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음식
귀를 때리는 빗소리에 압도당해 인간의 나약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 칼국수를 끓여놓은 어머니를 보며 너무나 안도했던 기억이 있다. 그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온기라니..그 힘으로 힘든 일이 있어도 힘든 줄 모르고 삶을 버텨왔는지 모른다. 그 빚을 인정할 때쯤 갚아야 할 어머니는 계시지 않는다. 포근한 어머니 품이 그립다. 술이 거나해서 동구밖에서부터 은호를 부르던 아버지의 목소리도.. 이제는 박제되어 화석이 되어버린 지나간 벽장 속의 이야기. 현실로 돌아가자. 지금이 바로 글을 써야 하는 시간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하나씩 들추어본다.
딸 들 모두 아버지를 닮아서 꼿꼿하면서도 바른 편이고 영리하여 생활력과 끈기도 있었다. 사람에게 애정이 있고 순수해서 얄팍한 술수에 깜빡 속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제 앞가림할 정도의 전략적인 면도 없지는 않다. 어머니는 그야말로 순백의 순수 그 자체로 아버지에게 시집와서 자신의 의견이라고는 있어본 적이 별로 없었지만 자식들을 아버지 가신 후까지 도맡아서 건사해야 했던 실제 생활력이 필요할 때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던 요리 잘하는 큰 손 마님이시다. 큰 일은 아버지가 벌이신 거고 대부분의 일은 아버지가 처리했던 탓에 어머니는 집에서 맛있는 아주 맛있는 밥을 그때그때의 형편에 가장 훌륭한 만찬으로 차려내셨던 그 방면으로는 최고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겠다. 미각이 꽤 발달하여 차나 커피에 조예가 나름 있는 형제들의 입맛도 어머니의 그런 면모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격식을 따지지는 않지만 안목 있는 차생활의 원천은 결국은 아버지의 한약방과 어머니의 요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직까지도 어머니가 만든 몇 가지의 음식을 잊지 못하고 애써 로컬에서 구해보지만 지금은 생소해서 구경하기도 힘들어진 그때의 음식들은 아직도 나의 혀와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한다. 어머니처럼 또 다른 자식들의 어머니가 되어도 여전히 흉내 내지 못하는 그것이다. 아무리 아버지가 한의원을 하면서 지역에서는 어려운 사람들께나 도와주는 인사라지만 어머니 같은 재주 없이 그 입을 어떻게 다 채워줄 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가 밖에서 불러들이는 손들의 입까지 모두 합해서 말이다. 아버지를 위해 그때로서는 귀한 음식도 곧잘 요리해서 아버지 상에만 올리는 일들까지 말이다. 밥을 하고 남은 군불 위에다가 큼직한 고추에 밀가루 반죽을 묻혀 석쇠에 구워 지금은 보기도 힘든 그런 구수한 구이라든지 먼 길 떠나는 식구가 있을 때나 기침을 하며 감기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갈치가 들어간 김치국밥을 끓여주시던 것도 생각난다. 비릴 거 같지만 그 시원함과 갈치살의 부드러움은 잊지 못한다. 최근까지 이름도 밝혀내지 못한 나물도 있다. 콩잎을 갈 듯이 하여 무쳐서 끓인 쌀뜨물과 함께 나오는 한철음식이었는데 그것이 콩잎이 아니라 팥잎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만의 구수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배어있는 그 음식들을 다시는 맛볼 수 없다는 것이 어머니를 잃은 아픔처럼 가슴을 쳐오기도 한다. 아버지는 시골 한의사로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공부로 혼자 혜택을 독차지한 형님에 대한 원망대신 스스로 자신을 세우는 길을 택하여 한의학을 공부하고 남에게 이로움을 주고 스스로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경지로 더 큰 일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가끔 마을 너머까지 친구들과 벗하여 도박 아닌 가벼운 노름에서 일방적으로 이기고 경편을 나눠주고는 거나하게 취하여 동구밖부터 우리 이름을 부르며 들어오시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래도 그 엄한 아버지가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드문 순간이었고 볼에 수염 난 아버지의 볼을 비빌 땐 그때는 이해할 수 없던 아버지의 기분에 편승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보고 들어온 일꾼들이며 아이를 못나아 아버지의 침을 맞고 결국에는 아이를 본 부인네와 그 시절 한동안 머무르다 조용히 떠나간 지금도 가끔 그리워지는 이름 모를 언니, 그리고 심지어 지나던 걸인들까지 거둬 먹이시던 그 너른 사랑채가 훗날 그렇게 작고 좁게 느껴지는 날이 오긴 하였지마는.. 아버지는 큰 언니와 둘째 언니에게는 드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자신의 기개를 대신 걸어보기도 하였던 듯하다마는 아래 형제들에게 항상 엄하고 어려운 분이었다. 소를 키우던 시절에는 언니들이 소 먹이러 가서 산으로 들로 약간의 일탈이나마 여지가 있었지마는 불편한 다리로 농사까지는 돌보지 못하여 일꾼들에게 맡긴 터라 어린 나는 들꽃이름 풀잎하나 모르고 친구들 다가는 한여름 멱도 딱 두 번인가 가본 것이 다이다. 딸들이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것에는 아끼지 않고 두말없이 뒷받침해 주었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 외는 모든 것이 두려웠을 수도 있겠다 지금은 생각해 본다.
지난 시간은 언제나 그리움이 되어 사진첩으로 사라져간다. 아픈 이야기, 서러운 이야기보다 그 온기는 따뜻해서 다른 이야기를 덮고 추억만이 남아서 그 시간을 지킬 뿐이다.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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