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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un 06. 2019

불량품들의 잔혹동화

영화 '기생충' 리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소름이 돋았다


불이 켜지자마자 자리를 서둘러 뜨는 사람들이 야속할 정도로 그대로 눌러앉고 싶었다.


완벽하다. 가히 환상적일 정도로. 


리뷰는 원래 쓰려는 계획도, 쓴 적도 없었지만 참을 수가 없어 일단 휘갈겨 놓는다.


봉준호 감독의 익숙한 포맷 중 하나인 가족 희비극이다. 3대에 걸친 대가족이 등장하는 괴물, 비틀린 모성애를 그린 마더나 부성애가 주요 코드로 작용하는 설국열차와 비슷하면서도 궤를 달리 한다. 영화는 분명히 지독한 이야기지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일부러 예고편도 보지 않았고, 인터뷰도 찾아보지 않았다.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기대감에 불을 지폈다. 날 것 그대로 느껴보고 싶었고, 나중에 얼마나 영화를 잘 이해했는지도 알고 싶었다. 영화관에서 사람들이 나오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은 "혼란스럽다", "기생충 해석 찾아보자"등이었다. 영화는 그만큼 메타포와 복선을 많이 사용하며, 관객들을 간간히 당혹스럽게 만든다.



영화, 드라마에서는 모든 것이 연출된다


내리는 비, 흩날리는 눈은 모두 다 감독의 계획 아래 관객들에게 보여진다. 의도되지 않은 것은 결코 없다. 영화는 가장 현실스러운 것을 추구하며, 현실은 가장 드라마틱한 것들을 추구한다.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중 일상의 사소한 장면들이 모아 영화를 만든다는 내용이 있다. 김혜자를 광고에서 보고는 왠지 모를 광기를 느낀 뒤 마더가 만들어졌고, 고등학교 때는 다리에서 한강으로 무언가가 떨어진 것을 보고서 괴물이 탄생했다.


영화를 볼 때마다 특히 장면의 연출이나 배경, 소품, 대사에 주의를 많이 기울이는 편인데, '기생충'을 보면서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카메라 워킹부터 장면의 섬세한 연출력, 대사 하나하나까지.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초반부 피자가게 직원의 대사처리 정도다. 뭔가 딱딱하고 어색한 게 못내 아쉽다(나중에 다른 분들의 리뷰를 보고서야 이 부분 또한 의도된 것이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형사가 형사같지 않고, 의사가 의사같지 않은 것처럼).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소품은 맥주다. 필라이트를 먹던 가족들이 어느새 수입맥주를, 그것도 모자라 박 사장(이선균)의 집에서 양주를 꺼내 먹는 풍경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먹는 음식과 옷은 날이 갈수록 바뀌어 가지만, 본질은 감출 수 없다. 기정(박소담)이 먹던 안주가 강아지 사료였던 것은 분명 웃을 일이지만 웃을 수가 없다. 무능력한 가장인 기택(송강호)이 박 사장 저택을 자기 집인 듯 행동하자 아내인 충숙(장혜진)이 "그래 봤자 넌 박 사장 가족이 갑자기 집에 돌아오면 바퀴벌레처럼 재빨리 숨을 처지 아니냐"는 말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다.


폭우로 반지하 가구들이 모두 체육관에 모여 잠을 청하는 모습은, 영화 '괴물'에서의 합동분향소를 연상시킨다. '괴물'에서 이곳은 강두네 가족이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고, 딸인 현서를 자력으로 구하기 위한 결심을 하는 일종의 진화이자 자기 각성의 장소이다. 마치 단군신화의 동굴과 같은 기능을 하지만, 결과는 그와 대조적으로 좋지 않다. '기생충'에서는 경제적 능력은 없지만 늘 믿었던 가장인 기택에게 정말로 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아들인 기우(최우식)가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우게 되는 공간이다. 결과는 안타깝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강조하다 못해 집착하는 단어들이 있다


'냄새'는 감춰지지 않는 본질을 의미한다. 후각이 가장 민감한 나이 때의 아이에게 기택과 충숙의 냄새가 같음을 들키는 장면은 우연이 아니다. 배우자의 외도를 아이가 먼저 알아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후엔 박 사장도 차에 탈 때마다 냄새에 대해 민감해지며, 기택도 덩달아 예민해지며 불안해한다. 가족들은 각자 다른 세제나 비누를 써야 하나 고민하지만, 기정의 "반지하 냄새잖아"라는 말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냄새'는 결말에서도 기택이 저지른 모든 일의 동기이자 이유가 된다. 기택의 가족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박 사장의 습관적인 행동 중 하나는 이질적인 냄새에 오만상을 짓는 것이다.


그에 반해 다혜(정지소)와 연교(조여정)는 이상하리만큼 냄새에 둔감한 모습을 보인다. 다혜는 한 술 더 떠 기우를 사랑하기까지 한다. 냄새가 본질의 객관적 판단기준이 아니라는 증거다. 어쩌면 박 사장도 반지하에서 시작해 자수성가한 경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더 냄새에 민감한 것일지도.


