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커피와 현미녹차

by 꾀돌이

직장인에게 믹스커피는 근무 중에 마시는 소주(또는 맥주) 한잔이다.

믹스커피와 현미녹차는 사무실의 소주 한잔, 맥주 한캔이다.




직장인에게 믹스커피는 근무 중에 마시는 소주(또는 맥주) 한잔이다. 소주(또는 맥주)는 하루의 일과나 업무가 끝난 후에 수고로움과 고단함을 위로하며 혼자서 또는 동료들과 함께 마시는 음료이고, 믹스커피는 일을 하는 중간에 잠깐의 휴식이나 업무의 효율을 위해 역시 혼자서 또는 동료들과 함께 마시는 음료이다. 사람이 마시는 액체를 통틀어 음료라고 이르므로 소주(또는 맥주)와 믹스커피는 모두 음료다.

바쁘게 혹은 빠르게 업무를 처리하면서 느끼는 약간의 목마름과 허기짐을 해결하고 소진된 에너지와 칼로리를 보충하는데 믹스커피만 한 게 없다. 나는 주로 아메리카노를 마시긴 하지만 가끔 마시는 믹스커피는 세상 달콤하다. 한 모금 마시면 커피의 쓴 맛과 설탕의 달달한 맛에 프림의 부드러운 맛이 한꺼번에 입안에 퍼지면서 순간적으로 스트레스가 풀리고 뭔가를 위로받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특히 첫 한 모금의 만족감이 제일 크다. 한 잔을 다 마시면 카페인 덕분인지 칼로리 때문인지 정신도 맑고 또렷해지는 것 같다. 동료와 잠깐의 수다에 곁들여도 좋다. 같이 믹스커피 한잔하면서 직장생활의 고충과 밥벌이의 어려움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다시 일할 의지가 올라온다.

믹스커피는 종이컵에 믹스커피 빈 봉지로 타서 마시는 게 제일 맛있다. 비싼 텀블러나 고급진 커피잔에 반질반질 윤이 나는 티스푼으로 새끼손가락은 펼친 채 타서 마시는 믹스커피는 낭만이 없다. 저렴한 믹스커피와 값비싼 컵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뛰면서 즐기는 커피 한잔의 여유'에는 종이컵에 탄 믹스커피가 딱 맞다. 싸구려커피여서 못마땅한 게 아니라 되려 위안이 된다. 제법 품격을 갖춘 듯이 우아한 자세로 앉아 바리스타처럼 향부터 음미한 뒤 시음하고는 원두의 산지와 품종, 로스팅의 정도 따위를 맞춰본다거나 바디감이 풍부하다는 둥, 산미가 적당하다는 둥의 평가질은 노동의 현장과 맞지 않을뿐더러 내 일터의 남루함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것 같다. 소주나 맥주가 보통의 삶을 사는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것처럼 믹스커피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일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풀어준다. 믹스커피는 사무실에 소주처럼, 맥주같이 있는 것이다.

믹스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또는 너무 많이 마신 사람들을 위해 현미녹차가 필요하다. 커피에 함유된 다량의 카페인이 부담스럽거나 설탕과 프림의 칼로리가 걱정되는 사람들은 현미녹차를 마신다. 믹스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을 때 현미녹차로 죄책감을 씻어내기도 한다. 믹스커피의 자리를 현미녹차가 대신한다. 이때의 현미녹차는 반드시 티백이어야 한다. 갓 수확한 현미를 알맞게 볶아 준비하고 어린 녹찻잎을 적당히 덖은 뒤에 한 데 섞어서 다기로 우려내 찻잔에 담아 두 손을 겸손하게 모으고 마시는 현미녹차가 아니다. 정수기 뜨거운 물에 무심한 듯 두어 번 성의 없이 대충 참방하게 우려 마시는 현미녹차여야 한다. 녹차의 쌉싸래한 맛을 현미의 고소한 맛이 살짝 눌러줘서 순수한 녹차보다 마시기에 한결 편하고 부드럽다. 아주 엷으면서 나는 듯 마는 듯 흐릿한 찻잎의 향과 곡물의 향이 썩 잘 어울린다.


믹스커피와 현미녹차는 사무실의 소주 한잔, 맥주 한캔이다. 오늘도 나는 조금 일찍이 출근해서 슬리퍼로 갈아 신고 소주 한잔, 맥주 한캔 마시면서 열일한다.



이미지 제공: Pixabay gate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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