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선생고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조 May 10. 2023

선생님은 너랑 싸우고 싶지 않아.

나와 교사와 어른.

"X발."

"저딴 게 쌤이라고."


이 밖에도 많은 말들이 있지만, 일단 제 면전에서 들었던 가장 강력했던 두 마디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솟구치는 화를 참고 진정되지 않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씁니다. 1분 내외에 정적은 끝나야 합니다. 


 상황과 아이, 교사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상황에 맞는 대처방법들이 있겠지만 제가 제일 먼저 하는 방법은 역시 공론화시키기입니다. 아이가 내뱉은 말을 감추거나 무시하기보다는 교실 전체 상황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물론 이 건 아이가 모두가 있는 교실상황에서 제게 무례한 언행을 했을 경우입니다.



"하은아, 지금 뭐라고 했니?"

"아무 말 안 했는데요." 

 대부분의 경우에 돌아오는 대답입니다. 보통의 아이들은 순간의 화로 말을 내뱉었기 때문에 내뱉는 순간 본인의 잘못을 알아챕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하은이가 하는 말 들은 사람?"

 이때부터 교실 속에 본인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많은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사건은 공론화되었습니다. 이제 아이는 본인이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화내거나 흥분하지 않고 침착한 상태로 사실만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아이가 본인의 말을 인정하면 그때부터는 일대일로 대화합니다. 아이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고 모든 책임과 잘못을 교사에게 전가합니다. 혹은 몰라요로 일관하죠. 이 대화를 잘 견뎌내야 합니다. 


"왜 ~라고 말했나요?"

"몰라요."

"모르고 ~라고 말 한 이유가 뭘까요?"

"모른다구요."

"그러니까 하은이는 왜 모르면서 ~라고 말했을까?"

 답답하신가요? 그 답답한 대화를 저는 계속 연결합니다. 아이가 답답함을 못 이기고 본심을 내뱉을 때까지요. 역시나 중요한 것은 윽박지르거나 화내는 등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행위입니다.

"쌤이 그렇게 했으니까 그렇죠!"

"선생님이 어떻게 해서 하은이가 그런 말을 했을까?"

 제자리 걸음입니다. 이 경우 제가 느끼는 감정은 화남보다는 (상황에 대한) 피곤함입니다. 보시기에 어떤가요? 말장난 같지 않나요? 그렇지만 아이와 저 모두 엄청난 감정을 소모하는 대화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저는 교사이자 어른이고 아이는 학생이자 약자이죠. 저는 최대한 저의 권력 혹은 권위를 감추고 대화를 이어나가야 합니다. 


"죄송해요."

아이가 사과를 합니다. 경우에 따라 진심으로 사과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은 마지못해 하는 사과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마무리 짓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에 대한 사과인지 말해줄래?"

 저는 끈질긴 사람입니다. 그러나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이의 잘못으로 벌어진 상황이라면 아이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기 위해 본인 입으로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저딴 쌤이라 해서 미안하다구요."

내용과 말투의 온도가 다르지만 넘어가기로 합니다. 아이도 이 정도면 많이 내려놓았으니까요. 

"그래, 하은이가 ~라고 말한 것에 대한 사과는 선생님이 받아들일게."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선생님은 너랑 싸우고 싶지 않아."

제 진심은 간단합니다. 아이와 이런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세운 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한테 불만이 있다면 대화로 해결했으면 좋겠어." 

"네." 


또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늘도 열세 살 아이와 싸웠다는 사실에 심신이 지치고 현타가 옵니다. 30대 후반의 어른이라는 하나의 인격체인 내가 언제까지 아이와 싸우고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아이들이 모두 들었으니 이제 내일이면 아이들은 하은이가 얼마나 혼났는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며 저희를 지켜보겠지요. 얼마 남지 않은 제 교권을 지키려면 내일 하은이가 제 수업을 열심히 들어주어야 할 텐데, 과연 어떤 모습일지 저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저는 직업만족도가 높은 편입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속에서 자존감이 오르고 행복을 느낍니다.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들이 생기면 마음이 휘청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너무 잦아서 대단한 에피소드도 되지 않습니다. 휘청이지 않아야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는데 저를 휘청이게 하는 것 또한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휘청이는 저를 잡아주는 것 또한 아이들이지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오늘은 아닙니다. 오늘은 제 교실을 지나가던 종호가 굳이 문을 열고 인사를 하고 갔거든요. 종호의 반가운 인사가 오늘의 저를 채웠습니다. 이 힘으로 내일도 또 나아가겠죠. 내일도 싸우지 않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선생님은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1. 하은(가명)이와의 일은 사실 한 달쯤 전 일인데 하은이는 그 일 이후로 (나름) 열심히 수업을 듣습니다. 뾰족하던 가시도 많이 줄었고요. 그게 뭐라고, 그것만으로도 참 귀엽습니다.

2. 사건을 공론화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아이를 곤란한 상황으로 몰아 정서적 학대를 했다는 증거로 쓰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교사분들은 아시죠?) 저흰 뭘 해도 정서적 학대로 몰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씁쓸하게도 말이에요. 

매거진의 이전글 교평과 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