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다. 피곤함을 이끌고 저녁 8시 36분에 브런치에 올릴 글 따위를 쓰기 위해 동네 카페에 와 있다. 얼굴은 지쳤고 몸도 노곤하다. 눈이 감긴다. 오늘은 수요일이다. 수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날인데 아침부터 2시 30분까지 비는 시간 없이 수업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나면 일단 좀 쉰다. 쉬어야 한다. 교사의 수업 시간은 틈이 없다. 가끔은 초단위로 시간이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로 바쁘다. 끝없는 질문과 대답 속에서 입과 귀가 쉴 틈이 없고 그 와중에 딴짓하는 아이들이 없는지 시간 계획은 제대로 흘러가는지 확인하느라 눈도 멍하니 뜰 수 없다. 수업이 계획과 달리 움직인다면 당장 머릿속으로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 내야 한다. 40분간의 호흡이 희열이 느껴질 정도로 재밌을 때도 있지만 보통은 루틴처럼 진행되고 가끔은 버겁고 지친다. 오늘은 굳이 고르자면 지겨웠다.
교사가 지겹다니 이딴 수업이 다 있나 싶지만, 다행히도 수업은 나쁘지 않았다. 조금 건방지게 말하자면 나는 꽤 괜찮은 수업을 하는 교사축에 속한다. 준비한 수업은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차근히 학습했고 복습차원에서 진행한 게임도 적극적인 참여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런데도 지겨웠다. 그냥 그럴 때쯤이 된 거다. 마치 권태기처럼 아이들과의 관계도 약간 시들하고 수업도 지겨워지는 시기. 주기적으로 그런 시기가 오는데 나는 보통 스승의 날을 기점으로 자주 생기를 잃는다. 이유는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다. (매거진의 지난 글 '손바닥을 때리는 것 정도는~' 글을 참고해 주길 바란다.) 생기를 잃은 나는 잘 웃어주지 못한다. 교사도 한낱 인간인지라 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유 없이 화를 내지는 않지만 평소처럼 별 것 아닌 것에도 잘 웃어주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웃었고 그랬으니 오늘도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조금 늘어져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거나 폰을 잠시 보다가 다시 내일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 나의 특기는 자료를 만들기보다는 다른 훌륭한 선생님들이 공유해 주신 자료를 보고 수업 방향과 흐름을 잡아 자료들을 2차 가공해 나만의 수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즉, 창작은 못하지만 응용은 가능하다. 누군가는 남의 자료 가져다 쓰는 게 선생이냐,라고 하지만 나는 교사에게 자료 제작이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클릭교사(다운로드한 자료를 고민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것)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자료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니 수업자의 의도에 따라 자료가 이용되는 것이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내일 수업을 준비하고 나면 퇴근 시간이다. 오늘 어른이랑 대화했던 시간이 있었던가, 생각해 본다. 수업을 제외하고 언제 말했더라. 급식소에서 감사합니다 인사 말고는 오늘 대화는 0이다. 그런데도 목은 따갑다. 더 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다. 퇴근과 동시에 교사 나도 로그아웃이다.
그리고 집. 평일 퇴근 후에는 좀 쉬다가 운동 가는 게 일상인데 오늘은 좀 쉬기로 한다. 오늘은 별일이 없었는데도 지쳤다. 열심히 했지만 지겨웠고 별일 없는데도 지치는 하루다. 이런 날은 역시 배달음식이다. 몸에 나쁜 것을 넣고 본격적으로 게을러져야지. 내 꿈은 베짱인데 오늘도 너무 개미같이 살았다.
역시 오늘의 지침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오는 것이었다. 언제쯤 가능할까, 베짱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