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학년을 가르칠 때면 '샤프 금지'라는 규칙을 내 겁니다. 손의 소근육 발달이 완벽하지 않은 저학년에게 샤프보다 연필이 적합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연필 소리를 좋아하는 나의 마음이 조금 숨겨져 있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 평상시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적막' 속에서 집중한 입과 짧고 통통한 손가락으로 써 내려가는 ㄱ, ㄴ, ㄷ 혹은 나, 너, 우리 그 글자를 쓰고 있는 아이들의 손끝, 입술 끝과 그 안에서 들려오는 연필의 사각거림 같은 것들을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샤프를 선망하죠. 금지된 것에 대한 선망과 고학년들의 모습이 그들 눈에는 퍽이나 멋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샤프 금지'라는 규칙이 나에겐 교육이지만 그들에게는 '금지' 가 될 뿐입니다.
규칙을 내걸어도 5월이 지나가면 아이들이 몰래몰래 샤프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샤프의 딸깍거림이 교사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마음은 아주 귀엽지만 규칙은 규칙이니까 오늘도 저는 제 몫을 합니다.
"샤프 넣으세요."
"아니, 그게에." 얌전히 넣으면 1학년이 아니겠지요.
"내가 안된다고 했는데 엄마가 사줬다요. 긍데 연필은 없는데 그럼 뭘로 써요 성생님?"
아이는 규칙이 무너진 발음과 문법으로 엄마 핑계를 댑니다. 귀여움에 자칫 흔들릴 수 있으나 규칙은 일관되어야 하는 법이죠.
"샤프 넣으세요. 연필 없으면 친구 것을 빌리거나 앞에 있는 함께 쓰는 연필을 사용하세요."
1학년은 귀엽습니다. 선생님한테 잘 보이고 싶으니 말도 잘 듣습니다.
그럼 같은 상황의 고학년 교실로 가볼까요. 고학년 교실이면 저는 새로운 규칙을 제시합니다. '필기 시 펜 사용 금지'입니다.
"지은아, 연필로 쓰자."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기는 고학년 교실입니다.
"왜요?" 이 왜요는 정말로 궁금증에서 나오는 왜요입니다. 반항기 섞인 왜요 와 잘 구별해서 들어야 합니다. 저는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지은이는 펜을 필통에 넣고 샤프를 꺼내 들지만 표정은 넣질 못했습니다. 이해가 안 되고 불만이 가득합니다.
학교는 그런 곳입니다. 금지된 것들이 가득한 곳. 매해 만나는 선생님마다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는 곳. 샤프를 못 쓰는 1학년이 펜을 못 쓰는 6학년이 되고, 복도에선 뛰면 안 되며 계단을 두 칸씩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은 안 됩니다. 엘리베이터는 있지만 탈 수 없고 즐거운 점심시간이지만 급식소에선 떠들 수 없습니다. 모든 금지된 것들에는 '교육' 및 '안전'이라는 이유가 있지만 보통 이유는 궁금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또 아이들과 제 사이에 거리가 생깁니다. 이유를 설명하지만 이해되지 않았거나 이해되었더라도 잊고 맙니다. 선생님이 뭐라고 했건 드넓은 복도에서 뛰는 것은 재밌고 계단은 두 칸씩 성큼성큼 내려가야 빨리 갑니다.
제가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었을 때를 떠올려봅니다. 고등학생 때 하품을 하면 정말 차갑게 정색하며 화를 내시던 수학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 시간엔 잠들거나 떠드는 것보다 하품하는 것이 더 큰 잘못으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당시 학생이었던 저는 수업 중 하품을 하지 말라는 그 규칙이 너무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품은 생리현상이고 내가 참을 수 있는 게 아닌데 그것 때문에 왜 혼나야 하는지 졸업할 때까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선생님이 조금 과했다고는 생각하지만) 수업 중 들리는 하품이 교사의 사기와 아이들의 집중력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를 합니다. 그리고 사실 하품도 숨기려면 얼마든 숨길 수 있죠. 학생일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선생님의 규칙이 교사가 되고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지금 고작 8살에서 13살인 아이들에게 제 규칙이 얼마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일지 추측은 됩니다. 가끔은 저조차도 '이런 복도라면 안 뛸 수가 없겠는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렇지만 바른 글씨는 초등학교 때 습관으로 굳어져야 하고 계단이나 복도에서 뛰는 행위는 안전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입안에 있는 음식물을 삼키고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그들도 '금지'된 것들의 '교육적 목적'을 깨닫는 날이 오겠죠. 그렇기에 오늘도 다시 외칩니다.
"걸어가!"
저를 흘겨보는 아이의 얼굴이 억울합니다. 발은 분명 걷는데 몸은 뛰는 것처럼 앞으로 쏠려 있습니다.
오늘도 학교에는, 학생들은 억울하고 선생들은 걱정하는 그런 삶이, 연필 소리만큼 가득합니다.
+ 미안해, 선생님도 급할 땐 두 칸씩 올라가.
1. 글자를 쓸 때, 샤프는 연필에 비해 마찰력이 약해 쉽게 미끄러지므로 다루기 어려움.
2. 힘 조절이 어려워 샤프심이 자주 부러지고 쓰는 행위보다 샤프를 관리하는 데 관심이 집중될 때가 많음.
펜도 동일함. (샤프보다 펜이 더 미끄럽고 펜에 사용할 색을 고르느라 시간을 다 쏟음. 글씨를 틀리면 그때부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