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 팀: 홀로 선 리더의 첫발
‘이건 뭔가 잘못되었군, 분명하게 보안 검색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있을거야.’
유 차장의 출국 시간은 넉넉하게 남았지만,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대기하는 내내, 뭔가를 조금이라도 빨리 확인하려는 듯 급한 모습을 보였다. 보안 검색대의 대기 줄이 길어진 것은 필시 일시에 승객이 몰린 이유 이외에 다른 이유가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긴 대기를 견뎌낸 승객이 검색대에 도착하게 되면, 가지고 있는 기내 수하물과 소지품을 엑스레이 검사를 위해 트레이에 옮겨 담아 놓아야 한다. 승객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서 있는 보안 요원은, 이때 자신 앞에 쌓여져 있는 트레이 중에서 하나를 승객에게 밀어서 건네 준다. 이 사이 승객은 보안 요원이 건네어 주는 트레이를 전달 받기 위해 잠시 대기했다가, 배낭과 같은 작은 수하물과 소지품을 트레이에 넣기 시작한다. 1차 지체가 발생한다.
소지품의 개수가 많거나 가방 안의 노트북이나 패드가 있는 경우에는, 추가 트레이를 요구하고 이를 받는 과정이 생긴다. 여기에서 2차 지체가 발생한다. 보안 요원 앞에 쌓여 있는 트레이는 주기적으로 누군가 채워 주기는 하지만, 간혹 미리 소진되는 경우에는 기다려야 한다. 3차 지체다. 승객이 트레이에 소지품을 넣는 작업을 하는 테이블은 길이가 약 1.5미터에 불과하다. 이 공간에서는 두 사람이 트레이에 옮기는 작업을 하기에 빠듯하다. 한 사람이 트레이에 옮기는 작업을하는 동안 다음 사람은 애매한 공간에서 기다린다. 4차 지체 현상이다.
마침내 짐을 모두 트레이에 옮기고 나면, 기내 수하물과 함께 보안 요원에게 건넨다. 요원은 그것들을 엑스레이 검색기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승객은 다시 신체 엑스레이 검색대로 안내된다. 승객은 사전에 모든 금속물을 수하물 트레이에 넣도록 안내 받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발생한다. 주머니의 동전 하나, 벨트 버클 하나에도 멈춰 서서 다시 검색을 받는다. 5차 지체가 발생한다. 반면, 보안 점검 게이트 이후에 만나게 되는 법무부 관할의출국 수속 게이트는 한산했다. 보안 검색대보다 훨씬 간단한 절차, 두 배는 많아 보이는 게이트와 전자 심사 덕분일 것이다.
“아마도, 보안 검색 과정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단위 시간당 보안 검색 완료율'이 아니라, '보안 검색 실패율'이기 때문일거야. 그러니, 그들에게는 승객의 대기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거지.” 그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
런던 공항에서 글라스고까지 환승까지 포함한다면, 대략 18시간 이상은 걸린 것 같았다. 서울에서 런던까지 12시간, 그리고 런던 공항에서 환승을 위해 2-3시간 대기,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1시간 30분 가량 날아서 밤늦게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 공항에 드디어 도착했다. 유 차장은 예전 브라질 출장 당시에 직항이 없어서, 24시간이 꼬박 걸렸던 경험을 떠올리며, 그것 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유 차장은 짐을 기다리면서 주변 사람의 영어 악센트가 이상하다고 느끼고는, 고개를 들어 공항의 이름을 찾아보니 다행히 ‘웰컴 투 글라스고’라는 사인을 발견하고 안심했다.
‘휴, 비행기를 잘못 타서 이상한 곳에 착륙한 건 아니로군, 앞으로 언어 적응도 어려움에 한몫 하겠어.'
