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편지
새해에는 늘 다양한 버프가 생긴다.
이번 해에는 작년과는 다르게 살 것이라는 버프. 다이어트, 건강 관리, 돈 모으기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버프는 대부분 설날이 되기도 전에 깨지거나, 길어야 3월을 넘기지 못한다고들 말한다.
그리고 새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또 하나의 버프가 있다. 끊긴 인연에게 연락하고 싶어지는 버프. 나 역시 그랬다. 연락하지 않은 지 1년이 훌쩍 넘은 사람이 문득 떠올랐다. 크게 싸워서 연락을 끊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명확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종종 생각났다.
왜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무언가 실수를 했던 걸까. 누가 먼저 연락을 끊었던 걸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새해 당일에는 연락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틀, 삼일이 지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쯤 연락을 해볼까.
잠이 오지 않던 어느 새벽, 나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락을 보내도 괜찮을지 털어놓자 친구는 말했다. 보내고 나면 그래도 속은 시원하지 않겠냐고. 그래, 속이 시원해지기 위해서라도 연락을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나는 그의 연락처를 찾았다.
친구는 물었다.
"지금 보내게? 너무 새벽 아니야?"
"자고 있을 텐데 연락 보내는 게 좀 그래서?"
친구는 잠시 웃더니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새벽이면 홧김에 보낸 것처럼 보이잖아. 전 애인한테 연락한 것처럼."
그렇네. 그런 관계는 아니었는데 괜히 오해를 살 것 같아, 나는 자고 일어나서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올해 새해 복 많이 받아'
메시지는 반나절 동안 읽히지 않았다. 문자를 보냈을 때 내 마음이 정말 시원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난 뒤에야 답장이 왔다.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그 뒤로 우리는 잠시 안부를 나눴다.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알던 그는 늘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던 사람이었기에 조금은 의외였다. 전공을 살린 일을 계속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이미 작년에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할 말이 줄었고, 결국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 카카오톡 방을 조용히 삭제했다. 이제야 마음이 조금은 시원해진 것 같았다. 그의 안부를 알게 된 것도, 혹시 나를 싫어했던 건 아닐까 했던 마음이 기우였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랬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 보면 그땐 그랬지,라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 같기도 하다. 그 시절에 만났기에 의미가 있었던 인연.
노래 가사에도 그런 마음이 담겨 있다.
[우리가 딱 1년만 더 늦게 만났더라면
너는 지금 내 손을 잡고 있을까
우리가 딱 1년만 더 늦게 만났더라면
너는 지금 내 품에 있을까] - 딱 1년만 (Feat. 10CM)/BIG Naughty -
가족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는 가족처럼 나란히 오래 걷기 어렵다. 결국 나는 그 시절에 당신을 잠시 빌렸을 뿐이고, 당신의 시간 속에 나를 잠시 들인 것뿐이다. 연인도, 친구도 모두 그렇게 흘러간다.
사람을 놓치고 나서야, 더 성숙해진 지금의 나로 그때를 돌아보며 생각한다. 지금 만났다면 그렇게까지 상처 주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어쩌면 그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그 인연이 성장통의 역할을 해준 것일지도.
지나간 인연들이 아쉬운 건 당연한 일이고, 떠오르는 이름이 많은 건 내가 미련이 많은 탓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감사하다. 그 시절에 내 세상에 있어주어서.
그리고 지금의 내 세상에 남아 있는 모두에게도.
전부,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