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창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민 Jul 16. 2019

B급으로 시작해 A급으로 마무리한,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리뷰

# 2019년 7월 16일자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조심하세요!>


먼 길을 돌고 돌아 우여곡절 끝에 마블 시리즈에 합류하게 된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예전 마블이 재정난에 빠져 울며 겨자 먹기로 팔았던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판권을 최근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엄청난 흥행으로 일부분이나마 찾아올 수 있게 되어 볼 수 있게 된 영화다. 그래서 시리즈의 첫 영화 제목이 마블에 돌아옴을 환영하는 중의적 의미로 스파이더맨 '홈커밍'인 거고. 물론 아직은 제작만 마블이 하고 배급과 그에 따른 수익은 소니[컬럼비아 픽처스]가 가져간다. 먼 훗날 마블 영화들이 인기가 떨어지게 되는 날이 오면 스파이더맨은 MCU에서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안된다ㅠㅠ)


2015년 소니와 마블 간에 이뤄진 스파이더맨 캐릭터 공유 계약의 비밀조항에 의하면 " 이번 2편이 10억 달러를 달성하면 마블이 3편도 함께 관장하며 갈 수 있고 만약 달성하지 못하면 양사 간 계약은 파기되고 전적으로 소니에게로 모든 권리가 돌아갈 예정이다."라는 내용이 공개되었다. 즉 파 프롬 홈이 글로벌 10억 달러를 달성하지 못하면 남은 1편과는 관계없이 MCU 스파이더맨 영화는 이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관련기사: https://www.slashfilm.com/spider-man-contract/)


# 결국 소니의 손에 돌아갔네요ㅠㅠ (디즈니는 마블을 2009년에 인수했습니다.)

https://entertain.v.daum.net/v/20190825115441992


# 다시 볼 수 있겠네요! 정말 다행입니당


띠용~ 아직도 안 본 사람이 있다고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어벤저스 엔드게임과 일련의 이야기들을 다루는 '인피니티 사가'를 마무리짓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밝히는 프롤로그의 역할을 한다. 줄거리뿐만 아니라 개봉 시기 또한 아주 시의적절한 셈이다. 장장 10년 정도 풀어놓은 이야기를 비로소 매듭짓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 갈 준비를 하는 만큼 어떤 이들에게는 청춘의 한 페이지를, 또 어떤 이들에겐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이 된 추억들을 뒤로 하는 건 그 자체로 기념비적인 일이다.


리뷰까지 쓸 정도로 요란 떨고 있지만 사실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히어로 영화에 별 관심이 없었다. 너무 비현실적이고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그게 인기의 이유인 걸 알면서도 애써 부정한 것 같긴 하다)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굳이 슈퍼히어로 영화로 범위를 좁히지 않더라도, 내가 본 영화 캐릭터 중 가장 애정과 관심이 가는 몇 안 되는 캐릭터 중 하나다. 재밌게도, 캡틴 아메리카가 그렇게 매력적이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 미국스러워서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인데 말이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자 친구는 이해한다며 웃었다. 그리고 그런 겉으로만 보이는 단편적인 모습보다는 자신의 인생 영화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의 캡틴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했다.(실제로 그랬다. 우리가 알던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충분히 담은 모습이었고 확실히 예전의 영화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주위에 저마다 최애 캐릭터와 영화가 각각 있지만, 가장 인기가 많은 아이언맨은 뭔가 사람들이 가장 동경하며, 보고 싶은 모습만 모아 탄생시킨 인물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고(극히 주관적입니다) 다른 히어로들도 마찬가지로 내게는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내 눈에 대부분의 히어로들은 모두 어두운 성장과정이 어떻든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그런 수많은 과정들이 모이고 모여 현재의 자신과 주위에 이미 초래한 결과들을 대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던 마지막 대사는 놀랍게도 톰 홀랜드의 애드리브


그런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영화가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였다. 전에 보지 못했던 엄청난 스케일과 독특한 세계관도 빠른 몰입에 분명히 한몫을 했지만, 뭔가 바로잡힐 여지가 부족해 보이는 다른 캐릭터들의 개성(대표적으로 고집불통 스타로드이나 사회성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닥터 스트레인지 정도가 있겠다)과는 완전히 색다른 느낌을 줬던 스파이더맨이 가장 큰 이유였다. 경험은 부족하지만 항상 의욕이 과다해 때때로 웃어른들에게 제지를 당하기도 하는 모습은 사회에 갓 발을 디딘 지금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반갑기도 했다. 스타크의 품에 안겨 먼지로 사라지며 "속이 안 좋아요..." 고 말하는 톰 홀랜드의 표정은 아직도 뚜렷이 기억이 난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크게 3가지가 있는데, 이 시리즈의 변화과정을 쭈욱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사실 영화가 처음 나올 때는 사람들이 반감을 가질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갸웃할 만하지만 거미인간이라는 이름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만하다. 어찌됐건 다른 연출진과 배우들로 세 번이나 시리즈들이 제작되었다는 것 자체가 인기를 설명한다.


