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엄빠 사이에서 2

by 꾀돌이

영주는 어린 자식에게 변명 없이 진심으로 사과한다.

큰딸 예린이는 그제야 애써 괜찮다고 말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으앙 눈물을 터트린다.




교사 영주는 두 아이의 엄마이다. 첫째 딸 예린이는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 둘째 딸 예슬이는 일곱 살 유치원생이다. 두 딸은 엄마를 똑 닮았다. 황소같이 크면서 살짝 처진 눈과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로 두꺼운 입술에 적당히 살집이 있는 체형까지 모르는 누가 봐도 딱 영주의 딸이다. 확신의 모녀지간이다. 유전자 검사 따위 필요 없다. 영주는 매일 새벽부터 분주하다. 여섯 시에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잠이 덜 깨 눈도 못 뜬 아이들을 욕실로 데리고 가서 씻긴 뒤에 옷을 입히고 아침밥을 먹여서 등교와 등원 준비를 마친 다음 자신의 출근 준비를 해서 첫째는 초등학교에, 둘째는 유치원에 각각 데려다주고 학교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오늘도 바쁘게 채비를 하고 있는데 어쩐지 작은딸이 평소 같지 않다. 행동이 더디고 유달리 칭얼대더니 밥은 한두 입 먹고 마다한다. 급히 체온을 재보니 38.1도, 높다. 그래도 병원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얼른 해열제부터 먹이고 등원 상담을 하기 위해 유치원 선생님께 전화를 한다. 유치원 선생님은 등원하지 말고 집에서 쉬는 게 좋겠다고 조언한다. 영주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일전에 미열이 있는 상태로 유치원에 보냈다가 되려 감기가 심해져서 일주일을 꼬박 앓아누워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차라리 하루만 안 보내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주는 집에서 둘째를 보살필 수가 없다. 출근을 해야 한다. 오늘까지 교육청에 보고해야 하는 중요한 업무가 있고 각 교과에서 제출한 지필평가 원안지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2학년이 수행평가를 보는 날이라서 수업을 빠질 수가 없다. 갑자기 일정을 변경하면 학생들은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한다. 게다가 같은 학년을 나눠서 수업하고 있는 동료에게 민폐다. 그런데 둘째는 이제 겨우 일곱 살, 집에 혼자 있기에는 너무 어리다. 급히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헛수고다. 남편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둘째를 맡길 만한 데도 마땅치 않다. 아니다. 아예 맡길 데가 없다. 마땅찮아도 좋으니 맡길 데가 있으면 좋겠다. 영주는 예린이를 쳐다본다.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제법 의젓해서 은근히 믿고 맡기는 게 많다. 잠시 망설이던 영주는 큰딸에게 말한다.

"예슬이가 아파서 유치원에 못 갈 것 같은데... 그렇다고 예슬이가 혼자 집에 있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잖아. 엄마 생각에는 예린이가 오늘만 학교 가지 말고 예슬이랑 집에 같이 있으면 어떨까 싶은데... 예린이 생각은 어때? 학교선생님께는 엄마가 전화해서 잘 말씀드릴게."

예슬이는 짧게 생각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한다.

"응. 예슬이랑 있을게."

영주는 다시 한번 예린이에게 물어본다.

"정말 학교에 안 가도 괜찮아? 둘이서만 집에 있을 수 있어?"

예슬이는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한번 더 엄마에게 대답한다.

"응. 엄마. 괜찮아."

이런 큰딸에게 영주는 한 가지를 더 부탁한다.

"그런데 예린아... 학교 선생님께는 동생이 아파서 학교 못 간다고 얘기하면 안 돼. 네가 아파서 학교 못 가는 걸로 말해야 돼... 알았지?"

영주는 마음이 괴롭다. 큰딸을 학교에 못 가게 한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거짓말까지 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다. 예린이는 이런 영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난만하게 대답한다.

"응. 알았어."

영주는 큰딸에게 점심밥과 간식거리를 일러두고 가스레인지, 보일러 등 화재위험이 있는 물건들은 절대 만지지 못하도록 여러 번 당부를 한 뒤에 현관문을 연다. 걱정스럽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불안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자동차 시동 버튼을 누른다.




