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 길이

나의 물숨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by 잔잔

물숨이라는 말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해녀들에게 쓰이는 말이라고 했다. 해녀마다 숨의 길이는 제각각이고, 자신의 숨이 다하기 전에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숨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얼마나 깊이 내려갈 수 있는지는 타고난 몫이자 스스로 가늠해야 할 기준이다.

하지만 막 수면 위로 올라오려는 순간, 저 멀리 전복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 아주 짧은 욕심이 생긴다. 저것만 따고 올라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렇게 방향을 틀게 되는 순간, 자신의 숨을 놓치고 물을 삼키게 되기도 한다. 그 찰나에 자신의 숨을 놓치고, 물을 삼키게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다. 해녀들 사이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이라고 들 말한다. 그래서 물숨이라는 말은 재수가 없다 하여 조심스럽게 다뤄진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요즘 우리의 삶이 자꾸 떠올랐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살아가려 하고, 너무 깊이까지 내려가려 애쓴다. SNS 속에서 나보다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마주칠 때, 나만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자연스레 숨을 더 참아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된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늘 '조금 더'를 요구한다. 이 정도 자격증은 기본이고, 이 나이쯤 되면 이 정도는 해내야 한다는 말들 속에서, 사람은 점점 같은 틀에 끼워 맞춰지는 느낌을 받는다. 취업의 문 앞에서, 또는 내 집 마련이라는 꿈 앞에서 빠듯한 통장 잔고를 바라보며 우리는 계속해서 잠수를 이어간다. 숨이 가쁜 줄 알면서도.

나는 사람이 마치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물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너와 나, 우리 모두가 비슷해지지 않으면 바보가 되어버리는 세상이라는 사실이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물숨이라는 말처럼, 사람에게도 각자의 숨의 길이가 있다. 내가 들이쉬고 내쉴 수 있는 만큼, 견딜 수 있는 만큼의 몫이 있다. 그 이상을 욕심내어 무리하게 내려가면, 결국 물을 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속도가 나에게 맞는지 말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잠시 쉬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이다. 남들보다 늦어 보이더라도, 조급해 보이더라도, 나부터 돌보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라고 말하면서도, 왜 그렇게 서로를 따라가려 애쓰는 걸까. 나는 모두가 각자의 물숨을 지켜내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저 깊이 있는 전복에 다시 돌아서지 말고, 자기 자신의 숨으로 끝까지 올라올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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