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제안: 6개월 안에 증명하라
“반갑습니다. 루이스 입니다.”
유 차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로 들어오는 루이스와 악수를 나눴다. CPS의 전략 담당 임원이라는 소개는 받았지만,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금발에 파란 눈, 유럽계 백인의 전형적인 인상. 돗수 없는 렌즈를 넣은 안경을 쓰고 눈에힘을 주는 그 모습에서, 유 차장은 그 역시 첫인상을 의식하고 있음을 느꼈다.
악수는 짧았지만, 서로 의식한 듯 악수는 꽤나 단단했다.
“박 상무님, 그리고 재무 쪽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수익성 개선과 관련해 유 태진 차장님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 이 분야 전문가라고 하시더군요. 기대가 큽니다.”
루이스의 말투는 빠르지 않았고, 발음도 명료했다. 예상했던 영국 특유의 발음도 도드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태진의 발음은 어려워했다.
유 차장은. 그의 듣기 쉬운 발음과 액센트가 한국 본사와의 오랜 업무에서 겪은 배려가 몸에 익은 거라고 생각했다.
“제이름의 발음이 불편하시면, 그냥 티제이라고 부르십시오. 제 이름의 이니셜 입니다.‘
“오, 티제이 좋습니다. 앞으로 티제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티제이 유.”
“스코틀랜드에 도착하시면 바로 팀을 하나 맡게 될 겁니다. 개선 활동의 실행에도 즉각적인 도움이 되겠지만, 현지 인력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체계를 만드는 것이 본사 방침이니까요.”
유 차장은 갑자기 팀을 맡는다는 부담과 함께 안심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팀까지 셋업 할 계획이라니, 그렇다면, 팀의 역할도 정의되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수익성 개선의 방향에 대해서도어느 정도 준비 되어 있겠군.’
“혹시 현지에서도 원가 구조 개선 활동에 대해서 이미 준비 중인 내용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목표가 명확하다 보니 이미 몇 가지는 움직이고 있죠. 다만, 아직 뚜렷한 방향이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음, 그 내용 보다는 회사의 상황을 먼저 정확히 공유 드리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영국에 가면 이렇게 조용히 얘기 나눌 시간도 없을 테니까요.”
유 차장은 살짝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 차장은 박 상무와 미팅 이후에 사전에 재무팀으로부터 CPS의 재무 상황에 대한 자료를 전달 받아 스터디를 했다. 지난 3-4년 전부터 적자로 전환된 상황은 명백했다. 재무 정보만으로는 적자의 원인을 쉽게 알 수는 없었지만, 전형적인 매출 부진에 의한 적자 전환이라고 추측되었다. 매출 감소는 고정비 부담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고정비 증가로 인해 원가율이 악화되었으니, 경쟁사 대비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고, 경쟁력이 떨어지니 수주를 못하고 매출이 떨어진다. 매출이 떨어지니 다시 고정비 부담은 가중되어 원가율은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어려운 악순환이 분명했다.
“티제이, CPS는 플랜트의 건설에 필요한 주요 기자재의 설계와 제작에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CPS의 기술을활용한 영국내 해당 플랜트의 역사는 150년이 넘었지요. 영국내 역사는 CPS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루이스는 잠시 숨을 골랐다.
루이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CPS에 현장직으로 입사했다. 우수한 근무 성적으로 회사의 지원을 받아 대학을 졸업했고, 결국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현재는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본사의 수익성 개선 압박에 시달리고 있지만, 회사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 만큼은 충분히 지키고 싶었다.
“물론, 제가 회사에 입사했을 때에는 이미 영국에서 우리의 기술을 활용한 신규 플랜트 건설은 없었습니다. 이미 친환경기술을 활용한 플랜트가 건설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루이스는 옛 생각에 잠시 뭉클하는 듯 했다. “하지만, 우리 기술로 건설된 플랜트는 여전히 가동되고 있었고, 유지 보수만 잘한다면 정상적인 가동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신규 건설 시장은 닫혔지만, 유지 보수 시장은 점점 크게 열렸죠. 다행히도, 우리는 사업 영역을 신규 건설에서 유지 보수 사업으로 성공적으로 변경했습니다.”
“아무래도 유지 보수 사업은 신규 건설 사업보다는 시장 규모가 작았겠군요?” 유 차장이 물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CPS는 과거에 지어진 플랜트의 원천 기술 보유사라는 독점적인 지위를 활용해서, 플랜트 유지 보수시장에서도 나름 안정적인 매출과 수익율을 확보할 수 있었죠. 원천 기술 보유 회사로서 고객 신뢰도를 잘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유 차장은 루이스의 설명을 들으며 간혹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이미 저희 기술로 지어진 플랜트를 운영하는 회사에서는, 다른 회사 보다는 CPS를 선호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사기간의 지연 없이 기술적으로도 완벽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옵션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영광에 대한 유산과도 같은 셈이지요.”
루이스는 입술을 지긋이 눌렀다.
“하지만, 영원히 안정적인 시장은 없는 법이죠. 시장 규모는 한정되어 있었고, 신규로 시장에 진입한 경쟁사의 실력과공사 신뢰도가 향상되면서, 고객들은 굳이 값비싼 CPS와 장기 계약을 맺기를 꺼렸습니다.”
“시장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군요.”
“맞습니다. 시장의 학습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거죠. 고객사의 공사 관리 역량도 증가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험이부족한 신규 업체를 기술적으로 통제하는 것도 가능 해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수익율과 안정적인 매출이 보장되는 장기계약 대신 원가율이 낮은 단기 계약으로 전환되거나, 아예 계약이 종료되는 경우가 증가했지요.”
유 차장은 매출이 줄어들게 된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시장의 경쟁구도가 심화되면서, 신규 사업자는 낮은 비용을 무기로 승리자가 되어가고 있고, CPS는 패배자의 신세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유 차장이 잠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루이스는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플랜트 유지 보수 시장은 매력적입니다. 정부에서는 조만간 기존 기술로 지어진 플랜트를 단계적으로폐쇄하고, 친환경 플랜트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흘리고 있긴 합니다만, 아직 경쟁력이 있는 플랜트를 단기간에 쉽게 없앨 수는 없습니다.”
이때 루이스의 전화기가 울렸다. 유 차장은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아마도 재무 임원인듯 했다.
“아, 이제 재무 임원을 만나 뵈어야 할 시간입니다. CPS의 적자 만회에 대한 대책을 묻겠죠. 우리의 이야기는 아마도 스코틀랜드에서 마저 해야 겠습니다. 티제이, 그럼 건강하게 영국에서 뵙도록 하지요.”
유 차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이다.
‘음, 과연 단기간에 원가 구조 개선 성과가 가능할까? CPS는 싼 맛에 복권을 긁는 기분일 것이군.
며칠전 같은 팀의 최차장에게 파견자로 내정되었다는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파견 이후의 자리를 미리 약속 받지 않는다면, 위험할 수도 있어. 더구나, 6개월이라니…거기서 성과를 내기도, 돌아와서 자리를 잡기도 모두 애매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