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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렬 Oct 29. 2018

하루키 문학 속으로 떠나는 음악여행

동두천시 차세대 점프블루스 댄서의 탄생과 문화공간 실험실 '지혜의 집'


지난 10월 20일은 동두천 차세대 점프블루스 댄서가 탄생한 날이다. 갓 태어난 차세대 주인공은 비록 연주와 보컬은 아니지만 춤만큼은 1950년대 점프블루스의 대들보 루이스 프리마를 계승하겠다며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에게 맹세했다. 그가 맹세를 한 장소는 공연장도 아니요, 클럽도 아니요, 길거리도 아닌 도서관이다. 실로 놀랍지 않은가 동두천시에 소재한 ‘지혜의 집’ 도서관에서 차세대 점프블루스 댄서가 태어났다는 게. 풍문에 따르면 차세대 댄서는 2018년 10월 20일 지혜의 집 특별행사인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 음악여행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사소한 가이드>에 참여하기 전까지 삼십 대 중반의 평범한 청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행사 강연을 맡은 최지호 음악평론가가 선곡한 음악과 해설을 듣고 삼십육 년 만에 자신의 심장 박동이 점프블루스 리듬으로 뛴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됐다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 음악여행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사소한 가이드>는 무라카미 하루키(이하 하루키) 작품에서 거론된 음악을 감상하고, 음악에 내포된 역사적 배경과 문학적 의미를 음미하는 시간이었다. 강연에 의하면 하루키 문학에서 1960년대의 음악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반전과 인권운동이 팽창하고 자연주의, 실존주의 히피문화 등 이른바 진보적 인식 및 인간 감각의 확장 실험장으로 회자되는 60년대에 대한 향수랄까. 하루키는 60년대 음악에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하루키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상실의 시대>가 대표적이다. 일단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 후반이고, <상실의 시대> 원제목 자체가 1964년 발표된 비틀즈의 노래 제목인 <노르웨이의 숲>이니 60년대를 향한 하루키의 마음을 가늠하게 된다. 하루키가 사랑한 60년대 음악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선 로큰롤을 알아야 하고 로큰롤을 알기 위해선 30~50년대 풍미했던 스윙재즈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스윙재즈가 로큰롤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하루키의 음악 에세이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가 있으니 스윙을 아는 건 의미가 있는 일이다. 최지호 평론가는 스윙재즈의 대표 아티스트 루이스 프리마의 ‘Gigolo & I Ain't Go Nobody’ 무대영상을 틀어주었다. 신나는 연주에 맞춰 루이스 프리마가 구사하는 맛깔스런 노래와 정겹고도 흥겨운 춤이 인상적인 영상이다. 최지호 평론가는 루이스 프리마가 스윙재즈의 전설로 불리지만 점프블루스의 대가로도 평가받는다며 영상 속 음악 장르는 스윙보다 점프블루스에 가깝다고 말했다. 화면에서 루이스 프리마의 노래와 춤이 절정 올랐을 때였다. 가마솥의 누룽지처럼 도서관 소파에 엉덩이가 눌러 붙었던 서른여섯 살 청년의 몸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박혁거세가 알을 깨고 나왔다면, 동두천 차세대 블루스 점프 댄서는 누룽지를 부시면서 태어났다.      



두 시간 반 동안 강연자는 60년대 가장 중요한 음반과 노래를 들려주며 시대와 음악의 관계를 예리하게 조명해주었다. 손수 챙겨온 고급 스피커와 앰프, 턴테이블과 레코드판 덕분에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음악 심취하는 시간을 가졌고 생전 처음 듣는 음악과 전에는 무심코 흘러들었던 노래가 알고 보니 음악 역사를 뒤흔들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강연이 끝나고 참석한 사람들의 소감을 듣는 시간이 이어졌다. 공연장에 온 것처럼 음악을 즐겼고 노래 하나에 담긴 역사와 의미를 알게 되니 익숙했던 노래가 완전히 새롭게 들렸다는 A씨, 60년대의 실험적인 음악 세계를 보면서 결국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과 희망을 다시금 상기하게 됐다는 B씨, 오늘 이 강연을 듣지 못했으면 아마도 죽는 날까지 듣지 못했을 음악을 알게 되어 인생의 두께가 두꺼워졌다는 AB씨 등등 다들 뜻깊은 소회를 밝혔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동두천 차세대 점프블루스 댄서는 자신의 탄생을 알리며 음악의 신에게 맹세를 했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 음악여행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사소한 가이드>의 참여자 중 한 명이다. 나는 이날 도서관이 지닌 문화공간의 확장성을 맛봤다. 지혜의 집 도서관은 일종의 실험실이었다. 실험재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과 음악이었고, 실험방식은 하루키 문학작품에 깊게 서린 정서와 그의 작품에서 자주 거론되는 1960년대의 음악적 감성을 한데 모아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실험결과는 놀라웠다. 도서관은 음악의 진폭에 따라 공연장이 되거나 음감회가 열리는 살롱이 되었다. 이를테면 토킹헤즈가 마라톤 선수처럼 달리고 달리며 ‘Life During Wartime’를 부르는 공연장, 스윗 스모크의 화려하고 현란한 연주를 한 땀 한 땀 새겨듣는 살롱으로 변신했다.      


11월 중순에 열릴 두 번째 문학과 음악의 만남 시간에는 소파에 앉지 말고 일어선 상태로 음악에 몸을 맡기는 방식으로 진행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물론 이 제안을 한 사람은 동두천 차세대 점프블루스 댄서였다. 최지호 평론가는 두 번째 강연은 재즈와 디스코를 주요하게 다루겠다고 예고를 했다. 11월에는 동두천의 차세대 디스코 댄서가 탄생할지, ‘지혜의 집’이 얼마나 더 확장될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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