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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8082300-N31082300》

김가민 초대전 2023.08.18. - 2023.08.31

by 희수

평범한 물체가 특별한 물건으로 바뀌는 순간은 그 물체에 특별한 애착이나 추억이 깃든 순간일 것이다. 《N18082300 - N31082300》는 평범한 물체가 작가의 사유 안에서 특별한 것으로 거듭나는 순간을 선보인다. 김가민은 평범한 대상이 가진 물성과 특징을 전복시켜 대상의 기표와 기의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린다. 이는 작가와 대상 사이의 일련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의 기억 속에 ‘평범’하게 자리잡은 대상에 작가의 사유가 담긴 기의를 통해 ‘특별’한 순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전시장에 놓인 라이터나 벽돌은 우리에게 익숙한 오브제들이지만, 이는 물성의 변화나 원래 사물의 쓰임새와는 다른 방식으로 제시된다. <제 4의 벽>(2023)은 흔히 볼 수 있는 붉고 단단한 벽돌이 아니라 하얗고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석고로 만들어졌다. 단단하고 견고하게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으로 변모된 벽돌은 본래 벽돌로서의 역할을 잃고 더이상 벽돌이 아닌 상태이다. 김가민은 이 오브제에 ‘방어 기제’라는 새로운 기의를 붙여 넣는다.

방어 기제로써의 벽돌은 차곡차곡 쌓여 벽이 된다. 벽돌이 벽이 되기 위해서는 균형있게 서로를 버티고 맞물려 있어야한다. 그렇기에 이를 방어 기제라는 대상으로 본다면, 누군가의 방어 기제가 서로 적당한 힘을 가하며 균형있게 버티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방어 기제로 구성된 벽이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 이상적이고 균형적이게 놓여있는 상태가 마치 인간 관계와도 같다. 이처럼 <제 4의 벽>(2023)는 견고히 쌓여져 있는 단순한 벽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 군상 처럼 보인다. 


김가민의 대상에 대한 특별화는 물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작업 일기>(2023)는 1월부터 3월까지 특별함 없는 일상에 자신의 지표(index)를 남긴 작업이다. 작품은 달력처럼 각각 칸이 나누어져 있고 그 위에 조그만 석고 인형들이 붙어있다. 칸 위에 놓인 인형들은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했던 것을 기록하는 표식이다. 이처럼 표식을 남긴다는 것은 자신이 “여기 있었음”을 증명한다. 김가민은 작가로서의 삶을 기억하고 자신의 지표를 통해 2023년의 1월부터 3월까지를 하루하루 특별한 날로서 탈바꿈 시킨다.


현대 사회 속 우리는 공장에서 찍어낸 똑같은 물건을 사용하고, 레시피가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 같은 것을 쓰고 같은 것을 먹는다는 것은 마치 성분이 똑같이 들어찬 존재들 같다. 김가민은 이러한 평범하고 의미없는 대상을 마주하고 고찰하여 사실은 그 존재들은 서로 다르고 특별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평범한 대상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물체와 사람 사이의 하나의 관계 맺기가 발생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비인간의 존재들과 우리는 각자 어떠한 위치에서 서로를 인식하고 관계 맺기를 하고 있는지 되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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