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게 아침을 여는 나만의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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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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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는 걸로 아침을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포트에 차가운 물을 가득 넣어 물을 끓인다.
김이 나는 소리가 들릴 때쯤 나만의 차(tea) 상자를 연다. 많은 차 중에 어떤 차를 마실지 잠깐 고민에 빠지지만, 이상하게 차에 있어서는 망설임이 없이 고르게 된다.
난 기본적으로 선택에 있어서 작은 결정들을 하는 것에 예민하지 않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지, 무슨 영화를 볼지 등 이런 선택에 있어서는 자유롭다. 좋게 말해 그렇지만 사실 선택 장애가 있다. 그러나 차는 그러지 않다.
왜 차에 있어서는 선택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지 곰곰이 차를 고르는 방법을 생각해 보면 내가 머리로 차를 고르는 게 아니었다. 직관적으로 오늘의 날씨와 공간의 공기 그리고 나의 컨디션에 따라 고르는 것. 그것에 따라 내가 차를 선택하고 있었다.
나에게 차는 그 순간의 또 다른 '나'이다.
차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난 그걸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사람에 따라, 자신들만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각각의 차를 즐기는 스타일도 다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따라 하기보단 나만의 스타일로 다시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그래서 나에게 차를 어떻게 즐기느냐는 그날의 공기와 그날의 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매일매일 다른 차로 아침을 시작하기도 하고, 매일매일을 같은 차로 아침을 시작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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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포트에 불이 꺼지면 내가 고른 오늘의 차로 집안의 차가운 공기가 따뜻한 차향으로 가득 차도록 차를 우린다.
아마 내가 아침에 일어나 차를 우리는 이유 중에 하나는 차가운 공기가 차향으로 바뀌는 그 순간, 그 짧은 찰나를 위해 차를 우리는 건지도 모른다.
그 찰나의 순간을 만들어주는 오늘의 차는 ‘백모단’이다.
백모단은 백차(White tea) 중에 하나로 찻잎의 싹과 잎이 골고루 사용하여 만든 차이다.
이 차를 만드는 과정에 찻잎을 시들리는 위조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이 아주 중요하다. 향이 좋은 홍차와 우롱차도 이 과정을 거친다. 특히 백차는 위조와 건조의 과정만 거쳐서 만드는 차여서 차를 만드는 제다과정, 아, 차를 만드는 걸 제다라고 한다. 이 제다과정이 간소하기 때문에 찻잎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중요하다. 특이하게 이 차는 2차 변이를 거친 변이품종이다. 꼭 알아 둘 것은 2차 변이를 거친 차여야지만 백차 품종이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친 백차는 나에게 새우깡처럼 손이 자주 가는 차 중에 하나이다. 그 이유는 약리 작용이 있는 차이기 때문이다. 요즘 일 때문에 스트레스로 잡열이 나서 힘들 때면 비상약처럼 옆에 두고 차를 마신다. 그러면 잡열이 뚝 떨어진다. 특히 이번 여름, 무더위에 더위를 먹어서 머리로 열이 쏟고 쳐 한동안 고생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백모단을 차갑게든 따뜻하게든 수시로 마셨다. 그러면 열이 식는 느낌이 느껴질 만큼 잡열과 더위나 열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는 차이다.
차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길었다. 다른 시간 때에 마시는 차들 또한 각각의 매력을 가지지만 아침에 차를 마시는 차는 차의 본연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백모단의 경우 풋풋하지만 맑고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물을 끓이는 동안 차를 우릴 다구를 챙긴다. 여기서 다구는 차 도구를 칭한다. 사실 테이블 위엔 언제든 차를 마실 수 있는 차판이 있다. 차판위에 자사호, 공도배 그리고 잔을 챙긴다. 백모단을 우릴 때 자사호나 개완을 사용하는데 오늘은 자사호를 사용해서 차의 부드러운 맛에 초점을 두려고 한다. 밑에 사진을 보면 갈색에 주전자 모양처럼 생긴 것이 자사호이고, 유리로 된 차가 담긴 것이 공도배이다. 잔은 한 손에 감길 정도로 작은데 차를 잘 모르는 지인분들이 오면 술잔이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중국 찻잔이 한국 찻잔이랑 달리 크기가 작아서 차를 마실 때 감질맛이 난다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큰 잔에 마셨을 때 보다 작은 잔에 차를 함께 마시다 보면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며 끊임없이 차를 마시게 된다. 잔이 작아서 주는 또 다른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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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차를 자사호에 넣고, 100도씨로 끓인 물을 부어준다. 물을 부어 차를 우릴 때 차향이 그 공간에 가득 차는 기분이 든다. 자사호에 우린 차를 다시 공도배에 옮겨 담는다. 맑은 탕색의 차를 하얀색의 작은 잔으로 차를 마시며 아침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