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선생고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조 Jun 25. 2023

범법 행위를 하고 말았습니다.

 도덕적인 사람은 아닌데 규칙이라도 어기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단횡단이라던가 신호위반 같은 것들은 특히 별로입니다. 아무리 차가 없어도 신호는 지켜야 하고 동선이 다 꼬이더라도 횡단보도를 찾아갑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살면서 이렇게 그 두 가지에 집착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굉장히 제멋대로임에도 법은 지켜야지요. 그런 제가 오늘 범법 행위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 법을 어긴 것은 '아마도' 처음입니다. 


오늘은 학교에서 바자회가 열렸습니다. 열어놓은 교실 창으로 아이들의 소리가 가득합니다. 물건을 팔고 사고 흥정을 하는 목소리에 신남이 가득합니다. 아이들의 소란에 저는 피어오르는 걱정을 애써 삼킵니다. 저렇게 흥분된 상태로 다음시간 수업에 들어온다면 수업 내내 저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느라 진을 빼야겠지요. 아이들이 들어옵니다. 아니나 다를까 빨갛게 상기된 얼굴에는 다양한 감정이 가득합니다. 일단 바자회의 ㅂ 도 꺼내지 않기로 합니다. 오늘의 표현은 'Do you have ~?'입니다. 필통 속에 어떤 다양한 물건들이 있는지 물어보고 답하던 중, 지훈이가 필통에서 칫솔을 꺼냅니다. "왜 필통에 칫솔이 있어?"라고 묻자마자 스무 개의 입들이 조잘거리기 시작합니다. 제가 지뢰를 밟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칫솔은 바자회에서 구입한 물건입니다. 모두가 자신이 구매한 물건들을 알려주지 못해 안달입니다. 들어올 때 속상해 보이던 몇몇은 물건을 팔지 못한 아이들입니다. 자신들의 물건은 떨이에 떨이를 했지만 팔지 못했다고 투덜거립니다. 무엇을 가지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당연히 팔릴 것이라 생각했나 봅니다. 이대로 수업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수업 내용으로 다시 아이들을 끌어옵니다. 다행히도 오늘치 목표는 달성하고 종이 울렸습니다. 아이들을 보내고 다음 반 준비를 하는데 선우가 다시 왔습니다. 선우는 또래치고 덩치가 큰 남학생으로 수업을 열심히 듣는 조용한 학생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10살이지만 선우는 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찾아온 선우에게 놀라움이 먼저 들었습니다. 


- 선우, 무슨 일이야? 

선우는 대답 없이 굳은 얼굴로 갈색곰인형 하나를 건넵니다. 말하지 않는 아이니 물어보아야 합니다.

- 응? 선생님 준다고?

- 네, 바자회에서 샀어요. 

아까보다는 조금 풀린 얼굴로 대답을 합니다. 

- 바자회에서 산 걸 선생님 줘도 돼? 

선우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평소 선우를 떠올리니 이걸 가져오는 데까지만 해도 엄청난 용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건 얼마 주고 샀어? 

- 천 원이요.

천 원이라니! 떨이도 되기 전에 정가에 산 게 분명한데, 열 살의 천 원을 제가 받아도 되는 건지 짧은 시간 동안 한 번 더 고민하고 질문합니다.

- 천 원이나 주고 산 걸 정말 선생님 줘도 돼?

이런, 선우가 아까보다 떨고 있습니다. 제 질문이 거절처럼 보였나 봅니다. 사실 저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로 아이나 부모가 건네는 것은 어떤 것도 받지 않습니다. (편지나 종이접기, 그림은 예외입니다. 직접 만들었다는 쿠키는 한 개만 받고 나머지는 돌려보냅니다.) 지나칠 정도로 돌려보내 가끔은 서로가 불편해질 정도입니다. 커피 한 잔도 돌려보내는 저인데 이 곰돌이 인형이 저를 시험합니다. 평소의 저라면 절대 받지 않았을 일입니다. '고마워, 그런데 선생님이 00 이의 마음만 받을게. 이건 다시 가져가.'라고 말하는 게 저답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곰인형은 받고야 말았습니다.

- 고마워, 선우야. 너무 귀엽다.

아, 이것 때문이었나 봅니다. 아이의 표정이 그제야 풀어집니다. 긴장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들거리던 몸도 이제야 진정이 되었습니다. 선우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뛰어서 사라집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교실로 돌아갔을 겁니다. 저는 곰인형을 들고 다시 생각합니다. 


 저는 평소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했습니다. 범법 행위를 저질렀죠. 몇몇의 아이들이 교실에 남아있었으니 목격자도 있습니다. 다시 돌려줘야 할까, 이걸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비어있는 선우의 책상을 봅니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니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선우가 곰인형을 내미는 순간 저는 행복해졌습니다. 그간의 피곤함과 직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만큼 커다란 행복이었습니다. 열 살의 천 원으로 저는 또 당분간 이 일을 할 힘을 얻었습니다. 귀엽고 따스한 사랑스러움이 마음 가득히 들어찹니다. 범법 행위를 하고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걱정을 시작합니다. 나 그거 돌려줘야 되는 거 아닐까, 받아도 되나. 잡혀가는 거 아닐까. 

- 그걸로 잡혀갈 거면 그냥 관둬. 

우문현답입니다. 열 살의 천 원짜리 마음으로 제가 편애와 비리를 저지를 거라 예상하여 처벌을 내린다면 저는 그냥 이 일을 그만두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경제적 이득이 이 일의 장점이 아닌데 아이의 온기마저 거절해야 하는 일이라면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 교사는 졸업을 하거나 교육지도가 종료된 상황에서만 금품(카네이션 포함)을 받을 수 있음. 김영란법 시행은 교사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나 가끔 카네이션 한 송이까지도 거절해야 할 때는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함. (잠재적 범죄자인 거죠, 저는?)

매거진의 이전글 지겨워, 수업. (그 수업 네가 하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