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제안: 6개월 안에 증명하라
앤드류는 새로 발표된 정책 브리핑을 반복해서 읽고 있었다. 몇 가지 단서가 주어지긴 했지만, 결론은 명확했다.
‘지금 CPS의 주력 사업 시장은, 10년 안에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앤드류는 절망적으로 보이는 브리핑의 내용 중에서도, 혹시라도 일말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찾고 있었다. CPS의 원천 기술로 건설된 플랜트는 전격적으로 폐쇄되고, 이를 대신하여 친환경 기술의 플랜트로 대체한다는 로드맵이 드디어 발표되었다. 신규 건설 중단의 파고는 견뎠지만, 이렇게 전격적인 폐쇄 정책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공식 발표 속에는 예외 조건과 전환 유예 조항이 적혀 있었지만, 앤드류는 알고 있었다. 정부의 방향성은 바뀌지 않을것이며, 고객사들은 즉각적으로 투자를 멈출 것이다.
‘그래도 몇 년은 버틸 수 있겠지.’ 앤드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했지만,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 낙관이 오래가지 못할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직감하고 있다.
과거 그는 플랜트 신규 건설 중단의 환경에서, 유지 보수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회사의 르네상스 시기를 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전략이 무력해지고 있다. 기존 고객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있고, 신규로 진출한 시장에서의 존재감은아직 미미하다.
기존 시장에서의 매출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회사가 보유한 경험과 기술을 활용해서 새로운 종류의 플랜트 유지 보수사업으로 진출하는 것 이외에는 해답이 없다고 믿고 있다. 이미 신규 시장에서 매출 비중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새로운 시장에서는 CPS의 기술과 경험은 경쟁사 대비 우위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앤드류는 반복해서 같은 기사를 읽고 있었다. 산업부 장관이 내놓은 정책 발표. 요지는 분명했다. “10년 안에, 지속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는 모든 노후 플랜트는 단계적으로 퇴출될 것이다.”
앤드류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희망적인 문장은 하나도 없군…’ 하지만 그는 무너진 희망 속에서도 작은 가능성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래, 아직 모든 게 닫힌 건 아니야. 아직 플랜트는 문을 닫지 않았고, 그 플랜트들의 완전한 폐쇄와 전환에는 시간도 자금도 필요하지. 어쩌면, 이러한 과도기에서는 우리 역할은 더 중요해질 수도 있어. 그 기간에 우리의 주력 사업인 기존 기술 기반의 플랜트 유지 보수 사업을 여전히 지속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사이에 서서히 새로운 기술로 건설되는 플랜트 유지 보수 사업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변경할 충분한 시간이 있을 거야.’
그는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듯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누구라도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산업 구조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변화하고 있었고, 정부의 정책은 그저 그 흐름을 공식화한 것일 뿐이었다. 정부는 이미 다년간 준비해온 전력시장 개편안을 법제화했고, 기존 발전설비에 새로운 기준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탄소 배출, 설비 효율성 — 모두가 CPS 같은 전통 산업 기반 기업에게는 불리한 잣대였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도, 막상 공식화되고 나니 기분이 묘하군.’
앤드류는 허탈하게 미소 지었다. 그는 데스크에 놓인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회사 전체 매출의 70%가 여전히 노후 인프라 유지 보수에 의리암하고 있었고, 나머지 30%의 신규 시장도 아직은 의미 있는 수익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시장은 사라지고, 가격은 내려가고, 고객은 변했다. 그런데 이런 노후한 현장에서 원가율을 뭘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결국 더 큰 시장으로 진입해서 매출을 증대하는 것만이 해결 방법이다.’
앤드류가 책상에 앉아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사이에, 한국 출장에서 돌아온 루이스가 문을 노크했다. 앤드류는 루이스가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릴 때까지 눈치 채지 못했다.
“본사에서는 CPS의 새로운 시장 진입과 매출 증대 계획, 그리고 수익성 개선 계획에 대해 본사의 경영진과 논의했습니다.”
“과거 논의 했던 내용과는 크게 다를 바는 없군. 본사에서 이번에는 우리 계획에 동의 하던가요?” 앤드류가 물었다. .
“이번에는 특별한 피드백은 없었습니다. 아직은, 우리 결정을 존중하며, 조만간 성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할 수 밖에는 없을 겁니다. 다만, 이번에는 원가 구조 개선 활동을 하나 더 얹기로 한 계획과 그 활동을 리딩 할 파견자가 확정되었습니다.”
“그래, 그 사람은 만나봤나요?”
“네, 티제이라는 사람 입니다. 한국의 직급으로는 차장 직급으로 경력과 역량은 충분해 보입니다. 관련된 경험도 많고영어도 그 정도면 소통하는 데는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그 옵션은 내가 반대를 했지만, 결국 결정되었군. 우리 회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그렇다고 마냥 반대만 할 수 없으니…‘
루이스는, 앤드류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지원하고 있다는 모습은 보일 예정입니다. 영국에 도착하자 마자 바로 일할 수 있도록 팀도 미리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때문에 성과가 미흡했다는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각별하게 신경 쓰겠습니다.”
“그래야지…” 앤드류는 루이스에게 이제 되었다고 손짓을 하고는 의자를 돌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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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차장이 출국 준비에 한참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날 저녁, 인사 담당 임원은 박 상무의 집무실을 찾았다. 박 상무는 일어서서 집무실의 문을 조용히 닫고는 인사 담당 임원에게 테이블에 앉도록 권유했다.
