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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sh Oct 06. 2024

3장. 사유하는 영혼

구름을 먹고 자라다

혼자의 시간


마음의 습관대로 추억이 이끄는 길을 따라 가을 들녘에 나섰다.
저기서 하이얀 새가 나로인해 놀라 날아오르면 미안함과 감탄으로 마음이 부산해진대로 새의 눈이 닿는 곳을 함께 해 본다.
한그루 한그루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모든 이유를 충족시키며 풍경을 완성하고 있는 나무들에서 그 잎들이 가을 바람에 흩날리면 이 풍경에 나의 등장을 그들이 손을 흔들며 열렬히 환호해주는 것만 같다. 물줄기가 안내하는 강둑을 따라 걸으며 저 멀리 핏빛으로 쏟아내는 선홍색의 노을을 향해 모여드는 구름이 해와 함께 침몰하는 그곳으로 마냥 걷는 시간이다.

언젠가부터 혼자만의 시간을 동경하게 되었다.

신나서 공부하고 놀았던 4학년을 거쳐 중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학원의 삭막한 준비와는 달리 지금 생각해도 낭만같은 것이 있었던 사춘기의 고독을 누려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수업이 끝나면 은호는 친구들과 같이 집에 가지 않고 친했던 아이들을 먼저 보낸 후에 교실에 혼자 남았다. 읍내에 서점 하는 고모네에서 가져온 문제집은 벌써 다 풀었고 공부는 딱히 더 열심히 할 게 없었지만 공부를 한다는 명목으로 집에 늦게 들어가도 되었기 때문에 문제지를 한두 번 훑어보고는 교실에 있던 오르간을 치면서 노래도 부르고 이것저것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뭘 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다가 하다가 할 게 없을 때쯤 학교를 나서서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길을 온갖 사색과 망상으로 빈틈없이 꽉 채운 시간으로 걸었다.
구름을 보고 두둥실 온갖 나라로 가상여행을 하고 티브이에서 본 만화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하고 기계도 없고 기술도 없었지만 그 시간은 나에게 상상과 꿈을 펼치는 가상현실체험이었는지 몰랐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집안 분위기로 인해 공부 잘하는 은호를 만든 길, 다른 친구들이 집에 가고 나서도 늦게까지 교실의 오르간으로 은호가 알던 모든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를 되뇌며 걸어갔던 길이었다.


오징어게임 영화가 한창 유행이 되었을 때 그게 뭐냐고 묻는 제자에게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하다가 그 시절이 떠오르고 만다. 수업시간이 끝나면 화장실을 순식간에 해결하고 운동장에 나가 그 십 분 동안 땅바닥에 그리고 뙤약볕에도 일사불란하게 뛰어 놀며 지칠 줄 몰랐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사람들은 은호를 보면 약국집딸이라며 아버지에게 그랬듯 각별히 대해주었다. 아버지의 이름에 혹여 누라도 될까 은호는 뭐든 잘하고 싶었고 좋은 사람이려 했다. 모든 친구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좋은 친구여야 했고 공부도 잘해야 했으며 뭐든 보통이상은 해야 했다. 사람들이 안 좋은 소리를 하게 해서는 안되었다. 대식구들 속에서 자라고 시골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놀던 깡다구가 있었기에 뭐든 노력하면 크게 실패는 없었다. 머리도 좋고 영리해서 수업시간에도 궁금한 것을 질문하며 열심이었다. 신나서 응답해주던  담임선생님은 글짓기대회며 경시대회에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공부에 있어서만은 자식들 원하는 만큼은 실력껏 밀어주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 욕심도 없었기에 언니들의 뒤를 이어 무난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한 때는 친구들이 제일 좋았고 그 친구들에게 힘이 되려 어린 마음에 친구들의 마음 속 고민과 갈등을 들어주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데 온 힘을 쓰기도 했다. 그것이 좋기도 했지만 가끔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혼자를 꿈꾸었다. 그것이 자유나 사생활이 없는 공인처럼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놓을 수는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들청에 누워 책을 읽거나 학교길을 오가며 생각하는 것을 즐겼지만 은호는 문과와 이과의 성향이 반반 섞여있어서 남들보다 더 감성적이기도 하고 남들보다 더 논리적이기도 했다. 수학문제를 풀때도 문제를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하여 빨리 해결책을 찾아내는 편이다. 친구에게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여 주어지는 공감의 순간이 즐거웠다. 친구들은 은호를 똑똑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잘 들어주며 문제가 있을 때에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해주던 그런 친구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은호는 상대의 입장을 잘 이해하는 편이고 다양한 측면으로 분석하여 문제상황을 정리한다. 배려심과 정의감이 강한 편이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습관을 가졌다. 생각을 많이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라 확신이 들 때는 관계를 판단하고 정리할 수 있을만큼 냉정하기도하다.


