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조 May 14. 2023

쏟아내는 게 제 감성이에요.

이미 글렀다. 몇 번이나 딜리트 키를 눌렀으니 이건 이미 제목과 첫 의도에서 벗어난 글이 되었다. 그러니까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이미 시작한 글이니 계속 써보도록 하자. 


나는 ESTP이다. 엣팁. MBTI를 신봉까지는 아니지만 인간을 보여주는 단편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ST다 보니 감성글을 쓸 수 없다는 말이다. 쓸 수만 없는 게 아니라 사실 읽을 수도 없다. 읽지 않는 것도 맞는데 읽지 못하는 것도 많다. 도저히 글을 읽어 내려갈 수가 없다. 그럼 나는 감성에세이라고는 못 쓰는 사람일까? 그건 아니다. 다만 대중화된 '감성'과 다를 뿐.


내 감성은 쏟아내는 것이다. 머릿속 생각들을 여과 없이(이 부분이 지금 어긋나고 있다.) 쏟아내는 것. 그런 쏟아내는 글을 쓴 지는 20년이 다 되어간다. 여과 없는 글이다 보니 개인적인 공간에 머무르던 글이었는데 브런치에 익명성을 빌려 가져와 보았다. 사실 교사 자아와 분리하고 싶었는데 어느 쪽도 불완전한 내가 분리가 될 리가 없지. 그렇지만 여러분은 분리해서 보아주시길, 부탁은 해 본다.


 쏟아내는 글을 쓰기 시작했던 이유는 자판 소리가 좋았기 때문이다. 처음 내가 가졌던 노트북은 SONY사에서 나온 VAIO (2014년에 소니에서 떨어져 나왔다.)의 핑크색 노트북이었는데, 그 노트북은 키보드의 자판들이 모두 낱개로 떨어져 있어 자판의 느낌과 소리가 다른 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그 키보드가 내는 모든 소리가 좋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판을 두드렸다. 지우기보다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자판으로 두드렸다. 심지어 20대 초반이었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을 표현하고 싶었고 말하고 싶었고 알리고 싶은 시기였다. 핑크색 바이오는 나를 따라 전국을 돌았고 전 세계의 사진을 담았고 흔들리는 나의 정신상태를 기록했다. 나는 감성적인 사람은 아니었으나 감정의 기복이 심했고 안주하지 못하는 삶에 불안했다. 불안함을 모두 쏟아냈다. 핑크색 자판이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나면 나는 좀 괜찮아졌다. 당시 글은 아래와 같다.


건방지게도 나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괜찮을 거라고. 쓰레기 같은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쓰레기 같은 것을 위장으로 밀어 넣었다. 쓰레기가 쓰레기를 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쓰레기통이 쓰레기를 먹는 것도 결국은 그런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아,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이 글은 앞뒤가 없고 내용도 없고 나조차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문장의 혹은 단어의 연속이다. 나는 오랜만에 블로그질을 한다. 싸이에는 올릴 수 없는 여과되지 않은 문장들을 배열할 테니까. 역시 익명성을 찾게 되는 건 문제다. 자신이 없는 건가. 아니다, 단지 보여주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렇지만 역시 자신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타인으로부터 시작한 짜증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모든 것의 근원은 나인 것만 같다.


위와 같은 글을 토해내고 나면 나는 정말로 좀 괜찮아졌다. 다만 그 토사물을 지금처럼 시간이 흐른 후에 보게 되면 조금 부끄러울 뿐. 핑크색 노트북이 수명을 다하고 나서는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조금 어려워졌다. 교사 자아가 생겨 조심하기도 했고 자판소리가 좋던 노트북이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쓰고 싶어졌다. 왜일까. 


 핑바는 없지만 키스킨이 올라간 키보드에선 소리도 거의 나지 않지만, 여기서도 만나요. 쏟아내는 것이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