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 퍼치스 티핸들의 아이코닉 티 테이스팅 세션에서 시티 컬렉션의 두 차들을 다 시음하자, 다음은 싱글 오리진 티들로 구성된 퓨어 컬렉션의 차례였다.
세 번째로시음한 차는 야바오였다.
야생에서 자라난 싹을 겨울에 채취해서 햇빛에 건조시킨 와일드 티로, 퍼치스 본사에서도 판매 중이다.
테이스팅을 진행하시는 분께서 야바오의 잎을 뜨거운 물에 넣어 우려내면 마치 꽃잎처럼 활짝 피어난다고 하셨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끓이기 전에 비해 정말 꽃이 핀 것처럼 피어있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2번째 사진 참조)
야생에서 자라나선지 다른 티들보다 덜 정제되고 덜 여과된 날 것 그대로의 풍취가 있었다. 향을 맡자 마치 비가 내린 뒤 물기를 머금은 진흙처럼, 살짝 비릿하고 눅눅한 흙냄새가 났다.향 뿐 아니라 맛에도 야생이 묻어났다. 비 오는 날의 땅을 연상시키는 엷고 색다른 맛이라, 잎들이 자라난 토질이 입안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차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정말 놀란 사실이 있었는데 야바오의 잎은 차나무가 아니었다. 야생에서 차나무 옆에서 자라난, 그야말로 야생의 나무들로부터 채취한 싹이라고. 어떤 나무인지 물어보니 노송나무라고 했는데, 노송나무에 속하는 나무들도 많아서 그중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나무인지는 듣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어쨌든 차나무의 찻잎이 아니라는 점이 다소충격적이었다. 퍼치스 본사의 홈페이지에서도 야바오는 the buds of wild-growing plants 라고 설명되어 있으며 차나무의 찻잎이라는 언급은 없었다.
네 번째로 마신 차는 퍼스트 플러쉬다즐링 숭마였다.
1863년에 세워진 숭마 농장은 인도 히말라야의 1100~1700m의 고도에 위치한다고 한다. 퍼스트 플러쉬는 한 해 중 가장 처음으로 수확한 차를 의미하는데, 숭마 농장의 퍼스트 플러쉬 다즐링이 바로 이 싱글 오리진 티다. 개인적으로 퍼스트 플러쉬라서 퓨어 컬렉션 중에서 가장 기대했던 티였다.
향은 은은했고 살짝 구수한 느낌이 미미하게 났다. 맛은 뭉근하게 맑고 엷었으며, 향보다는 조금 더 진하게 구수한 맛이 느껴졌다. 퍼스트 플러쉬답게 이번 시음회에서 마셔본 차들 중에서 가장 뒷맛이 깔끔했다.
이 퍼스트 플러쉬 다즐링 숭마는 에디션 덴마크 측에서도 극소량만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한다. 생산량이 적은만큼 본사와 한국 지점의 구분 없이 보유량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에디션 덴마크 측에서 이번 런칭을 위해 전부 가져온 바람에 본사 측에서도 솔드 아웃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시음한 차는 케냐였다.
마시기 전부터 매우 흥미로웠는데, 정말 산지가 케냐여서 이런 이름이 붙은 건지 궁금했다. 케냐하면 대표적으로 커피가 떠올랐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질문하기도 전에 진행자분께서 먼저 케냐가 커피 산지로도 유명하지만 차도 많이 생산된다고 말해주셨다.
케냐는 CTC(Crush, Tear, Curl의 약자. 홍차 제조방법 중 하나로 기계를 이용해 찻잎을 파쇄하고 찢고 뭉치는 가공법)로 만들어서 다른 티들에 비해 찻잎도 굉장히 곱게 갈려 있었다. 케냐에서 생산하는 차들은 이처럼 대체로 CTC 공법을 이용해 제조하며, 그로 인해 강한 맛이 특징적이라고 한다.
퍼스트 플러쉬 다즐링 숭마(위) & 케냐(아래)
개인적으로 퍼스트 플러쉬 다즐링 숭마 다음으로 기대된 싱글 오리진 티였다. 향은 예상보다 연했지만 특유의 느낌이 제법 농밀했다. 마치 낙엽들을 쌓아놓고 눅진하게 오랜 시간 놓아둔 것처럼 짙었다. 한 모금 마시자 입에 묻어나는 맛이 독특하고 진했다. 차가 자라나고 일구어진 토양을 맛보는 것 같았다.
아이코닉 티 테이스팅 세션에서 시음한 차들. 작은 꽃잔이 서울 블렌드, 그 위가 코펜하겐 블렌드, 왼쪽 맨 위는 야바오, 오른쪽 위가 퍼스트 플러쉬 다즐링 숭마, 마지막이 케냐다.
