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존버
“어어허”
“으으으흐”
짬뽕국이 나온 날, 여기저기서 나지막하게 들리는 소리다.
물론 대놓고 “아아아, 시워어어어어언하다.”도 빠질 수 없지.
알다시피 짬뽕국은 면이 없는 짬뽕이다. 면만 빼고, ‘짬뽕!’ 하면 떠오르는 거의 모든 식재료가 들어있다. 오징어, 홍합, 돼지고기, 목이버섯, 애호박, 양파...
여기에 우리 학교 급식대가들의 특급레시피가 맛을 더한다. 그 특급레시피를 나는 모른다. 교과교사는 알 수가 없지. (나는 먹잘알이고 맛잘알이지만, 요알못이다. 라면조차 맛이 없다. 미스터리다.)
우리 학교 짬뽕국은 고기짬뽕과 해물짬뽕이 섞여 있다. 고기짬뽕과 해물짬뽕이 가진 각각의 단점을 걷어내고 장점만 살려서 잘 섞인, 맑음을 잃지 않을 정도로 살짝이 묵직하면서 시원한 맛을 자랑한다. 과하게 탁한 고기짬뽕 국물도 아니고, 맑다 못해 가볍게 느껴지는 해물짬뽕 국물도 아니다. 딱 중간. 국물이 진짜 끝내준다. 고기짬뽕이냐, 해물짬뽕이냐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맛있느냐가 핵심이지.
짬뽕국 한 숟갈에 내 식도와 위장의 위치와 생김새를 깨닫게 된다. 식도를 거쳐 위벽을 타고 흐르는 짬뽕국물이 느껴진다. 연거푸 두세 숟갈 떠먹는다. 국그릇이 있다면 그릇째 들이킬 텐데. 식판에 담긴 음식은 숟가락으로 떠먹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이 아쉽다.
실제로 급식으로 해장한 적이 많다. 어찌 없을까. 아주 가끔 전체 회식이 있지만, 자주 친한 동료들과 가볍게 한잔 때론 무겁게 여러 잔 걸친다. 직장인의 고충을, 교사의 힘듦을 안주 삼아 술로 몸과 마음을 적시다 보면 전우애가 올라오기도 하고, ‘존버’를 되뇌기도 하고, 그냥 잊게 되기도 한다.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딨겠나. 이쯤 살아보니 재벌 3세의 삶도 쉽지만은 않겠더라. 알지만, 하지만, 고되다. 몸도 힘들지만 마음이 먼저 지친다.
학생에게 주먹질을 당하고, 학부모에게 욕지거리를 들을 때가 있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교사니까, 가르치는 사람이니까. 모멸감이 몰려온다. 아주 가끔은 참지 못하고 맞대응하게 된다. 교사 이전에 사람이니까. 그럼 자책감에 시달린다. 좋은 선생이, 진짜 어른이 못 된 것 같아 괴롭다. 자괴감에 짓눌린다. 우울증으로 힘겨워하고... 끝내 자신마저 놓아버리는 동료들이 생.겼.다.
부와 권력은 애초에 없었고, 이제 명예조차 없는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와 무력감을 술과 함께 삼키고, 이튿날 다시 학교로 출근한다.
존버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전날 미리 계획하는 음주 충동을 일으키는 국에는, 짬뽕국만 있는 게 아니다. 황태콩나물국, 얼큰샤브샤브국, 동태찌개, 베트남쌀국수, 해물탕, 맑은북어국, 대구탕, 북어무채국, 북어콩나물국, 연포탕, 장터국밥, 어묵매운탕. 이름만 들어도 해장이 될 것 같은 메뉴들 아닌가.
음주하지 않은 깨끗한 위장에도 해장이 되는 것 같은 맛이다. 하물며 전날 술로 낸 상처로 아픈 위장이다. 그 위장에 빨간약을 골고루 펴 바르는 것 같다.
국을 절반쯤 먹었을 때쯤에는 이마나 목뒤에 살짝 땀방울도 맺힌다. 온몸의 땀구멍에서 술이 땀으로 배출되어 날아가는 게 느껴진다. 술과의 싸움에서 부상을 입었던 내 몸이 회복되는 시간이다.
해장은 크게 맑은파, 얼큰파, 느끼파로 분류할 수 있는데 나는 살짝 얼큰파다. 해장 끝판왕은 술이라는데, (오죽하면 해장술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먹고 살자고 마시는 술을 먹고 죽자고 덤비는 느낌이라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없지 싶다. 느끼 해장은 먹은 걸 내 눈으로 확인할 것 같았고, 맑은 해장은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얼큰이 개취다. 얼큰 해장에 짬뽕국이 빠질쏘냐.
술을 못 마시지 않고, 오히려 잘 마시고 센 편이지만,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동료들은 이 말을 잘 믿지 않는데, 술을 좋아하는 것과 술을 잘 마시는 건 다릅니다. 음음.) 아직까지는 짬뽕국 전날에 맞춰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다른 해장국은 많은데 유독 짬뽕국을 피해 다녔다. 내일의 급식 메뉴와 상관없이 약속을 잡다 보니 맞춰서 먹어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동료들이 짬뽕국으로 해장하는 걸 본 적은 제법 있다. 나도 언젠가 한 번은 실천할 날이 있지 않겠는가. 짬뽕국 전날 지나친 음주로 짬뽕국의 감동이 몇 배가 되는 날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미지 출처: Pixabay의 jay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