“왜 유 차장입니까? 박 상무 산하에만 해도 에이스들이 여럿 있잖아요.” 인사 담당 임원은 조용히 의자에 몸을 기대며말했다.
“유 차장이 최근 많이 좋아졌어요. 마침 맡고 있는 프로젝트도 마무리 단계이고, 그 에이스들은 지금 중요한 프로젝트를맡고 있어서요.”
인사 담당 임원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6개월 안에 무슨 변화가 있겠습니까. 재무 쪽에선 이미 구조조정 후 매각 시나리오로 결론을 내렸다는 소문입니다. 현지 경영진에게는 '매출 증대'라는 6개월의 시간을 준 셈이고, 우리 쪽도 '원가 구조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증거는 남겨야죠.”
“.... 만약에 정말로 두 계획이 모두 성공 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혹시 모르죠. 둘 다 성공할지도. 하지만 현지에서도 이미 어느 정도 상황은 눈치 챘을 겁니다.”
박 상무는 시계를 한번 흘겨보고는, 인사 담당 임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가야 하니까요.” .
“.... 그리고 그게, 유 차장이라는 거군요.”
“예. 유능하고, 여러 면에서 적당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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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차장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창문의 환기창을 열었다. 늦가을의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파고들었다. 전등을 켜지 않은 채 어스름한 책상에 앉아, 지하철에서부터 계속해서 듣고 있던 음악에 눈을 감고 의자에기대었다. 몽롱한 느낌이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스탠드를 켜고 지난밤 고민하던 CPS의 원가 구조 개선 아이디어를 종이위에 빠르게 옮겨 적기 시작했다.
스케치를 끝내고 커피숍으로 향하는 길에 최 차장을 만났다.
"최 차장도 오늘 일찍 나왔군?"
"나도 마침 준비할 게 있어서. 그런데 어디 나가는 길이야?"
"커피 한잔 하러 갑시다. 내가 쏠게."
유 차장과 최 차장은 커피숍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섰다. 카운터 너머 점장은 준비 작업으로 분주했다. 유 차장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점장은 그를 알아보는 듯 익숙하게 주문을 받았다.
"오늘은 준비가 조금 늦어져서 1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합니다."
그는 아르바이트생이 만드는 것보다 점장이 직접 내리는 아메리카노 맛을 더 좋아했다. 아르바이트생은 보통 7시 30분이후에 출근하므로, 커피숍 문을 열자마자 주문하면 점장이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이제 곧 떠나는구나. 준비는 잘 돼가?" 최 차장이 물었다.
"글쎄, 문서로만 도상 훈련 중인데, 감은 잘 안 잡히네. 내가 잘할 수 있을는지..."
"그래도 유 차장은 뭐든 시작하면 어떻게든 결과는 내잖아. 그런 추진력은 진짜 부럽지." 최 차장은 자신이 한참 생각한뒤 움직이는 타입이라, 유 차장의 그런 직진성이 부럽기도 했다.
"이제 곧 떠나면, 당분간 여기 커피는 맛보기 힘들겠군요." 최 차장이 유 차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겠지. 이 집 점장이 직접 내린 아메리카노는 끝내주는데. 그거 알아? 점장이 만든 커피는 아르바이트생이 내린 것과는 조금 맛이 다른 거."
"그래? 설마, 같은 원두로 같은 기계로 뽑는 건데 무슨 차이가 난다고..." 최 차장이 대답했다.
"음, 난 좀 차이가 나는데..." 유 차장은 카운터 가까운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만드는 점장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뭘 그렇게 유심히 봐. 설마 공정 분석이라도 하는 거야?"
"하하 그런 건 아니고, 점장과 아르바이트생의 아메리카노가 왜 달라지는지 이유를 확인하고 말겠어."
"집요하군. 난 카페인이 필요할 뿐이야. 아~함." 최 차장은 아직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점장의 동작을 바라보는 유 차장을지켜봤다.
커피숍에는 동일한 모델의 에스프레소 머신 두 대가 있었고, 모두 동일한 기준으로 정비되었을 것이다. 커피를 내리기전 예열도 완료 되었을테고. 원두 역시 자동 그라인더 두 개를 사용하며 원두 종류와 상태에 따라 입자 굵기와 도징량도사전에 세팅 되어 있을 것이다.
'기계를 거치는 동작에서는 맛의 차이가 없거나 무시할 정도야. 그렇다면, 수작업에서 차이가 나는 걸까?'
그는 수작업 공정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첫째,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포터필터 분리전에 뜨거운 물을 흘려 보내는 순서. 이건 생략되거나 부족하면 커피 추출 온도에 미세한 영향을 주거나 찌꺼기가 포함될 수 있었다. 둘째, 그라인더에서 받은커피를 일정한 압력으로 수평이 되도록 누르는 작업. 이 작업에서 과도한 압력은 쓰거나 탄 맛을, 부족한 압력은 묽거나신맛을 유발할 수 있었다. 두 공정 모두 바리스타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하여 적절한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조용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같이 주문한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어때? 뭘 좀 발견 했어?" 최 차장이 물었다.
"글쎄, 그건 잘 모르겠고, 그저 오늘 커피 맛은 유달리 쓰네.." 유 차장은 커피와 점장을 번갈아 바라봤다. “거봐, 그거 별 차이 없는 거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