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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그업 Mar 25. 2016

"스타트업 그거 해서 먹고 살 수 있느냐"는 질문

스타트업 관람가 6. <인터스텔라>


“살기 위해 먹는 걸까,
   먹기 위해 사는 걸까?”


어릴 때 누네띠네라는 과자 광고에 이런 카피가 있었습니다. 혹시 기억하시나요? ‘아 그래요, 기억나네’라고 생각하셨다면 여러분, 아재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인터스텔라>같이 과학적 고증이 빛나는 영화를 골랐으면 과학 얘기를 해야지 웬 아재토크냐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엔 과학 이야기 외에도 재밌는 부분이 많습니다. 놀란 형제의 놀라운(!) 장인정신에 사람들이 마음을 빼앗겨, 오히려 영화가 하고자 하는 얘기들은 가려진 듯한 느낌도 있는데요. <인터스텔라>는 ‘밥과 꿈’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밥과 꿈. 지구를 뜨기 전까지 영화는 이 한 가지 주제를 품고 있습니다. 근미래는 식량난에 시달리는 환경이 되었고, 사람들은 더는 꿈을 꾸지 않게 됐음을 보여주는 장면들로 영화가 시작되죠. 사람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당장에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모두 “요즘 같은 때는 그저 농부가 최고의 직업”이라 말하네요.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반면 쿠퍼(매튜 맥커너히)는 확실히 살기 위해 먹는 쪽입니다.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짓고 있지만, 현실을 안타까워하죠. “우리는 원래 탐험가였다”며 이렇게 말하네요.


“예전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저 별들 사이에서 우리가 어디쯤 있을까를 궁금해하곤 했어요.

지금은 그저 땅만 쳐다보며 먼지 속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이 어딘지만 찾고 있죠.”


이 영화에서 ‘농사와 과학’은 ‘밥과 꿈’에 대한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농사는 같은 땅에 같은 작물을 심고 그 수확을 거둬들이는 일의 반복이죠.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반복하는 행위, 즉 밥벌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과학은 농사의 대척점에 있습니다. 쿠퍼의 말처럼 과학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지에 대해 동경을 품는 일입니다. 꿈을 꾸는 것이죠.


놀란 감독은 옥수수밭에서 드론을 쫓는 시퀀스를 통해 이 얘기를 굉장히 세련되게 합니다. 차로 옥수수밭(밥벌이)을 밀어버리고 하늘 위 드론(꿈과 탐험)을 쫓는 장면은 보는 사람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꿈을 꾸지 않는 나라에서 사는 저는 이 장면에서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쿠퍼도 어쩔 수 없이 드론의 배터리를 빼서 농기구에 끼우죠. 이때 딸애가 아쉬워하자 “이 드론이 사회적으로 쓰임이 있는 일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하네요. 꿈을 좇는 자의 두근거림과 밥 앞에서 꿈을 포기하는 씁쓸함을 이렇게나 유려하게 표현했습니다.


쿠퍼의 딸 머피(매켄지 포이)와 아들 톰(티머시 찰라멧)의 정체성 역시 꿈과 밥을 상징하는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첫 등장 씬은 밥을 먹는 장소인 식탁이었습니다. 이때 머피는 식탁 위에까지 과학 도구를 가져와서 꾸중을 듣죠. 톰은 밥을 먹으면서 그런 머피를 조롱합니다. 곧 톰은 농부가 되고 싶다 말하고, 머피는 자연스레 과학자가 되어 아버지의 궤를 쫓습니다.



영화는 물론 꿈의 편입니다. 톰의 행동을 주의 깊게 보시면 매사에 어딘가 불만에 차있고 항상 툴툴거린다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런 건 해서 뭐하냐” 식의 얘기도 자주 하죠. 반면 머피는 생기가 넘칩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사람들이 “아들 불쌍하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요. 서사 구조적인 면에서 봤을 때 톰은 처음부터 비극적인 결말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음 잠깐만요. 근데 이거요,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요? 톰과 머피, 밥과 꿈. 이 대립구조와 그 저변에 깔린 소위 ‘먹고사니즘’이 꼭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과 같아 보이는 건 제 착각일까요.


우리나라도 꿈을 꾸지 않는 나라잖아요. 뭔가 먹을 게 나온다는 걸 알아채면 그때부터 하죠. 페이스북이 성공하면 ‘제2의 마크 저커버그’를 양산하려 하고, 알파고가 승리하면 ‘한국형 알파고’를 만드는 식입니다. 기성세대는 언제나 사회적 쓰임을 강조합니다. “그거 하면서 먹고 살 수는 있는 거냐”고 묻죠.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요즘 같은 때는 그저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이라 말합니다.



톰과 머피의 이 대립구조 역시 기성 직장인과 스타트업 팀원에 비춰보면 어떤가요. 톰처럼 수많은 0중에 하나로 살면서 늘 피곤해하고 불만에 차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머피처럼 눈을 반짝이면서 신나게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죠. 아마 스타트업에 대한 애정 탓에 제가 좀 지나치게 말하는 거겠죠? 그래도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두가 이해할 만큼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얘기라 생각합니다.


현실, 중요하죠. 맞습니다. 사실 이전 세대가 현실을 돌보며 열심히 살아주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것들도 없었겠죠. 어른들께서는 당신들이 살아온 방식에 비해 너무 낯선 형태라 혹시나 우리가 잘못될까 걱정돼서 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시키는 대로 열심히만 산다고 답이 나오는 시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무척 좁고 괜찮은 일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이 좁은 나라에서 우리가 다 땅만 파먹고 살 순 없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도 꼭 있어야 합니다. 되든 안 되든 로켓을 타고 뭐가 있을지 모르는 미지를 탐험하려는 의지. 이거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누가 다시 저에게 “스타트업 그거 해서 어떻게 먹고 살래?”라고 물어온다면, 좀 오그라들긴 하지만 이렇게 답해야겠습니다.


“우린 답을 찾을 겁니다.
늘 그랬듯이.”


이미지 ©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 Paramount Pictures Corporation.


원문보기: 스타트업 미디어 비석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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