아들인 기우는 '상징'을 강조한다. 수석에 상징적이며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수석이 자기에게 달라붙는다"는 표현을 한다. 수석은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와 같이 묘사되며, 모든 사건의 발단이자 원흉으로 보인다. 모든 사태의 책임을 아들이 전가시키는 대상이기도 하다. 폭우에 집이 침수되었을 때 수석이 떠오른 것은 그것 자체로 '상징'적이다. 수석이 가짜라 떠올랐다는 해석은 허무함을 더한다. 고기 맛을 알아버린 스님처럼, 기우에게 단단히 자리 잡은 욕망은 쉬이 떨쳐지지가 않는다.


박 사장은 '선'을 지키는 것에 대해 민감하다. 단적으로 자신의 차에서 윤 기사가 성관계를 하는 건 괜찮지만, 선을 넘어 본인의 영역인 '뒷좌석'을 침범했다는 사실에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박사장 부부간의 대화에서도 '선'에 대한 대화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의 뒷부분에서 기택이 인디언 놀이에 시큰둥한 둥 '선'을 넘는 반응을 보이자 박 사장은 근무의 연장이라 생각하라며 차갑게 쏘아붙인다.

눈가의 선 색깔은 무엇을 의미할까. 결코 달라질 수 없는, 태생적으로 가지지 못한 본질의 차이일까



극적인 대비는 언제나 돋보인다


폭우에서 박 사장 아들의 미제 장난감 텐트는 물 한 방울 새지 않는데 비해 반지하 주민 수백 명이 보금자리를 잃는 장면은 잔인하다. 텐션이 서서히 올라가다가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로 긴장이 확 풀어지는 장면은 관객을 가지고 노는 듯 쥐락펴락한다. 박 사장 가족이 갑자기 돌아오는 장면에서 생소한 짜파구리 레시피를 물어보는 충숙의 표정은 급박한 상황 중에서도 웃음을 준다.


지하 방공호에서 리스펙트를 외치며 박 사장이 지나갈 때마다 온몸으로 감사함을 표시하는 근세의 모습은 관객 입장에서 곤혹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무심코 켜지는 현관등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을 정도니 말 다했다. 하지만 근세의 머리 몇 미터 위에서 리스펙트의 대상 박 사장은 현관등이 불량인가라며 고개를 갸웃하는 정도다. 마지막 파티 장면에서 실제로 박 사장을 보자마자 리스펙트를 목놓아 외쳤지만 영문을 모르는 박 사장의 표정을 본 근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넷 중 하나는 불량이라는 거죠


봉준호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일까? 아니면 기택의 가족을 이렇게 만든 사회의 불합리함인가?


여백이 많은 영화다. 상상하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초반 윤 기사를 해고할 때 나온 박 사장 부부간 귓속말의 내용이나, 기우가 다혜에게 적어준 노트의 내용, 지하 방공호의 근세가 다송에게 보낸 모스부호의 내용 등은 모두 드러나 있지 않다. 이렇게 부분적으로는 여지를 많이 남겼지만 결말까지 그렇지는 않다. 마지막 부분을 실제 미래의 기정이 이루어냈다고 생각하며, 상상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 관객은 아마 몇 없을 것이다. 


결말은 열린 듯 하지만 철저히 닫혀있다.


피자박스를 접는 알바 중 가족은 피자가게 점원에게 박스 네 개당 한 개는 불량이라 주기로 한 돈의 10%는 주지 못하겠다는 말을 듣는다. 가족들의 시선은 모두 기택을 향한다. 기택은 거듭된 사업 실패로 현재 백수이며, 본인의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말을 하는 무기력한 가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나 태도를 보면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기택을 존중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울지라도 가족 내의 위계질서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기택은 영화에서 독보적으로 선을 넘는 인물이다. 박사장에게는 부인을 정말 사랑하느냐와 같은 개인적이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며,  박 사장의 부인인 연교(조여정)와도 의도가 뭐든 손 잡는데 주저함이 없다. 박 사장의 저택에서도 가장 거리낌 없이, 어색함 없이 행동한다. 자존심이 여전히 세며 권위는 뼛속까지 남아 있는 가장의 모습이다. 어쩌면 지하 방공호에 숨어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본인이 원해서 그렇게 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떳떳하게는 아니지만 어찌 됐건 그 저택의 일부분이 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기우는 형사가 형사 같지 않다고 하고, 의사에게도 역시 의사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단순히 기우가 방금 깨어나 그만큼 정신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장면일 수도 있지만, 직업 간이든 계층 간이든 서로 구분할 수 있는 '경계'가 과연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장면은 아닐까.


몇몇 특이한 종을 빼고는 대부분의 기생충은 사실 치사율이 그렇게 높지 않다. 기생충이 너무 득세하면 숙주도 죽게 되어 대를 잇지 못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없애버리지 못할 거라면 적당한 선을 지키며 공존하는 게 적어도 기생충에게는 이롭다. 


그럼, 기택의 가족이 선을 지켰다면 결말은 과연 달라졌을까? 



깊이 감명받은,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7가지 방법

 http://www.ziksir.com/ziksir/view/4481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제작사에 있으며 영리적 목적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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