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TaPick

'운빨'이 아니라 '조작'이었다

TaPick #108

by 팀어바웃

1. 운을 파는 게임에서 운이 조작되고 있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두 개의 게임에서 동시에요. 인기 모바일 게임인 넥슨의 '메이플 키우기'와 111퍼센트의 '운빨존많겜'이 나란히 확률 조작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메이플 키우기는 캐릭터 능력치를 무작위로 재설정하는 어빌리티 시스템에서 최댓값이 나올 확률이 0%였습니다. 아예 안 나오게 코딩되어 있었죠. 운빨존많겜은 펫 뽑기에서 리스트 앞쪽에 있는 펫이 더 자주 등장하는 편향이 있었습니다. 10개월간 모든 유저가 사실상 같은 펫만 뽑고 있었던 겁니다. 글로벌 1,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게임의 핵심 시스템이 처음부터 고장나 있었습니다.


2. 두 회사의 대응 방식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넥슨은 출시일부터 논란 시점까지의 모든 결제액을 전액 환불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추산되는 규모만 2,000억 원. 단일 게임 기준으로 국내 게임 업계 사상 최대 환불로,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까지 하면서 수습에 나서는 모양새입니다. 반면 운빨존많겜의 111퍼센트는 인게임 재화와 펫 선택 티켓으로 보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현금 환불은 없습니다. 같은 문제, 다른 지갑.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비교가 시작됐습니다. 한국게임이용자협회는 운빨존많겜에 대해 공정위 신고와 집단분쟁조정 신청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3. 그렇다고 넥슨의 전액 환불이 진정한 사과일까요? 조건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환불을 받으면 계정 이용이 제한됩니다. 돈을 돌려받는 대신 그동안 키운 캐릭터와 계정을 포기해야 하는 거죠. 이용자들은 이를 '계정 몰수형 환불'이라 부릅니다. 수천만 원을 쓴 고액 결제자일수록 딜레마가 깊어집니다. 돈을 받고 떠날 것인가, 신뢰가 바닥난 게임을 계속할 것인가의 문제죠. 더 불편한 건 넥슨이 이 논란에 처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2021년 같은 IP인 메이플스토리 큐브 확률 조작으로 공정위 제재를 받았고, 2024년에는 확률 미고지로 116억 원 과징금을 물었습니다. 같은 IP, 같은 문제, 같은 사과. 세 번째입니다.


4. 두 회사 모두 오류를 알고도 숨겼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커졌습니다. 넥슨은 이용자 문의에 "문제없다"고 답한 뒤, 공지 없이 몰래 수정하는 이른바 '잠수함 패치'를 했습니다. 이 사실이 드러나며 분노가 폭발했죠. 넥슨은 담당 책임자에게 해고를 포함한 징계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자칫 책임전가로 비춰질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운빨존많겜도 마찬가지입니다. 커뮤니티에서 이상 징후가 제보된 뒤에야 인정했습니다. 오류 발생 시점조차 명확히 공개하지 않았고요. 투명하게 밝히기보다 들킬 때까지 버티는 전략. 두 회사가 닮은 건 코드가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5. 이쯤되면 개별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확률을 파는 비즈니스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용자는 표기된 확률을 믿고 돈을 쓰지만, 그 확률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검증할 방법이 없습니다. 회사가 스스로 인정하기 전까지는요. 운빨존많겜은 이름부터 운에 존망이 달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운이 처음부터 조작되어 있었다면, 이용자들이 시험한 건 자신의 운이 아니라 회사의 양심이었던 셈이죠. 2,000억 원짜리 환불과 재화 몇 개의 보상. 둘 다 신뢰를 되사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확률이 0%였던 건 최댓값 옵션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https://www.thepublic.kr/news/articleView.html?idxno=29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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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로니무스 보스, 마술사(The Conjurer),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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