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최후의질문』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에서 이세돌이 따낸 4국은 어쩌면 컴퓨터를 상대로 바둑을 둬서 인간이 이긴 마지막 역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인공지능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컴퓨터는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IT스타트업의 팀원으로서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보니 자연히 그런 궁금증을 품게되네요.
상상을 하다보면 결국 두 대의 컴퓨터를 떠올리게 됩니다. 제가 아는 가장 위대한 두 컴퓨터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지구’ 그리고 아이작 아시모프의 『최후의 질문』에 나오는 ‘AC’입니다.
동명의 책에서 나온 영화 <은하수…>는 지구가 철거(!) 당하는 시퀀스로 시작됩니다. 이 영화에서 지구의 정체는 사실 쥐들이 만든 행성 크기의 거대한 컴퓨터로 밝혀지는데요. 쥐는 우주에서 지능이 가장 뛰어난 생명체로 나옵니다.
자연히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존재의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을 품게 됩니다. 일찍이 듀스 형들도 고민했던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입니다.
쥐들은 모든 것의 의미를 밝혀줄 궁극의 답을 찾고자 세대와 세대를 이어 거대한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수백억 년의 집중력은 마침내 ‘깊은 생각’이라는 수퍼컴퓨터를 완성합니다. 침을 한번 꼴깍 삼킨 후, 쥐들은 깊은 생각에게 묻습니다.
“생명과 우주,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깊은 생각은 즉시 답을 찾기 시작합니다. 연산이 끝나기까지 다시 수백억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네요.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답을 약속한 날이 왔습니다. 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우주적 규모의 성대한 축제를 준비하며 모두 우주선을 몰아 깊은 생각 앞에 모였습니다. 샴페인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마침내 깊은 생각이 입을 뗐습니다. 모두 숨을 죽입니다. 팽팽한 고요속에서 깊은 생각은 천천히, ‘그 모든 것의 존재 이유’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42.”
잠시 사태를 받아들이기 위한 시차가 고요히 흐르고, 벙찐 쥐들이 샴페인병을 깨부수려 할 때쯤 깊은 생각은 말합니다. 처음부터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잘못된 질문을 넣었으니 잘못된 답이 나온 거라고.
모든 것의 의미를 밝혀줄 제대로 된 질문을 찾기 위해, 쥐들은 다시 오랜 시간에 걸쳐 컴퓨터를 만듭니다. 절치부심하고 만든 이번 컴퓨터는 급기야 행성 크기만큼이나 거대해졌습니다. 이 거대한 수퍼컴퓨터에 ‘지구’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리고 그 안에 인간이라는 아주 똑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영 멍청하지도 않아서 실험용으로 딱 적합한 종을 풀어넣고 시뮬레이션을 돌립니다.
수퍼컴퓨터 답게 지구의 연산속도는 깊은 생각보다 훨씬 빠릅니다. 지구 프로젝트가 가동된지 46억 년이 지났을 때 마침내 연산이 완료됩니다. 지구가 궁극의 질문을 찾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안타깝게도 지구는 소멸합니다. 테크니컬하게 말하면 외계종족에 의해 ‘철거’됩니다. 우주 초공간도로라는, 말하자면 우주 고속도로를 까는 경로에 하필 지구가 있었던 거죠.
다시 한 번 테크니컬하게 말하면 이건 명백한 우리 잘못입니다. 이미 수십억 년 전에 우주 게시판에 ‘거기다 도로 깔 거니까 방 빼’라는 공지가 올라왔었거든요. 공과금 고지서를 못 봐서 가산세가 나오면 결국 내가 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음 그런데요, 이렇게 대단한 수퍼컴퓨터 지구도 사실 아이작 아시모프의‘AC’에 비하면 꼬꼬마 텔레토비 동산의 송충이 수준입니다. 고니는 제가 아는 타짜중에 최고였고, AC는 제가 아는 컴퓨터 중에 최고입니다.
멀지 않은 미래, 칵테일을 마시던 남자 둘은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다 어떤 질문을 던집니다. 물론 그땐 그게 장차 최후의 질문이 될 거란 생각은 전혀 못하죠. 질문은 이렇습니다.
“우주의 엔트로피가 대량으로 감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쉽게 말해 ‘우주는 우주가 필요한 대량의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가’ ‘주어진 에너지를 다 쓰고 열사망에 이른다는 속수무책의 운명에 저항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을 입력받은 AC의 초기모델은 이렇게 답합니다.
“자료부족으로 대답할 수 없음.”
시간이 흐릅니다. 인류의 과학기술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습니다. 이제 지구에서 나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 살아갑니다. 이때 지구를 탈출하면서 인류는 아마도 ‘고전영화’ <인터스텔라(Remastered)>를 보고 있지 않을까요?
여하튼 자체적인 학습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 진화하는 수퍼컴퓨터 AC도 전에 비할 수 없게 강해졌습니다. 인류는 다시 묻습니다. 우주는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러나 돌아오는 AC의 답은 같습니다. 자료 부족으로 대답할 수 없음.
시간이 흐릅니다. 인류는 마침내 영생의 비밀을 찾아냈습니다.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점점 불어나는 인류를 감당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간절해진 인류는 다시 한번 묻습니다. 자료 부족으로 대답할 수 없음, 아직도 AC는 답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자료 부족으로 대답할 수 없음.
시간이 흐릅니다. 자료 부족으로 대답할 수 없음.
시간이 흐릅니다. 에너지는 빠르게 소멸되어가고, 우주는 차갑게 식어갑니다.
끝없는 자기진화를 거듭하며 어느덧 AC는 초월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AC는 우리가 사는 우주 바깥 초공간에, 우리가 알 수 없는 형태와 우리가 알 수 없는 구성으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답하지 못합니다. 자료 부족으로 대답할 수 없음.
AC가 약 10조 년에 걸쳐온 우주에서 수집 가능한 모든 자료를 모았을 때, 우주는 끝내 열사망에 이르고 맙니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우주는 싸늘하게 식어 공간과 시간마저 소멸됩니다.
초공간의 AC는 지금껏 모은 우주의 모든 자료를 분석해 우주 전체 규모에서 연결 가능한 모든 관계를 계산합니다. 계산을 위해 무한한 간격이 지나갑니다. 계산이 완료됩니다. AC가 드디어 답을 찾습니다. AC는 이제 찾아낸 답을 실행할 방법을 계산합니다. 다시 한번 무한한 간격이 지나갑니다.
마침내 AC가 모든 계산을 마쳤습니다. AC는 말합니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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