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a Greene Sep 01. 2022

건망증



무거운 어깨에 걸친 밤색 코트를 집 밖에 벗어 놓고 들어온 날

습관처럼 머리칼을 정돈하던 미련한 빗을

힘을 꽉 쥔 손에서 내려놓고

할아버지는 침대에 누웠다


꾹 다물어 권위를 내보이던 엄격한 입은 헤 벌어져 있었고

들여다 본 눈 안에는

롤리팝 하나에 모든 마음을 다 내어줄 소년아이가 들어가 있었다


어린 날의 나는 가까워진 할아버지 옆에 누워

소년아이를 빤히 보곤 했다

‘할아버지의 약재 냄새가 나는 몸 속에 너는 갇혀 있었니’

그 아이에게 사탕하나를 물려주고는

말을 걸었다


세상을 살고 나이가 들고

가슴에 패인 굴곡이 할아버지의 밤색 코트 만큼이나 무거워졌을 때

어린 날의, 말이 없어 잊혀졌던 묵언의 대화가

깜빡거리는 건망증과 함께

내게 다시 찾아왔다


나는 물었었다


사랑받지 못한 슬픔에 젖어

같은 장에 쓰인 사랑받은 기억도 함께 번져버렸느냐고

이해받지 못한 분노에 불타

즐거웠던 기억마저 모두 재가 되어 버렸느냐고

너를 잊은 사람을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너도 잊어버렸느냐고


나는 혼란스러웠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  아무도 없는 그 곳이

어떻게 더 따뜻할 수 있는지

두려움에 알 수 없었다

모두가 있어 따뜻하던 나의 세상이 덩달아 차가워 지기 시작한 날이

그 날이었던가

나는 이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고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