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첫날

나이의 온도는 여전히 섭씨 37도.

by 잔잔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는 말을 요즘 느끼고 있다. 오늘 나는 새해를 맞아 스무 살의 끝자락을 모두 지나, 서른이라는 문턱에 들어섰다. 주변의 어린 동생들에게는 “계란 한 판”이라며 놀림을 받은 새해이기도 했고, 친구들과는 “우리 진짜 이제 삼십이네~” 하고 너스레를 떨며 인사한 하루이기도 했다.

어릴 적에는 서른 살이 되면 뭔가 번듯해져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해를 보겠다며 추위를 견디고, 대청소를 하고, 떡국을 먹은 집순이에 불과했다. 겨우 한 살 더 먹었을 뿐인데, 스물아홉과 서른 사이에는 묘한 간극이 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너 이제 삼십이야”라는 말을 건넨다. 그렇지만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내가 사실 얼마나 달라졌을까. 1월 1일이 되었다고 없던 무언가가 마법처럼 생겨날 리도, 있던 나쁜 버릇이 단번에 사라질 리도 없는데.

새해라고 새벽에 나가 일출을 본 건, 나답지 않은 유난이었다. 돈 한 푼 쓰지 않겠다고 납작해진 지갑을 들고 집을 나섰지만, 새벽의 공기는 생각보다 훨씬 매서웠다. 주차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걷다 보니 편의점이 보였고, 결국 핫팩을 하나 샀다.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모여 북적이는 모습과 그 곁에는 어묵을 파는 길거리 상인이 서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은 장사가 잘되겠네’ 하고 지나치려 했지만, 나 역시 그 줄에 합류해 어묵 두 꼬치를 사 먹었다. 새벽 다섯 시에 도착한 터라 해가 뜨기까지는 한참이 남아 있었다. 손과 얼굴은 금세 얼어붙을 것 같았다. 바닷가 앞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커플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도 컵라면을 먹을까’ 하고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아니다, 그냥 걷자’라고 마음을 바꿨다. 그렇게 길을 따라 걷다가, 샛노란 불빛을 뽐내는 한적한 카페를 발견했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라떼를 한 잔 사서, 일출 시간까지 그 카페에서 버텨보기로 했다.

돈을 안 쓰기는커녕, 펑펑 썼다. 펑펑! 새해맞이 밤하늘에 터지던 화려한 폭죽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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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새해 첫날부터 계획이 틀어졌다는 사실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덕분에 추위는 누그러졌고, 결국 불타오르는 일출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올해의 소망도 조용히 빌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계획에 실패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실패 속에서 또 다른 길이 열리고, 그 길 안에는 작은 행복들이 숨어 있다. 핫팩의 따끈한 온기, 속을 데워주던 오뎅 국물, 떡국 나눔을 위해 새벽부터 떡을 썰고 계시던 갈비집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카페에서 마신 커피의 달콤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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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십대도 아마 거창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우연히, 조금은 엇나간 길 위에서 또 다른 새로움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이제 서른이니까 이렇게 살아야지, 저런 것도 해야지’ 하고 다짐하는 것보다, 계획이 조금 틀어져도 그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일이 더 값지게 느껴진다. 그러니 괜찮다. 내가 이제 서른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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