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너무 유명한 곳은 잘 가지 않는 편인데
갔을 때 실망하는 경우도 많고
무엇보다 사람이 너무 많아 쉬려고 간 여행에
되려 고생만 했던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이례적으로
아내가 히로시마의 핫플인
이쓰쿠시마 신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 남들은 당일치기로 다녀 오는
미야지마(이쓰쿠시마 신사가 있는)에서
1박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미야지마로 향하는 페리 안인데
아내가 갑자기
"미야지마 1박은 오바인가.
내가 그땐 왜 그랬지.."
미야지마에 도착하니
왜 사람들이 당일치기로 오는지 알 것 같았다.
볼 것이라곤 오직
바다에 있는 이쓰쿠시마 신사의 붉은 도리이.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 줄 서서 기다리는데
포토존이라는 곳에서도 도리이는 꽤 거리가 있어
웅장하기보다는
'바다에 도리이가 있군' 정도랄까.
예전에 피사의 사탑에 갈 때도
사람들이 '진짜 피사의 사탑 밖에 볼 것 없어요'라고 했지만
피사의 사탑이 너무 거대하고 웅장해서 '오!' 했었는데
이쓰쿠시마 신사의 도리이는 조금 아쉬웠다.
바닷물이 빠져서 가까이 가면 조금 다를까 했는데
한번 실망해서일까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야지마섬은 굴이 특히 유명해서
매년 굴 축제도 연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은 모두
굴을 구워 파는 집이었다.
나는 해산물을 못 먹지만 아내는 해산물을 좋아해
2개짜리 메뉴를 시켰는데
'어때' 하는 물음에 아내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나는 비리고, 하나는 모래가 씹혔다고 했다.
음, 미야지마 점점 별로인데.
호텔 체크인 시간이 남았지만
마땅히 할 것도 없어 터덜터덜 호텔로 걸어가는데
미야지마의 또 다른 명물인 주걱.
그런데 리라쿠마와 이렇게 콜라보를 해두었다.
아기자기 귀엽게 무언가를 만드는 능력은
진짜 최고인 듯.
홀리듯 들어간 기념품 가게,
역시나 귀엽고 예쁜 것 가득한데
저번에도 이 귀여움과 예쁨에 홀려
물건을 한 가득 샀다가 그대로 방치한 적이 있어
구매하고픈 욕구를 가까스로 억제했다.
근데 정말 귀여운 게 너무 많았다.
아직도 체크인 시간이 남아 무얼할까 하다가
관광지도에 소개된 호텔 인근의
good view point에 갔는데,
아, 미야지마에 괜히 1박하나 하는 후회를 단숨에 날려버린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멍하니
이쓰쿠시마 도리이와 바다, 히로시마를 바라보는데
그렇게 마음이 평안할 수 없었다.
이번 여행이 끝난 뒤 닥쳐올 정신없음을 알기에
더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던 여유.
다시 여유없이 바쁘게 치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야지마섬은 작은 만큼 호텔도 많지 않아
아내가 예약하고도 꽤나 걱정을 많이했는데
기쿠노야 료칸은 생각보다 너무 깔끔했다.
봄 기운을 머금은 듯 살랑이는 바람
숲에 둘러쌓인 자연 속 노천탕
반전과 반전의 미야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