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학교의 일상이 정신없이 흘러갈 뿐이었다.
나는 살짝 머쓱해졌다.
그리고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싶어졌다.
아이들에게 내심 미안해졌다.
우리 학교 3학년이 4교시를 마친 교실은 아비규환 그 자체이다. 교실이 급식실로 변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담임인 3학년 9반의 교실도 예외일 수 없다. 4교시를 마치는 종이 울리면 교실 급식 당번이 배식카트를 가지러 간다. 교실 급식 당번은 배식카트를 끌고 오는 게 아니라 타고 온다. 교실 급식 당번이 배식카트를 타고 오는 동안 배식받을 아이들은 서로 앞줄에 서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특히 남녀대결이 볼만하다. 배식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실랑이가 전개된다. 배식받는 아이들이 급식 당번에게 '야, 더 줘!'라고 거칠게 내뱉으면, 급식 당번 아이들은 배식받는 아이들에게 '주는 대로 처먹어!'라며 앙칼지게 응수한다. 배식을 완료하고 식사를 하는 동안에 아이들은 <수요미식회>의 패널이 된다. '아, 짜!', '다이어트 식단이야?', '개맛없어!, 물론 '개맛있어!'도 들린다. 가끔.
점심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던 날들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3학년 8반의 4교시 수업을 마치고, 늘 그랬듯이 급식 지도를 위해 교실로 갔다. 왁자지껄하고 시끌벅적해야 할 교실에 아이들이 없었다. 교실 급식 당번을 포함해서 십여 명 정도만 교실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이 왜 교실에 없는 것일까? 이유는 이러했다. 우리 반의 윤주와 현주가 복도를 걸어가면서 '식빵'을 가득 담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옆을 지나가던 1학년 남학생들이 '식빵'을 흉내 내어 시비가 일었다. 그런데 현주의 남자친구인 용우가 이 사건을 듣고 자신과 친한 친구 무리를 데리고 1학년 남학생들을 응징하러 화장실로 출동했다. 게다가 나머지 아이들은 그 상황을 구경하려고 혹은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따라나선 것이었다. 얼추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었다.
나는 마음이 어지러웠다. 이 상황이 학교폭력으로 번질까 봐 겁이 났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시비의 당사자는 우리 반 여학생인 현주와 윤주 그리고 1학년 남학생들이다. 그런데 1학년 남학생들에게 위협을 가한 학생은 우리 반 남학생인 용우와 그의 친구들이다. 1학년 남학생들은 3학년 선배들이 무리를 지어 자신들을 협박했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학교폭력위원회나 법률에서는 두 사건을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용우와 그의 친구들인 우리 반 남학생들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수습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 교실 문을 나섰다. 3학년 교실이 있는 5층을 채 내려가기 전에 아래층에서 교실로 올라오고 있는 우리 반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이 식사를 마칠 무렵 나는 현주를 교무실로 불러서 취조하듯이 사건의 경위를 질문한 뒤 대답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비꼬듯이 혼냈다. 네가 1학년 남학생들이랑 시비가 붙은 일을 남자친구가 해결해 주니까 좋으냐고, 덕분에 너의 남자친구는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다고. 현주는 평소에도 신경질적인 반응과 짜증스러운 응대가 잦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나의 비꼬는 듯한 훈계를 들었으니 기분이 좋았을 리가 없다. 불만 가득한 표정과 자세로 나의 꾸중을 들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현주를 혼낸 사실이 우리 반 아이들에게 알려졌고 아이들은 나에게 적대감을 표시하며 나의 처분에 격하게 반발했다. 아이들은 학생들끼리 이야기를 통해서 문제를 잘 해결했고 상황이 종결되었는데 왜 선생님이 나서서 분란을 일으키냐며 원망했다. 나는 격분해서 아이들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루의 시간이 흘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학년 남학생들이 우리 반 남학생들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하지 않았고 부모님이나 선생님들께도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1학년 남학생들이 우리 반 남학생들의 행동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학교의 일상이 정신없이 흘러갈 뿐이었다. 나는 살짝 머쓱해졌다. 내가 솥뚜껑을 보고 자라라고 놀란 것은 아닌가 싶었다. 예방교육도 필요하지만 문제의 상황이 발생하면 적절히 개입해서 해결에 도움을 주는 역할이 더 적절할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싶어졌다. 아이들에게 내심 미안해졌다.
나는 생각했다. '교실에서의 문제 상황에 교사의 성급하고 어설픈 개입은 교사와 아이들과의 관계를 어긋나게 할 수 있다. 아이들은 교사의 이른 개입을 논리적으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가 나빠진다. 교사가 교실의 아이들 전체와 대립하는 상황으로까지 악화될 수 있다. 아이들의 일상적인 관계는 조용히 지켜보면서 교류의 정도를 인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문제 상황의 초기에는 면밀한 관찰을 통해 원인과 갈등의 정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끼리 문제 상황을 해결하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자정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사가 인내심을 가지고 잠시 기다려주는 게 필요하다. 아이들끼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거나 갈등의 폭이 깊어지는 시점에 교사가 적절한 정도로 개입했을 때 갈등의 해소가 빠르고 교육적 효과도 뛰어나다. 교실에서의 다양한 상황에 교사가 적절히 개입하여 아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교육적 안목과 감식안을 키워야 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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