차츰 희미해지는 1대 스파이더맨의 기억


메이 숙모는 더 이상 스파이더맨 3부작에서의 예전의 그 할머니가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설정이면 곧 돌아가실 연세인지라 그런 건지 오히려 점점 회춘을 시키는 캐스팅을 택했다. 달라진 외모 때문인지 앤트맨(Ant man)보다 메이 숙모(Aunt May)가 더 기다려진다는 반응도 있을 정도니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스파이더맨 각성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벤 삼촌은 이번 시리즈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캐릭터 역시 이제까지의 MJ나 그웬 스테이시와 같은 전형적인 이미지가 아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피터 파커는 여전히 찌질이로 남아있다. 2002년에 나왔던 스파이더맨 영화에서는 자신을 괴롭히던 플래시(이전 영화에서는 힘만 센 근육질 바보로 나왔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입만 산 역이다)를 참교육을 하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모습을 잠깐이라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밀면 데굴데굴 굴러갈 것 같은 외모의 네드와 함께 구석에 찌그러진 모습이 익숙할 정도다. 전작들과 차이점이자 차별점은 아이언맨의 존재다. 친부모 없이 숙모에게 키워진 피터에게 아이언맨은 마치 아버지와 같다. 겉으로는 투덜대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이언맨도 피터를 아들과 같이 여겼고, 그것이 영화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친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떠난 시간여행의 발단이 된다.


빵 터지는 장면은 없지만 피식피식 거리게 하는 유머는 취향저격이다. 마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제작진이 스크린 속에 살금살금 들어와 본인들의 정체성을 한 움큼 뿌려놓고 도망친 듯한 이런 감성은 헛웃음이 나면서도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리뷰를 쓰는 시점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근 1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어 점점 흐려져 가는 내 머릿속이 아쉬울 뿐이다. 역시 뭐든지 정확한 기억보단 감정만 어렴풋이 남는 것 같다. 마치 예전 알던 사람의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도 함께 공유한 즐거운 기억이나 특히 나쁜 기억은 오래 남아 있는 것처럼.


어딜 가도 스타크가 보인다


포스터 한 장에 영화를 담았다. 엔드게임에서의 핑거 스냅 이후 혼란스러운 지구에 어느 날 갑자기 땅, 물, 불, 바람의 원소로 구성된 엘리멘탈이 나타나 큰 피해를 입힌다. 어쩌다 보니 지구를 지킬 어벤저스는 스파이더맨뿐, 아무도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도, 토르도, 캡틴 마블도.(사실 일부러 비운 거 같기도 하다) 영화는 아이언맨과 모든 것이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피터에게 남긴 이디스(Even Dead, I'm The Hero)에서 모든 사건이 전개가 되며 심지어 빌런도 아이언맨과 관련이 있을 정도다. 아이언맨의 향기가 진하다 못해 진동한다. 개인적으로는 뭔가 '앞으로는 잘 못 볼 거니까 특별히 더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어딜 가나 아이언맨 이야기를 하고 피터도 아직 본인이 나서야 할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절묘하게 피터의 성장기와 버무려진다. 아마 1시간에서 1시간 반쯤 됐을 거다. 엘리멘탈이 쓰러질 때의 그 허무한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영화는 내게 B급 그 자체였다. 킬빌처럼 B급 감성을 지닌 명작 영화란 말이 아니라 정말 실망했다. 미스테리오의 정체가 밝혀지고 난 뒤부터 영화 역시 본격적으로 각성을 시작한다.


이제 당신이 어벤저스의 리더인가요?


즐거운 수학여행을 온 피터에게 닉 퓨리가 유럽까지 쫓아와 임무를 건네자 피터는 본인은 그저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일뿐이지 슈퍼히어로가 아니라며 부담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인다. 닉 퓨리는 그런 피터에게 이렇게 말한다.


"Uneasy lies the head that wears a crown."
왕관을 쓴 머리는 편안히 쉴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에 처음 등장했고, 후에 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에서 차용된 아주 유명한 대사다. 자리와 힘에는 그에 걸맞은 책임과 불안이 항상 따라다닌다는 뜻이고.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재수를 하던 시절이 문득 기억났다. 수업이 있던 첫날, 국어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칠판에 쓴 말이었다. 무엇을 이루려면, 혹은 이루고 나서 책임감과 부담감은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라 하셨다. 왠지 모른 동질감을 느낀 건 이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요즘 나도 학교를 다니며 많은 생각들을 하는데, 그중 가장 큰 고민은 이렇다.



'내가 갈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들처럼 나는 언제 저렇게 될까? 아니 될 수는 있을까?'



어쨌든 결국 피터는 당당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영화라 결말은 필연적일지 몰라도, 과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음을 안다. 시작만 거창하고 끝이 아쉬운 이야기가 요 근래 많았는데 이번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영화가 끝나도 여운을 흘리며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시작이 다소 아쉬웠을지 몰라도, 역시 끝이 바람직해야 한다. 나 역시 훗날 돌아봤을 때 그렇기를.


아뇨, 전 그저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인걸요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는 어릴 때 아버지와 스타워즈 시리즈를 재미있게 본 기억도 났다.(물론 지금 스타워즈는 내 취향은 아닌 것 같다) 마블 세계관도 그만큼 후대에서 회자되지 않을까. 정말 보면 볼수록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장르가 된 마블이 앞으로 써 내려갈 역사가 더욱더 궁금해지는 밤이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제작사에 있으며 영리적 목적이 아님을 밝힙니다


사용된 GIF는 모두 @GIPHY.COM


매거진의 이전글 불량품들의 잔혹동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