교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업무를 시작한다. 오늘까지 지역교육청으로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컨설팅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래도 어제 학교평가운영계획을 얼추 정리해 둬서 다행이다. 집중해서 업무를 처리하다가 문득 노트북 화면 우측 하단의 시간을 보니 벌써 거의 9시다. 부랴부랴 1교시 수업을 준비해서 3학년 5반 교실로 간다.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수업을 시작한다. 등속운동이 어쩌고 자유낙하가 저쩌고 하다 보니 어느덧 마침종이 울린다. 교실문을 열고 나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내 아이는 학교에 못 가게 하고 남의 아이들은 가르치고 있는 거야?'

'잘 살고 있는 거야? 맞게 살고 있는 거야?'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얼른 자리로 돌아와 큰딸에게 전화를 건다. 큰딸이 밝게 전화를 받는다. 안심이다. 괜찮은지, 별일 없는지 확인하고 최대한 빨리 집에 가겠노라 약속하며 전화를 끊는다. '최대한 빨리'가 언제인지는 영주 자신도 모른다.

3학년 수업과 2학년 수행평가를 번갈아 하며 6교시가 끝났다. 그 사이에 교육청 보고를 끝내고 부서로 지정된 스물예닐곱 개의 행정문서들을 접수하면서 업무의 경중과 처리방향을 결정하고 타 부서와 업무처리기준을 조율했다. 어쩔 수 없이 지필평가 원안지 점검은 내일로 미뤘다. 중간에 교감선생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조퇴를 허락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후 3시 20분이다. 노트북과 서류 뭉치를 챙겨서 교무실을 나선다. 마음이 급하다.


두 딸이 영주를 반갑게 맞이한다. 다행히 둘째는 열이 내렸다. 큰딸은 동생이 안 아파서 같이 재밌게 놀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간식을 챙기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동화책과 장난감을 정리한다.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로 구석의 먼지들까지 빨아들인다. 다시 일을 하려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남편의 퇴근이 가까워졌다. 얼른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게 낫지 싶다. 일찍 저녁밥 먹고 애들 재운 뒤에 미뤄둔 일을 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영주가 식사 후 뒷정리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남편 성훈은 음식물쓰레기와 분리수거를 정리하고 아이들을 씻겨서 재울 준비를 한다. 집안일을 끝낸 영주는 두 딸의 방으로 간다. 둘째는 벌써 잠들었다. 영주가 큰딸에게 묻는다.

"오늘 학교 안 가고 예슬이랑 둘이서만 집에 있었는데, 괜찮았어? 무섭지 않았어?... 학교 못 가서 속상했지?"

"아무렇지도 않았어. 예슬이랑 집에서 노니까 좋았는데?!"

영주는 큰딸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다. 고맙고 기특하고 안쓰럽고 미안하고 죄스럽다. 자신의 짐을 어린 큰딸에게 나눠지게 한 것 같다. 종일 씩씩하게 말하던 게 자꾸 걸린다. 자신을 배려하느라 일부러 더 괜찮다고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린다. 이미 눈물이 차올랐지만 억지로 꾹 참고 떨리는 목소리로 큰딸에게 또렷이 말한다.

"예슬이 잘 돌봐주고... 둘이 집에 잘 있어줘서... 진짜 고마워. 그리고... 엄마가 오늘 예린이 학교 못 가게 해서 너무 미안해."

영주는 어린 자식에게 변명 없이 진심으로 사과한다. 큰딸 예린이는 그제야 애써 괜찮다고 말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으앙 눈물을 터트린다. 엄마 영주는 큰딸을 꼬옥 안아준다. 엄마 품에 안긴 예린이는 서럽게 울며 말한다.

"엄마, 사실은... 예슬이가 아픈데 왜 내가 학교에 못 가는지... 이상했어."

영주의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예린아,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전부 다 너무 미안해."

엄마와 딸은 그렇게 한참을 운다. 눈물이 쉬이 그치질 않는다.



이미지 제공: Pixabay conger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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