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급식지도
‘아로나민을 드신 날과 안 드신 날의 차이’는 모른다.
하지만 4교시가 있는 날과 없는 날의 차이는 안다. 그것도 확!실!하!게!
12시 30분, 4교시 종료령이 울린다. 곧 전교생이 모두 한 장소에 모이는 시간이다.
바로 점.심.시.간! 그곳은 급.식.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급식실 앞에 모여든다. 줄은 통로를 지나 복도를 넘어 계단까지 이어져 여러 층에 걸쳐 있다. 그야말로 장사진이다. 급식을 앞둔 아이들은 온몸과 모든 마음으로 떠들고 웃고 장난친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가도 금세 사그라든다. 사랑을 느끼기에는 너무 시끄럽다. 소음까지 사랑스럽지는 않더라. 옆에 있는 사람에게조차 크게 소리치며 말해야 한다. 이 광경은 매일 점심시간 내내 반복된다.
교사는 아이들이 급식을 무사히 먹을 수 있도록 ‘급식지도’라는 걸 해야 한다. 거의 천명에 육박하는 아이들이 사고 없이 안전하게 급식을 먹게 하려면 미리 학년별, 학급별로 급식 순서부터 정해줘야 한다. 여러 명의 교사가 정해진 위치에서 급식지도를 한다. 급식실 출입문 앞에서 배식 속도에 맞춰 아이들을 입장시켜야 하고, 배식받은 후에는 전체 학생수보다 적은 좌석의 급식실에서 먼저 급식을 먹은 아이들과 나중에 급식을 먹는 아이들이 불편하지 않게 식사할 수 있도록 앉혀야 한다. 배식받은 아이들이 들어오는 방향과 퇴식하는 아이들이 나가는 경로가 겹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한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퇴식구에서 잔반을 버리고 식판과 수저를 정리한 뒤에 퇴장하도록 안내한다.
급식실에 출입하는 순간부터 퇴장하는 시간까지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다양한 경우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식판을 들고 가다 넘어지기도 하고, 앞서 가던 아이와 부딪혀 흰 교복에 빨간 국을 쏟을 때도 있다. 최악의 경우, 아이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4교시 수업이 없는 교사는 아이들보다 삼사십 분 정도 일찍 급식을 먹는다. 아니 미리 먹어야 한다. 점심시간 동안 급식지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급식지도가 없더라도 4교시 수업이 없으면 미리 먹어 주는 게 점심시간에 급식실이 덜 붐비게 한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급식을 먹어 두는 것이다.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혹은 급식실이 덜 붐비도록 미리 먹는 급식이지만, 4교시가 없어서 일찍 먹는 급식은 그 맛과 감동이 몇 곱절은 된다. 먹는 데 진심인 나는 매일 4교시가 없는 비교과교사와 행정실 직원이 진심으로 부럽다.
물론 4교시가 끝나고 먹는 급식도 맛있다. 하지만 이제 막 또는 조금 전에 완성된 음식을 바로 먹는 맛이 삼사십 분 후에 먹는 급식의 맛과 같을 수 없다. 갓 지은 밥을 먹을 때와 밥솥에서 삼십 분간 보온된 밥을 먹는 맛의 차이랄까. 삼십 분 보온된 밥도 맛있지만, 갓 지은 밥의 맛을 아는 사람은 삼십 분 보온된 밥이 주는 만족감이 부족할 수밖에.
모든 음식은 가장 맛있는 온도와 시간이 있다. 제때에 먹어야 한다. 여기서 제때는 식사를 해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음식이 맛을 유지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식기 전에, 미지근해지기 전에. 그 임계점을 넘기면 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맛이 힘을 잃는다.
4교시가 없는 날과 4교시가 있는 날의 급식은 같지 않다. 그런데 주 5일 수업에서 4교시가 없는 날은 하루이틀에 불과하고 4교시가 있는 날이 삼사일이다. 그래서 나는 4교시가 없는 교사를 꿈꾼다. 매일 방금 나온 뜨끈하고 시원한 급식이 먹고 싶어서.
이미지 출처: Pixabay의 Mamoru Masum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