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위에 흩어지고 시간 따라 흘러가는 내 일상을
글로 기억하고 글자에 붙잡아 두고 싶었다.
그렇게 잊었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글을 쓰는 이유와 글을 못 쓰는 이유 사이 어디쯤에서 번뇌한다.
나는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좋아했다. 처음 읽은 책은 <미망>이었다. 이전에는 박완서 선생님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미망>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미망인'이 아니어서 참신하게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사람이 아닌 상태로 제목을 정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렇게 <미망>으로 시작된 나의 박완서 '질릴 때까지 읽기'는 <아주 오래된 농담>까지 수년을 이어졌다. 그렇게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탐독하다가 우연히 박완서 선생님께서 마흔에 등단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순간 나도 박완서 선생님처럼 다소 나이가 있더라도 언젠가 꼭 등단하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에 품었다. 그때가 대학생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박완서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고 박완서 작가라고 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작가라는 막연하고 먼 꿈을 잊었다. 작가로서의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고 글쓰기를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오늘의 생계를 걱정하는 월급쟁이가 되었다. 월급쟁이가 된 뒤에 작가는 나와 다른 세상의 단어가 되었다. 직장인과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작가의 삶과는 상관없는 것들로 일상을 채웠다. 그나마 글쓰기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기획서나 보고서 따위를 작성하는 게 전부였다. 기획서나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글쓰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일일 뿐이다.
나는 교사다. 배워서 남 주는 게 나의 일이다. 내 노력이 남의 성장을 돕는 데 쓰인다. 보람을 느낄 때도 있지만 자주 내가 휘발되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소진, 내가 남을 위해 모두 쓰여 희미해지다가 사라질 것 같다. 드물게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로 날려버린 나의 무언가를 채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들었다. 시간 위에 흩어지고 시간 따라 흘러가는 내 일상을 글로 기억하고 글자에 붙잡아 두고 싶었다. 그렇게 잊었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게 어렵다. 더러는 고통스럽다. 퇴근 후의 휴식과 주말의 재미를 포기해야 한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데 일주일이 꼬박 걸린다. 네다섯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생각과 고민을 반복해도 한 단어조차 쓰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래도 글을 쓰는 게 재밌다. 어지러운 마음과 복잡한 생각을 하나의 주제로 정리하면서 글을 완성했을 때 느끼는 희열과 쾌감이 짜릿하다. 내가 창작자가 되는 시간이다. 나는 이제 그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애써 하는 게 글쓰기다. 어떻게든 짬을 만들고 여유를 내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글을 쓰지 못하는 게 스트레스가 되는 순간도 있다. 그렇게 진짜 작가를 꿈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못 쓰는 날이 많다. 일단은 밥벌이가 제일 큰 핑계가 된다. 밥벌이는 생존이다. 핑계라고 하기엔 적지만 소중하다. 그 적고 소중한 월급을 받아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상환하고,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입을거리를 장만하고, 쓸거리를 마련하고, 연로하신 부모님의 건강을 돌보고, 이제는 그저 젊기만 하지 않은 나를 살펴야 한다. 이 월급을 받으려면 오늘의 일을 해내야 한다. 오늘의 일은 내일로 미루자는 우스갯소리를 진짜로 믿는 직장인은 없다. 그게 K-직장인이다.
무엇보다 겨우 예닐곱 편의 짧은 글을 쓰고는 필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내가 구사하는 표현력의 한계와 얕은 어휘력에 직면했다. 분명히 다른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전에 썼던 글에서 많이 보던 문장과 표현이 반복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쓴 글이고 쓰고 있는 글이지만 내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닌 것 같다는 막연한 의심이 생겼다. 그렇게 쓰다가 잠시 중단하거나 아예 지워버린 주제와 문장들이 있다. 한참을 주제도 잡지 못한 채 고민하고 방황했다.
길을 찾지 못해 헤맬 뿐이지 목적지를 잊어버린 게 아니다.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느라 걷지 못했다. 걷지 못하면서도 걷는 걸 잊어버리게 될까봐 불안했다. 지금도 길을 찾아서 걷는 게 아니다. 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걸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걷다가 길이 찾아질 거라고 믿고 있다. 확신한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글을 쓰는 이유와 글을 못 쓰는 이유 사이 어디쯤에서 번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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