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엄빠 사이에서 1

by 꾀돌이

삶의 모든 순간에 답을 알고 길이 보여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다 보니 답을 알게 되고 가다 보니 길이 보이는 경우가 더 많겠지.




나는 여태껏 '내 아이의 입학식'에 참석하는 교사를 만나지 못했다. 내 아이가 입학식을 하는 3월 2일은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입학식과 개학을 하는 날이다. 남의 아이가 입학식을 하고 새 학년으로 처음 등교해서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맞이하는 게 내 직장이고 일이라 내 아이의 입학식에는 갈 수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가 아침에 미열이라도 있으면 해열제를 먹일 정도가 아닌데도 해열제를 먹여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밀어 넣고 출근해야 한다. 어린이집에서는 약간의 열만 나도 아이를 집에 데리고 가라고 하는데 나는 남의 아이를 가르치고 돌보는 내 일을 하느라 내 아이를 데리러 갈 수가 없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에게 방과후에 보충교육을 하느라 조금씩 늦게 퇴근하는 날이 잦았다. 어느 날 내 아이의 담임교사가 기초학력검사 결과를 조심스럽게 알려주며 학습지도를 당부한다. 알고 보니 내 아이가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이었다, 보충교육대상자였다. 남의 아이를 가르치는 동안 내 아이는 바보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학급에 학폭 사건이 터졌다. 여러 남학생이 딥페이크로 한 여학생의 사진을 합성해서 돌려봤고 그 과정에서 SNS로 패드립 섞인 대화까지 나눴는데 그 사건에 가담했던 남학생 한 명이 그 사건과 상관없는 다른 남학생에게 무용담 털어놓듯 그 일에 대해 얘기했고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해당 여학생이 알게 되어 담임교사에게 신고를 한 것이다. 우는 여학생을 다독이고 관련 학생들 모두를 따로 불러 상담하고 사실확인서를 받아 학생안전부 학폭담당교사에게 넘기고 관련 학생의 부모에게 해당 사건의 사실에 대해서 안내했더니 이미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겼다. 지친 마음과 몸을 끌고 집에 도착했는데 내 아이가 울고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지 꽤 되었단다.

아픈 내 아이를,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겨우 달래서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아이가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미처 확인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직장으로 출근하는 모습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직장인 부모들이 비슷할 것이다. 많은 직장인 부모가 나름의 최선을 다했어도 일하느라 아이에게 소홀했다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내 아이를 잘 먹이고 키우고 가르치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데 그 직장 때문에 내 아이에게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직장인 부모 그 누구도 이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교사도 여타 직장인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교사가 일반 직장인과 다른 점은 내 아이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는 그 일이 남의 아이를 가르치고 돌보는 것이라는 데 있다. 그래서 남의 아이를 돌보느라 내 아이는 돌보지 못하거나 내 아이는 챙기지 못하면서 남의 아이를 챙겨야 하는 자신을 마주할 때 더 큰 죄책감을 느끼고 더 강한 자기부정을 한다.

나는 아직 결혼을 못했다. 안 한 거라고 얘기해 주는 지인들이 있는데 고맙게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게 맞다. 그냥 미혼이고 강제 비혼이다. 비혼에 대한 철학이나 가치관 따위 지금도 없다. 내가 소위 결혼적령기라고 불리는 나이에는 비혼이라는 개념마저 생소했다. 인생이 무엇인지 얘기하기에는 아직 젊지만 그래도 이 나이쯤 살아보니 경험하지 않아도, 알지 못해도 짐작이 가고 이해가 되며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더라. 물론 당연히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들에 비할 바 못 된다. 비하면 안 된다. 때로는 몰라서 가늠조차 되지 않아 더욱 거대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더라. 내게는 교사이면서 엄마이자 아빠인 내 직장동료들의 이야기가 그랬다. 엄마와 아빠라는 자리의 무게를 느낀 적이 없기에 교사이면서 엄마이고 아빠인 그들이 교사로서의 책임과 부모로서의 역할이 정면으로 부딪힐 때 어떤 고뇌에 빠지고 얼마나 자괴감이 들지, 그 괴로움의 무게와 고통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감히 상상하는 게 시건방지고 무례하게 느껴져서 되려 죄송스럽다.

교사가 남의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동안 교사의 내 아이는 홀로 방치되는 경우가 무수하다. 그 상황에서 교사이면서 엄마이자 아빠인 나의 동료들은 교사의 역할과 부모의 책임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교사와 부모를 모두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넋 놓고 주저앉아 손에서 아이를 놓아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의 아이를 마음에서 버리는 교사도 없었고 내 아이를 방임하는 엄마나 아빠도 없었다. 교사와 부모는 모두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하기 위해 애썼다. 삶의 모든 순간에 답을 알고 길이 보여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다 보니 답을 알게 되고 가다 보니 길이 보이는 경우가 더 많겠지. 교사이면서 엄마이자 아빠인 그들 역시 교사로서의 길도, 부모로서의 정답도 누군가 알려주기를 바라거나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행하면서 답을 알고 걸어가며 길을 찾는다. 그렇게 매일 교사로서의 자신과 부모로서의 자신을 온전히 감당하며 산다.



이미지 제공: Pixabay Olya Adamov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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