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생존일지"

A memoir with stray cats in Gapado, Jeju

by 차쌤

EP.14 제주의 여름, 태풍과 바람


제주의 여름은 참 다이나믹하다.


장마와 태풍. 이 단어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익숙한 단어들이겠지만 이 단어들의 수식어인 안개와 바람은 또 다른 면에서 자연 앞에 인간인 나를 한 없이 작고 겸손하게 만든다.


내가 제주로 이사를 온 3월, 동백은 이미 활개하고 군데군데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었지만 이 때도 제주의 바람은 무서웠다.


특히 가파도냥이들을 만나러 가는 날 아침이면 일기예보의 날씨 영역보다 먼저 눈이 가는 게 바람이 되었다.


운이 좋게도 지금까진 내가 들어가는 날을 피해 비가 내려줬고 이렇게 말 없이 날 도와주는 형태 없는 신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이런 운빨도 피해가지 못 하는 게 장마인가 보다.


장마로 배가 결항되어 내가 입도하지 못한 날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을 애석하게 바라보고 있던 중 내 휴대폰이 울렸다.


가파도 이모였다.


몇 달 전부터 한 쪽 눈이 심하게 아파 보이던, 동공이 심하게 부어 있어 하루라도 빨리 치료해줘야겠다 싶던 아이. 늘 내가 밥을 주고 있으면 살금살금 다가와 딱 정확히 세 걸음 뒤에 쪼그리고 앉아 45도 각도로 갸우뚱 하며 아픈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던 아이 소식이었다.


신기하게도 이 아이는 겁도 많고 다가가면 도망가는 영락없는 야생냥이였지만 내가 밥을 주며 밥그릇 물그릇을 닦고 있으면 어디선가 살금살금 다가와 내 앞에 두 손 모은 자세로 얌전히 앉아서는 고개는 갸우뚱, 눈은 땡글! 하곤 날 빤히 쳐다보았다.


동공이 크게 부어 있어 다른 한 쪽 눈도 더 땡글해 보이기도 했고 내 앞에 앉아 물끄러미 날 쳐다보는 모습에 심쿵했다 안쓰러운 마음이 교차하며 하루라도 빨리 내게 맘을 좀 더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늘 곁에 다가와 앉았기에 구조가 쉽겠지 생각했지만 겁이 너무 많아 한 두 번 마주친 걸로 내게 안겨주진 않았다. 야생에서 생존하는 아이를 억지로 잡는 건 여린 아이의 맘을 굳게 닫히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조심스러웠고 조금만 더 천천히 다가가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가 내 맘을 받아주길 기도했다.


조급하지 않고 기다리면 알아주겠지 하며 기회를 기다리던 중 아이가 내게로 콩! 다가왔다. 내 맘을 받아준 것이다.


또 한 번 심쿵하며 고마웠다.


이렇게 태풍이 지나가면 맑은 하늘이 펼쳐지듯 기다림 끝에 새로운 인연이 맺어졌다. 묵묵히 서로의 자리를 지키면서 얻은 숙명 같은 그런 인연.


9월_2.JPG "All you need is time and perseve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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