사람에 대한 단편적 소회


친구와 제주도를 자전거로 다닌 적이 있다. 바람을 거슬러 마을들을 지나가는 그 기분이라니..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은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다. 이후 그들 모두는 험난한 삶을 헤쳐 살아냈을 터이다.      


5년쯤 전인가 눈비가 섞여 내리던 밤, 은호는 무주를 거쳐 대전을 지나 서울교대연수원을 향해 운전을 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로 아직은 운전이 지루하지 않은 나이였고 공부는 혼자 하는 게 낫지만 연수 때마다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지인들을 많이 만난 건 사실이다. 수업이 끝나고 다 같이 길 너머 있는 영화관까지 걸어서 1987을 보았다. 나이가 들면 재밌든 재미가 없든 일단 슬프면 우는구나 눈물이 나오는구나 생각했다.


 어린 시절 논둑에서 함께 뛰어놀던 가난하고 맑은 영혼의 소년이 마음속 한편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그런 비슷한 느낌을 소환하는 사람은 남녀불문하고 애틋하다. 그런 사람은 힘을 휘두를 줄 모르기 때문에 어색함없이 친근하고 무언가 나서서  주고 싶 마음이 나게 한다. 학창 시절 혼자 힘들게 시련을 이겨내고 극복한 이야기나 휩쓸린 시대사를 살아낸 이야기에서도 찾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은 마음이 여리고 정에 약해서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거나 소모되기도 한다. 안쓰럽지그런 그들 좋은 것도 사실이다. 교실에서 가끔 그런 기질의 아이들을 편애하는 마음 들여다 보며 이유를 찾아보지만 잘 알 수는 없다. 은호는 요즘도 나약한 존재들이 자신의 덕목을 잘 써서 평화롭고 너무 힘들지 않은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폭력은 힘센 이가 자신의 불만을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 풀기 때문이다. 그 때의 그 길을 걸으면서 은호는 평화를 배웠다.


이유 없이 마음을 채워 주는 벗이 있다. 관계를 위해 소모하지 않고 단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안전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다. 괜찮은 척 하거나 마음을 절제하지않아도 되고 자연스러운 감성과 느낌을 공유하면 되니 그런 우정은 매순간 안심을 준다.

은호는 태생적으로 꽤 영특하고 섬세하며 창의적인 편이다. 빠르게 배우고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합리적으로 대처하려 하는 치밀한 면모를 갖고 있지만 다툼에 있어서는 확신이 없는 편이라 찬반양극의 갈등에서 이기는 일에는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논쟁하는 것에 게으르고 날을 세우는 관계나 극단적인 논란으로 힘을 빼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중간 즈음에서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합의하는 것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는 편이라 평화롭지 못한 양극단의 대립은 은호에게는 시간낭비일 뿐이었다. 토론회나 찬반의견을 내는 자리에서 확신에 차서 강한 어조로 피를 토할 듯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가끔은 부럽기도 했다. 은호가 갖지 못한 그런 태도가 강하게 어필할 수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은호는 모두를 이익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관심이 있었고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방법을 모색하는 일에 힘을 쓰려 하는 편이었다. 그러다보니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약자를 변호하는 데 기울어져 버릴 때도 많다. 이상적으로는 가진 것에 비해 낮은 자세를 겸비하고 진지한 삶을 살아가는면모를 지닌 사람을 좋아했다. 합리적인 조정을 해서 말이 안 되거나 비논리적인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부처님도 모두를 구제할 순 없지만 이성과 감성을 다 써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결정을 할 여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사람이 변할 숟도 있고 입장을 바꾸기도 하는 세상에서 안심할 수 있는 깨어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그런 이를 만나면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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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sh기획자

  차와커피를 내리고 지성과감성이 반반이며 이상적 성향은 은은미를, 마음을 아끼고 가꾸는 가드너. 차와 커피 요리 약자들이 까페와 외식에서 해방되고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나가길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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