 먹을 용기는 나에게 당연히 없었고,

대신 매점에서 사탕을 사서 최대한 버텼다.


마침내 수련회의 마지막 저녁 레크리에이션,

당연한 순서처럼 캠프파이어가 시작되었다.


보건실에 있었던 나는

보건 선생님이 이건 참여해야 한다며

나를 보냈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도착한 곳에서는

당연하게도 내가 낄 자리는 없었다.


간혹 그 아이들이 입에 올렸던

남자아이들이 어디 있다가 왔냐고 물었지만

더는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저 빨리 끝나서

점호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점호를 기다린 이 날

지금까지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진짜 지옥과 내 인생 가장 길었던 밤의 시간이었단 것을

나는 곧 알게 되었다.


점호가 끝나고

어둠이 찾아왔다.


나는 계속된 스트레스와 체력의 한계로

선잠에 들었다.


그때였다.


피부에 닿는 차갑고 매운 감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은 뜨지 않았다.


가만히 촉감에만 집중해 보니

제일 처음으로

귓가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다음 얼굴과 손등, 발등에는

형언하기 힘든 차가운 액체가 느껴졌다.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화한 향.


나는 직감했다.


‘아, 치약을 뿌리고 있구나.’


깨어 있다는 걸 들키기엔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다.


하지만 한계였고, 따가운 피부에

몸을 뒤척이는 척하자

아이들은 놀란 듯 방 밖으로 달아났다.


아이들이 나간 걸 확인한 뒤

나는 안경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시력이 나쁜 내 눈 반경 속

머리맡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듬더듬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거울 속 내 모습을 마주했다.


‘아.. 정말 빵점짜리 도망이었구나.’


울면서 치약을 닦아내는 내내


치약이 매워서 눈물이 나는 건지

내가 불쌍해서 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치약은 다 닦였는데도

화하고 따끔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잠도 당연히 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눈물조차 마음 놓고 흘리지 못하는

고요하고 어두운 방 안.


나는 그곳에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아마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을 거다.

창문 밖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어두웠던 방 안의 시야가 조금 트였을 쯤에

아이들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 닦여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그 서브 여주인공이 속삭였다.


“야, 얘 씻었다. 눈치챘네.”


차라리 그 말투가

놀란 듯한 당황스러움이었다면

내 상처가 조금은 덜했을까.


하지만 귓가에 들려오는

재밌다는 듯한 웃음소리에


나는 열다섯의 나이에도

명백한 ‘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날 새벽 나는

빨리 알람이 울려라


눈을 뜨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뜬눈으로

긴 밤을 지새웠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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