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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뾰족한 것Soft, pointed》

함수지 개인전, TYA 갤러리

by 희수

보통 꽃하면, 화려하고 채도 높은 장미나 해바라기와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함수지가 그려낸 꽃들은 대체로 채도가 낮고 우리가 흔히 접하기 어려운 종들이다. 채도가 낮은 검은색 꽃들은 아름답기보다는 억세 보인다. 또한 <부드럽고 뾰족한 것>(2023)시리즈에서 보이는 검은 꽃 주변을 둘러싼 줄기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보겠다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부드럽고, 뾰족한 것Soft, pointed》(2023)에 전시된 작품들은 함수지가 이전에 선보였던 채도 높은 <라즈베리raspberry>(2022) 시리즈와 확연히 대비되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이번 《부드럽고, 뾰족한 것Soft, pointed》(2023)은 함수지가 식물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술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는 식물은 함수지에게 있어 단순히 식물 그 자체로 인식되지 않는다. 함수지에 따르면 “식물은 사람과 닮은 모습이 있고 그중 인간의 욕망이라는 ‘감정’과 ‘말’이 가장 많이 닮았다.”라고 한다. 식물은 스스로 느끼고 표현할 수 없는 대상이다. 그럼에도 함수지는 이 두 가지가 닮았다고 언급하는데, 이는 작가가 시각과 촉각을 통한 식물과의 감각적 접근에서 비롯된다.

먼저 인간의 욕망은 시각적 접근과 관련되어 있다. 함수지는 인간의 욕망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 SNS라고 언급한다. SNS는 금전적 과시나 자극적인 쾌락을 한 장의 사진으로 드러낸다. 욕망은 전염성도 강해 삽시간에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그 욕망이 자신의 욕망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그렇게 그들은 반짝이는 여러 욕망의 색들이 흡수되어 자신의 원래 색을 잃어버린 검은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검은색 식물들이 그려져 있는 <부러움을 먹고사는 사람들>(2022)와 <검은 꽃>(2023)시리즈는 이처럼 자신의 본연의 색을 잃어버린 누군가의 모습을 표상한 것이다. 검정 꽃은 원예가의 인위적인 재배 끝에 제작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인위성에는 분명 식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그렇게 탄생한 검은 꽃은 마치 욕망하는 인간의 군상과도 같다.

작가는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적 접근을 통해서도 식물과 사람을 연결시킨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말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위로를 건넬 수 도 있을 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다. 함수지는 이러한 말의 양면성은 눈으로 보았을 땐 유약해 보이지만 직접 만져보면 따갑고 생각보다 단단한 외형을 가진 꽃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부드럽고 뾰족한>(2023)시리즈에서 보들보들 해 보이는 줄기들은 부드럽고 약해 보인다. 하지만 직접 이 꽃을 만지는 순간, 부드러워 보이는 줄기들은 따가운 감각을 전하고 손에 상처를 입힌다.

<베려하는 마음>(2023) 역시 부드럽고 몽환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들 속에 뻗어있는 얇은 줄기가 날카로워 보인다. 이는 배려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상대의 마음을 ‘베는’ 말이 될 수 있다는 말의 양면성을 표상한다.

식물은 스스로 사고하고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함수지의 작업은 식물도 인간과 닮아있는 존재로 표현하며 식물을 공존하는 대상으로 접근한다. 《부드럽고, 뾰족한 것Soft, pointed》(2023)는 이처럼 인간중심적인 이성적 사고에서 벗어나 식물과의 감각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경험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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