퓨어 컬렉션의 싱글 오리진 티들은 전부 퍼치스 본사에서 동일하게 판매하고 있다. 단, 시티 컬렉션의 코펜하겐 블렌드처럼 Perchs Iconics 라인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한국 공식 런칭을 하면서 새로 Iconic Tea 라인을 선보였는데, 이름에서부터 본사의 Perchs Iconics 라인과의 연관성을 느꼈다. 게다가 시티 컬렉션의 코펜하겐 블렌드를 그대로 가져오고 서울 블렌드도 특별하게 제작한 시점에서, Perchs Iconics 라인의 다른 여러 컬렉션들을 가져오지 않고 싱글 오리진 티들을 선택해 가져온 이유가 궁금했다.
싱글 오리진 티들이 특별하게 선택된 이유를 묻자, 진행자분께서 덴마크 에디션 측에서 조금 더 싱글 오리진 티들을 소개하고 싶었고,고급스러운 차라서 더욱 고르게 되었다고답해주셨다.
A. C. 퍼치스 티핸들의 Perchs Iconic 라인에는 시티 컬렉션 뿐만 아니라 다른 컬렉션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로열 컬렉션은 왕실에 차를 납품하는 A. C. 퍼치스 티핸들의 위상과 가장 직결되는 상징성을 띈 컬렉션이다. 예를 들어 이 컬렉션에 있는 킹즈 블렌드는 2024년 덴마크 국왕으로 즉위한 프레데릭 10세를 축하하며 덴마크 왕정에 대한 헌사로서 만들어진 기념비적인 티다. 그밖에 선대 여왕인 마르그레테 2세에게 헌정된 퀸즈 블렌드, Perchs Iconics 라인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현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크리스티안 왕세자에게 헌정된 티 등 왕실에게 바치는 스페셜 티들이 있다.
또한 덴마크의 대표적인 인물인 안데르센의 동화를 모티브로 한 티들인 H. C. 안데르센 컬렉션 라인도 있다. 덴마크의 국민 티 브랜드답게 덴마크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세계적인 동화작가인 안데르센과 관련된 티 라인을 만들고, 덴마크 왕실에 차를 납품하는 유서 깊은 티 브랜드로서 왕실에 헌정하기 위해 티들을 제작한 것은, A. C. 퍼치스 티핸들의 해리티지와 아이덴티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런만큼 시티 컬렉션 뿐만 아니라 로열 컬렉션, 더 나아가 왕실을 모티브로 한 티들과 안데르센 컬렉션 등을 왜 공식 런칭을 할 때 가져오지 않았는지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들 중 하나였다.
앞서 코펜하겐 블렌드를 마실 때 다른 시티 컬렉션을 가져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에디션 덴마크 측의 내부적인 이유로 (차를 선정할 때 개인의 의견보다는 회사로서의 논의가 우선된다는 점, 차를 들여오고 보관하는 등의 문제 등) 그러지 못했다는 답을 들었다. 이에 더하여 싱글 오리진 티들을 선정한 점, Core Tea 라인에서 페어앤진저나 진저샷 등의 티들을 빼고 새로 퍼치스 카모마일이나 쿨허벌을 선보인 점 등으로 볼 때 한국 공식 런칭을 맞아 새롭게 들여오는 차들을 선정함에 있어 특별한 기준이나 앞으로의 방향성과 연관된 의도가 있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이를 질문하자 기본적으로 에디션 덴마크 측에서의 최종적인 결정권은 대표인 오너가 가지고 있으며, 회사다보니 어느 한 명의 의견이 주를 이루기 보다는 사내에서 여러 의견들이 수렴된 결과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특정한 콘셉트나 방향성이 반영된 선정은 아닌 것 같았다.
마지막 티인 케냐는 우유를 넣어 밀크티처럼 마시면 좀 더 달달하게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들었다. 우유를 넣으니 좀 더 밀키하게 색이 변했다.
우유와 섞여서 그런지 향도 살짝 밀키하게 변하면서, 케냐의 오리지널한 향과 섞여서 조금 비린 듯한 신선하고 독특한 향기로 변했다. 맛은 우유의 부드러움이 기존의 진한 풍미를 중화시켜 조금 더 목넘김을 편안하게 만들어준 거 같다.
이렇게 아이코닉 티 테이스팅 세션이 마무리 되었다. 시음이 끝나자 1층 샵에서도 Core Tea에서 2종류의 차를 마셔볼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Iconic Tea 라인도 모두 마셔봤겠다 그 2종류의 차들도 무척 궁금해져서 기꺼운 마음으로 샵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