그는 짐을 찾아 터미널 바깥으로 나섰다. 늦은 저녁, 비까지 내리는 하늘은 암흑 그 자체였다. 가볍지 않은 빗방울이 강한 바람과 함께 얼굴을 때렸다. 비가 섞인 강한 바람이 대기 중의 먼지를 씻어냈는지, 차가운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자 호흡기가 깨끗하게 청소되는 듯 신선했다.
'이곳은 비가 옆으로 내리네….'
글라스고 공항을 빠져나온 이후 첫 대화 상대는 택시 기사였다. 기사는 오랜만에 보는 동양인이 신기한 듯 연신 말을 건넸다. 유 차장은 스코틀랜드 특유의 악센트 때문에 문맥 대신 단어를 하나씩 알아들어가며 겨우 소통했다. 비가 오고 가로등이 많지 않아 도로는 어두웠지만, 기사는 빗길 운전에 익숙한 듯 속도를 내 호텔에 도착했다.
본사의 영국 자회사 CPS. 그는 이곳에서 팀 하나를 맡아 이끌어야 했다. 겉으로는 팀장으로 부임했지만, 실상은 문제를해결하기 위해 홀로 최전방에 놓인 기분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박 상무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유 차장, 이건 성장의기회가 아니라, 능력을 증명하는 자리라네. 예상은 하겠지만, 자네에 대한 내부 저항은 심할 거야.'
'내가 과연 이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방적기와 직조기의 기계화를 가장 먼저 이뤄낸 나라여서일까. 고급 호텔이 아님에도 침대 시트의 품질은 어떤 곳보다도 좋았다. 그 생각과 함께 잠이 들었다.
###
다음날 회사 건물 로비에 도착하자, 리셉션 직원이 밝은 미소로 그를 맞이하며 이름을 물었다.
‘티제이 유’라고 대답하니, 임시 출입증을 인쇄해 주었다. 그 이름표를 옷깃에 달고 나니, ‘본사에서 파견 온 유 차장’이라는 보잘 것 없는 마지막 보호막 조차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티제이 유’ 티제이는 이제 바뀐 자신의 이름을 속으로 불러보았다.
잠시 리셉션 직원이 건네어 준 차를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긴 금발에 눈이 파란 여성이 그를 반겼다.
"미스터 유, 저는 클로이 입니다. 같이 일하게 될 팀원이에요. 드디어 만나네요! 여행은 어뗐어요?"
“그냥 티제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런데, 저와 같이 일한다고요?”
“아, 아직 통보를 받지 못하셨군요.” 클로이는 살짝 당황했다.
"아 괜찮습니다. 이제 안내를 받을 수 있겠죠. 그리고, 여행은 좋았습니다. 다만 오랜만에 수동 기어라니, 그것도 왼손으로 말입니다." 티제이는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자동 기어는 한국에서는 보편적이라고 들었어요. 여기는 특히 소형차는 대부분 수동 기어라서 낯설 수가 있겠네요. 앞으로 적응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거예요."
클로이는 티제이를 위해서 최대한 스코틀랜드 액센트를 배제하며 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계속 걸어주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티제이를 루이스의 사무실로 안내하고 자리를 떠났다. .
티제이는 잠시 자리를 비운 루이스를 기다리면서, 또 다시 루이스의 비서가 건네어 준 티를 따라 마시고 있었다. 잠시후, 루이스가 나타났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홀로 탐험하던 중에, 갑자기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했다.
“루이스, 반갑습니다.”
"유 차장 아니, 티제이, 드디어 왔군요. 이제 영국에서는 티제이로 부르겠습니다.” 루이스는 티제이의 가슴에 달려있는임시 출입증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 차장은 지금부터 티제이가 되었다. 이름이 바뀌니 갑자기 파견 직원이 아니라, 원래부터 CPS의 직원이 된 느낌이 들었다.
“스코틀랜드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계절에 왔군요. 이곳에서는 겨울에 매일 비가 온다고 보면 됩니다. 이 곳 사람들은매일 비가 오니 우산도 잘 안 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