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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May 30. 2023

숙제이자 마음이자 편지

「사랑」에 관해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분명 내 글은 '나'와 '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였는데, 나는 이제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사랑, 이라니. 

 

모두가 너무나 쉽게 말하는 그 사랑.

아이들이 사진 찍을 때 만드는 그 하트.

사랑.

 

「사랑」은 이토록 허무하게도 글자로서 세상 곳곳에 넘실거리는데 내 입에서 나오는 “사랑해.”는 왜 그리 어려운지.

“사랑해.”가 어려운 사람이라 

「사랑」도 어려워진 걸까.

 


S에게, 

잘 지내고 계신지요? 

요즘 무탈히 지낸다는 이야기는 잘 전해 듣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조금 속상하기도 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잊히고 있는 건지, 하는 마음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함께한 지도 (였는지도 라고 해야 할까요?) 어느덧 이십 년이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처음이 언제였는지, 저는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열세 살, 여름이었지요. 그리고 겨울이었고요.

여름에 우리와 겨울의 우리는 달랐지요.

여름의 우리는 운동장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겨울에는 사서함을 오가며 함께 했지요. 

 

아쉬웠지만, 여름도 겨울도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연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곳에 있었지요, 당신과 함께.

 

그 후, 당신은 나를 쭉 밀어냈습니다.

여드름이 송송 나던 때에도,

진로와 대학 앞에 하염없이 흔들리던 시절에도.

저는 기다렸습니다.

 

스무 살, 

이렇게 쓰면서도 가슴이 설렙니다.

스무 살, 대학생, 어른.

 

그렇습니다. 당신이 어른이 되었습니다.

저도 함께 어른이 되었겠지요. 

당신은 나를 불렀다, 가버렸다, 마주했다, 도망갔다.

그렇게 숱하게 반복했습니다.

아마도, 확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요.

나,라는 확신이요.

 

그리고 다시 몇 년, 

아이였던 당신이 어른처럼 보이던 스물넷쯤, 그쯤.

 

당신이 활짝 피었던 그때, 

우리는 온전히 함께였지요. 

더운 여름 바람에 함께 맥주를 마시고,

아침에 스쿠터를 타고 동네를 누비고,

그리고 당신의 뺨 위에 그의 손이 닿을 때,

마주쳤을 때,

침대 위에서 잠들 때, 

우리는 온전히 함께였습니다. 

 

 

 

그로부터 수년, 

당신이 내 덕에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됐을 때도,

나를 원망하다 못해 식음을 전폐할 때에도,

매일매일 지나가는 차 소리에 주저앉아 눈물 흘릴 때도.

나는 당신 옆에 묵묵히 있었습니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멀어졌을까요?

분명 당신의 십 년은 내가 만들어 내는 세상이었는데,

언제 당신은 나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나요. 

 

마음이란 건, 

항상 당신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요즘 부쩍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이렇게 당신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 건 아닌지,

영영 나는 당신에게 닿지 못하는 건 아닌지.

나는 오늘도 빈 세상에서 유영합니다.

 

당신이, 무탈히 잘 지낸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그립지 않은가요? 

 

나는 당신이 보여줬던 모든 마음을 합친 만큼,

당신이 그립습니다.

 

언제쯤, 내 이름을 다시 불러줄 건가요? 

 

가을입니다.

내가 생각나기에 좋은 계절이지요, 

오늘도 당신을 기다립니다.

 

-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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