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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렬 Oct 08. 2018

모름지기 술은...

<술의 추억>을 읽고


커피가 맛없는 카페를 가게 될 경우 콧김이 콧속을 얼려버리는 한 겨울에도 무조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얼음은 참기름 또는 라면 스프 같은 존재랄까. 눅눅한 생쌀 보다 맛없는 원두와 자취생이 생애 처음으로 지은 냄비 밥보다 시커멓게 태운 커피라도 얼음이 가득담긴 찬물을 만나면 눅눅한 맛과 탄 맛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차가우면 뭐든 마실만 하다.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 윤기가 흐르는 초밥을 볼 때보다 성에가 낀 소주병과 소주잔을 볼 때 침샘이 고이는 종족이 있다. 술꾼이라고 불리는 이 종족은 라면 국물이 식으면 식었지 차가운 술을 식히는 법이 없다. 그래서 이들이 술 마시는 속도는 지하철 속도만큼 빠르다. 술 한 잔 비워지고 채워지는 시간이 지하철 한 정거장 지나고 도착하는 속도와 비슷하다. 출입문이 열리면 승객이 내리고 새로운 승객이 승차하는 것처럼 술꾼들은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잔을 비우고 채운다.  


내가 보건복지부 장관이 된다면 제일 먼저 “찬 술 판매금지” 정책을 시행하리다. 술꾼 종족이 멸종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모든 술을 따듯하게 데워 먹어야 하는 문화를 조성하겠다. 제아무리 한 시간에 소주 3병을 비우던 사람도 뜨거운 소주는 한 시간에 한 병을 비우지 못할 것이다. "찬 술 판매금지령"은 곧 음주량 감소로 이어져 음주운전, 알콜성 질환 발병률, 범죄율이 급격하게 떨어져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로 도약할 것이다. 사실 술 마시는 속도뿐만 아니라 취기도 뜨거운 술이 더 즉각적이다. 술 넘기는 맛보다 적당히 취한 상태를 좋아한다면 다자이 오사무 처럼 “술은 모름지기 따듯하게 데워서 작은 잔으로 홀짝홀짝 마셔야 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근대 일본 문학 번역 팀인 ‘번역살롱 봄,봄’에서 번역한 책 <<술의 추억-일본문학의 취하다-1>>의 표제작 <<술의 추억>>은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이하 오사무)의 산문이다. 오사무는 찬 술과 폭탄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1940년대의 전후시대 술 문화를 가리켜 사회의 퇴락이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오사무는 26살 나이에 처음으로 찬 술을 마셨다. 문학평론가 집에 놀러 갔다가 반강제적으로 찬술을 마시게 된 것인“꼭 물 같지 않나? 전혀 취하질 않으니”라고 찬술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물처럼 마시다 보니 금세 술 한 병을 비웠고, “머리 위에서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면서 몸이 하늘로 둥실둥실 떠올라 안개구름 사이를 헤치며 걸어가는 듯한 상태가 되어 생전 처음 스케이트를 탄 사람마냥 길바닥에 고꾸라지기를 반복한다. 이후 오사무는 스스로를 수천 번 넘게 얼마든지 찬술을 마시는 야만인이라고 부른다 . 폭탄이 떨어지는 하늘아래 소방복 입고 철모를 짊어진 사람들은 생애 마지막 술자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찬 술과 폭탄주를 입속에 콸콸 쏟아 붓는다. 다행스럽게도 폭탄에 집이 불타지도 목숨을 잃지 않았지만 뇌와 혈액에 퍼부어진 술 폭탄을 맞은 이들은 구석구석 타박상을 입은 알몸의 상태로 소지품을 다 잃어버린 채 길바닥에 나자빠졌다.      


2018년 현재 머리위로 폭탄 대신 폭죽이 터지는 시대인데도 여전히 폭탄주와 ‘시야시’ 낀 술병과 술잔에 쾌감을 느끼며 폭음을 즐기는 이들이 산적하다. 어쩌면 지금 이 사회 자체가 전쟁터이기도 해서 그런지 모른다. 그럼에도 술 약속이 있다면 이따금 다자이 오사무의 말을 떠올리자 “술은 모름지기 따듯하게 데워서 작은 잔으로 홀짝홀짝 마셔야 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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