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는 지도

엑스 표시를 지우며

by 잔잔


나는 요즘 보물찾기 놀이를 하고 있다. 어린 시절, 보물 지도에 엑스 표시를 해두고 그 자리를 파헤치던 놀이와는 다르다. 내가 찾고 있는 보물은 땅속에 묻힌 사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한 사람의 존재가 나에게 지도가 되고, 그 안에 숨겨진 결을 더듬어 가며 예상하지 못한 면을 발견하는 일. 꽤 재미있다.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중 대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벌써 십 년 가까이 함께해온 친구가 한 명 있다. 그녀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다. 늘 긴 머리를 하고 얼굴빛도 하얀 편이라, 부드럽고 페미닌한 인상이 강한 사람이다. 말수가 많지 않았고, 무엇이든 급해 보이지 않았다. 성격 또한 여유로워 보였고, 느긋하다는 말이 잘 어울렸다. 나는 그녀를 그런 사람으로 오래 기억해왔다.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 술집에서 마주 앉은 날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근황을 나누던 중, 그녀가 불쑥 말했다.

“저번에 등산을 갔는데.”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내가 알고 있던 그녀와 등산이라는 단어는 쉽게 겹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성격이 여유로운 만큼, 어딘가 게으르게 보이기도 했고,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느껴졌었다.
“등산? 누가 가자고 해서 간 거야?”
그러자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너무도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나 등산 좋아하잖아.”

짧은 정적이 흘렀다. 마치 작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친구가 등산을 좋아한다고? 나는 안주를 집은 젓가락을 든 채 잠시 멈춰 있었지만, 그녀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번에 다녀온 산이 무척 좋았고, 다음에는 기회가 되면 북한산에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나무에서 나는 향이 좋았고, 땅을 밟을 때마다 발에 전해지는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녀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무의 냄새를 들이마시고, 흙을 밟는 감촉을 또렷이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십 년이 지나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아니, 무엇만 보고 있었던 걸까. 술잔이 몇 번 더 오가자 이야기는 조금씩 깊어졌다. 드문드문 그녀는 웃었다. 그 웃음은 예전처럼 가볍기보다, 진지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날,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는 중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은 내가 처음 만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사람을 쉽게 평가한다. 각자 자신의 시선과 경험, 그리고 편리한 잣대로 타인을 규정한다. 그렇게 규정된 모습은 오래 함께한 사이라면 더 단단해진다. 익숙함은 이해가 아니라, 종종 오해가 된다. 아무리 오래 곁에 두고 본 사람이라도, 어느 순간 전혀 알지 못했던 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발견은, 우리가 그 사람을 얼마나 몰랐는지를 동시에 드러낸다. 그것이 내가 요즘 빠져 있는 보물찾기다.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내 안에서만 굳어 있던 형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녀는 전혀 다른 얼굴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비슷한 경험이 또 있다. 유난히 날카롭다고 느껴졌던 아는 오빠가 있었다. 그의 말투에 상처받은 적이 적지 않았고, 나는 그를 자존심이 세고 고집이 센 사람이라고 단정해왔다. 어느 날, 난 더는 마음속에 쌓아둘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그의 말 때문에 상처받았던 순간들이 있었다고. 사과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과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그의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는 곧바로 미안하다고 말했고, 여러 번 내 마음을 살피는 듯한 조심스러움을 보였다.

‘내가 너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면 정말 미안해. 이제는 더 신경 쓸게.’

나는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는 일이 여전히 어색하다. 그래서일까. 내가 쉽게 평가해버렸던 그는, 그 지점에서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었다. 메시지의 끝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부끄러워졌다. 보물은 늘 내가 안다고 믿었던 자리 바깥에 있었다. 너무 쉽게 엑스를 그어버린 곳, 애초에 파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곳에 숨어 있었다. 나는 오늘도 사람이라는 지도를 들고 있다. 예전처럼 성급하게 표시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이 사람은 이렇다, 저 사람은 저렇다, 단정하는 대신, 조금 더 기다려보는 연습을 하면서. 보물은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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