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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그업 Jan 20. 2017

완벽한 피봇

스타트업 관람가 46.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블랙&크롬>

사물도 사람도 저마다의 빛깔이 있죠. 색은 정체성입니다. '색다르다.' '특색있다.'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색을 빗대 말하곤 합니다. 두드러지는 존재를 만나면 '고유의 색채'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특색을 자주 만날 수는 없습니다. '색다르기'는 시간을 거쳐야 하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들다.' '바래다.' 가만 보면 색의 일을 표현하는 동사들은 모두 시간이 수반됩니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색채는 시간 속에서 여러 색깔에 물들고, 풍파에 바래고, 고민이 여물어가며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고유한 색채'라는 건 아마도 고심의 흔적일 것입니다.



여기 비로소 고유한 색채를 찾은 영화가 있습니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블랙&크롬>입니다. 2015년에 개봉한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를 흑백버전으로 다시 개봉한 것이죠. 매드맥스라는 컨텐츠를 반 세기 동안 품어온 조지 밀러 감독의 고심의 흔적은 '블랙&크롬'이었습니다.


사실 조지 밀러는 애초부터 이 영화를 흑백으로 개봉하려고 고집을 피웠다고 합니다. 투자자들이 말려서 컬러로 개봉할 수밖에 없었지만 "매드맥스를 즐기기 위한 최적의 조건은 흑백"이라 늘 말해왔습니다. 결국 컬러리스트들과의 색 보정 작업을 거쳐 '블랙&크롬 에디션'을 개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조지 밀러 감독이 옳았습니다. 매드맥스에게 '블랙 & 크롬'은 완벽한 색입니다. 블랙과 크롬은 이 영화를 그야말로 색다른 영화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이 영화의 요소들은 모두 절박하고 처절합니다. 세상은 핵전쟁의 여파로 자원이 메말랐고 온갖 부작용으로 인류의 수명은 반토막이 났습니다. 한 줌 자원을 놓고 처절하게 싸웁니다. 그 황량한 사막 가운데서 맥스(톰  하디)는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쫓깁니다. 세계관도, 인물도, 배경도, 음악도 모두 불안하고 처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 불안과 혼란에 블랙의 무게가 더해지자 처절하게 와닿습니다.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 찬 화면은 더 황량하고, 더 답답하고, 더 견딜 수 없이 불안합니다. 그래서 기괴한 설정들과 아슬아슬한 액션을 지켜보는 일이 한층 더 짜릿합니다. 컬러버전과는 비할 수 없이 꽉 찬 몰입이었습니다.


포인트는 크롬입니다. 워보이 녹스(니콜라스 홀트)가 입가에 은색 스프레이를 뿌리며 "쏘 샤이니, 쏘 크롬(So Shiny, So Chrome)!”이라고 말할 때의 기괴함은 블랙&크롬 버전이 아니면 결코 제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색의 전환만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하나의 요소를 바꿔 기존의 걸 통째로 뒤흔들 수 있다니. 영화라는 범주를 넘어서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사례였습니다.

 

조지 밀러 감독이 한 일을 스타트업의 일에 빗대보면 이렇습니다. '블랙&크롬'은 전체를 바꾸는 하나, 피봇이었습니다. 그것도 매드맥스라는 컨텐츠의 정체성에 가장 어울리는 색채를 찾아준 완벽한 피봇이었습니다. 이토록 창백하게 빛나는 암울하고 광기 어린 영화는 이제껏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이 완벽한 피봇은 우연히 이뤄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색을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조지 밀러 감독이 매드맥스라는 컨텐츠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속에서 고민을 거듭하며, 물들고 바래고 익어가기를 반복하며 찾은 고유한 색채였습니다. 투자자들은 보지 못한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었기에 이뤄질 수 있었죠.



조지 밀러 감독의 이 고집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걸작이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자신만의 색을 찾아야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또 그러기 위한 방법도 보여줬습니다. 조지 밀러의 방법은 '오랜 기간 끈질기게 질문을 품고 찾아낸 본질에 대한 통찰'이었습니다. 트렌드에 편승했다면, 성공을 거둔 경쟁자들을 따라했다면, 혹은 투자자들 말에 흔들렸다면 이런 완벽한 피봇은 나올 수 없었겠습니다.

 

원문보기: 스타트업 미디어 비석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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