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들>을 보고
교사는 아니지만 체육수업을 지도한 경험이 적잖게 있다. 현재도 3년째 같은 초등학교에서 토요 스포츠 ‘티볼’ 수업 강사를 한다. 티볼은 야구를 변형한 종목으로 투수가 없다는 게 특징이다. 거치대에 공을 올려놓고 치고 달리는 방식이라 경기에서 타격이 가장 중요하다. 반면 나는 팀 편성을 제일 중요시한다. 아이들의 경기력 향상보다 공정한 선발과정과 대등한 팀 편성에 정성을 쏟는다. 왜냐하면 편짤 때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업 지도 초기엔 티볼 반장 보고 팀을 뽑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친한 애들 위주로 뽑아버렸다. 다음번에는 내가 눈여겨본 아이 두 명에게 가위바위보를 하여 자신의 팀원을 뽑는 방법을 취했다. 그 결과 상당히 대등한 전력으로 팀이 나뉘었으나 선발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잘하는 순서대로 뽑다 보니 마지막까지 뽑히지 못한 아이가 홀로 남겨지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그 아이는 손톱과 손톱으로 손톱에 때를 빼듯 만지작거리는 자신의 손가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이 호명되자 해당 팀 몇몇 애들은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잡거나, 콧구멍이 정면으로 보일 정도로 고개를 뒤로 저치며 “아 재랑 같은 편 됐어, 아 재 있으면 지는데”와 같은 원성을 뱉었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그 아이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다음 수업부터는 반 번호 홀짝으로 나누기, 제비뽑기, 카드 뽑기처럼 실력과는 전혀 무관한 팀 선정 방법을 썼다. 하지만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팀이 편성될 때 대부분의 아이들이 불만을 터트렸다. 다른 방법들을 시도해봤으나 아무리 해도 애들끼리 편 나눈 것보다 대등한 전력의 팀을 구성할 순 없었다. 그나마 불만이 가장 적게 나오는 팀 선정방식은 수업하기 전 내가 노트에 각 팀 명단을 오름차순으로 적은 뒤 수업 시간에 발표하는 거였다.
그런데 최근 다시 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 일이 생겼다. 영화 <우리들> 때문이다. <우리들>의 첫 장면은 초등학교 4학년 체육수업 피구 시합을 하기 전 편을 나누는 상황이다. 팀 구성은 각 팀의 팀 주장을 맡은 아이의 몫이다. 각 주장은 가위바위보를 하여 한 명씩 호명을 한다.
이때 화면은 주인공 선이 얼굴로 가득하다. 선이는 자신의 얼굴 사이로 오고 가는 반 아이들의 이름을 비눗방울 보듯 따라간다. 선발된 이름이 많아질수록 선의의 얼굴은 굳어진다. 결국 선이는 마지막까지 남겨진다. 선이를 뽑을 수밖에 없는 팀 주장은 상대편 주장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한다. ‘너희 팀이 잘하는 애들을 다 데려갔으니, 선이를 다른 아이와 바꾸자’는 거다. 상대편이 거절하자, 거절당한 주장은 마치 베스킨라벤스 31 게임에서 벌칙이 주어지는 마지막 숫자를 부르는 것 마냥 선이의 이름을 부른다. 앞서 소개한 내 사례와 데칼코마니 같지 않은가. 놀라운 건 이 장면 재생시간이 2분도 채 안 된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체육교사를 하고 있는 지인들한테 위 장면을 설명했다. 현장에서도 위와 같은 팀 편성 방식을 많이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 방법이 선호되는 이유를 효율성 때문이라 했다. 맞다. 주장끼리 편 뽑으면 아무리 길어도 5분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교사보다 학생들이 자기네 반 아이들의 운동실력 파악이 정확하기에 서로 대등한 전력의 팀을 편성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 효율성은 따돌림과 소외현상에도 적용된다는 게 난점이다. 5분의 상황 때문에 어떤 학생은 30분 또는 3년 넘게 고통받을 수 있다. 영화에서 2분 남짓한 편 나누는 장면을 보고도 가해자인 나도 죄책감을 느꼈는데 피해자는 오죽할까 싶다.
이렇듯 체육수업에서 팀 편성은 까다롭게 해야 한다. 자칫하면 학급 내 소외학생과 따돌림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급 내 여러 학생들이 특정 학생과 같은 편이 되는 것을 꺼리는 모습은 체육수업에서 행해지는 또래집단 따돌림의 대표적인 형태 중 하나다. 또한 체육시간에 편을 짤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학생일수록 학급 내에서 소외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제일 좋은 방법을 묻게 된다. 현재로서 제일 좋은 방법은 영화 <우리들> 감상이라 말하고 싶다. 세간에서는 이 영화를 ‘섬세함’ ‘예리함’ ‘정교함’으로 형언한다. 이 영화를 보면 체육수업 팀 편성을 필두로 소외학생이 겪는 고통을 섬세하고, 예리하며, 정교하게 느낄 수 있다. 문제 해결은 공감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