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4/5)

숫자의 민낯: 보이지 않는 프레임

by 티제이

스코틀랜드의 겨울은 오후 세 시를 넘기면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한다.


티제이는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치고, 책상 너머 창문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다. 창은 가로로 길게 뻗어 있었고, 의자에 앉으면 마치 이 자리만을 위해 설계된 것처럼 지평선이 정확히 눈높이에 걸렸다. 겨울 밤의 스코틀랜드 하늘은 먼지 한 점 없이 투명했다. 멀리 펼쳐진 코발트 빛 하늘과 어둠이 깔린 숲의 경계는 명확했고, 지평선 아래머물고 있는 미약한 남색 잔광은 사라지기 직전의 빛처럼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었다.


티제이는 의자에서 상체를 곧추세워 창을 통해 풍경을 바라보다, 오늘 경영회의의 답답했던 장면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회의 자료가 펼쳐져 있었다. 그는 자료를 다시 넘겨보았다. 예상보다 훨씬 공격적인, 심지어 무모해 보이는 수준의 목표가 계속 가슴을 짓눌렀다.

'내일, 그렉과 이야기하면 실마리가 보일까, 아니면 또 다른 불확실성만 확인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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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제이는 그렉의 사무실 앞에 잠시 멈춰 섰다.


건물 2층의 가운데. 위치만 보면 평범했지만, 이 사무실은 건물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본관 전체가 긴직사각형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직사각형의 가운데 부분에서 살짝 앞쪽으로 돌출된 날개 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문을 조심스럽게 밀자, 삼면으로 창이 나 있는 넓은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앙에는 무채색 톤의 회의 테이블이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최신형 대형 모니터와 화이트보드, 반대편에는 빽빽한 숫자 인쇄물이 정리된 캐비닛이 놓여 있었다. 책상이 아닌 회의 테이블이 중심인 배치도 인상적이었다. 개인 업무보다 '의사결정'과 '설명'이 주 기능이라는 듯, 공간은단정하고 전략적으로 정리돼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창이었다. 창은 좌우 뿐 아니라 정면으로도 길게 나 있었고, 바깥으로는 공장 구역 일부와 숲, 그리고 멀리 언덕까지 시야가 막힘 없이 펼쳐졌다. 이곳은 단지 전망 좋은 방이 아니었다. 본관의 어떤 자리에서도 볼 수 없는 시선을 확보한 이 공간에서는 회사의 거의 대부분을 구석 구석 바라볼 수 있었다.


“영국 도착하시지 마자 경영회의 회의부터 참석하셨다지요. 정신없으셨겠습니다.”

티제이가 막 자리에 앉자, 그렉이 미소를 지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덕분에 회사 분위기는 빠르게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은 만만치 않네요.”

티제이는 의례적인 인사와 함께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가늠했다. 그렉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루이스와 수익성 개선을 위한 방향성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공유했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방향성을 말씀드릴만한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출발선을 어디로 설정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렉은 손끝으로 책상 위 펜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왜 제가 그토록 원가율 개선에 신경을 쓰는지 짐작이 가십니까?”

질문은 마치 너무 쉬운 시험 문제 같았지만, 그렉의 목소리엔 어느 정도 기대가 섞여 있었다. 티제이는 경영회의에서 그가 원가율에 대해 몇 차례 강조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는 잠시 생각한 뒤 조심스럽게 답했다.


“매출 증대와 원가율 개선은 사실 완전히 별개의 활동은 아니죠. 매출을 높이더라도 원가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영업 이익이 줄어들고, 결국 경쟁력도 약화되기 때문이겠죠. 영업 이익이 뒷받침되어야 경쟁가격도 가능하고, 그래야 매출도 지속적으로 따라올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렉은 티제이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원가율 개선은 결국 흑자 전환이 목표인 셈이죠. 티제이가 저의 고민을 알고 있다면, 아마조금 다른 답을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허리를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어조를 낮췄다.

“작년 매출은 소폭 증가했습니다.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매출총이익은 오히려 감소했어요. 그게 무슨 뜻이냐하면, 적자 상태에서 원가율이 더 악화되었고, 결국 적자 폭이 더 커졌다는 뜻입니다.”


“매출은 올랐지만, 수익율은 떨어졌다. 결국 수익율과 매출이 반비례했던 셈이군요.”


“그렇죠. 매출은 겨우 1-2% 올랐지만, 비용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입니다.”


그렉은 마치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간접비 중에서 경비 부분은 통상적으로 매출 증가에 따라 비례해서 증가하지 않나요?” 티제이는 조심스럽게 의견을덧붙였다.


“정확하게는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경비를 더 투입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죠.” 그렉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늘 현업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수주 확대를 위한 활동이 늘었고, 외주도 활용해야 하고 그에 따라 비용이 불가피하게 증가했다는 논리.”


그렉은 손끝으로 회의 테이블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문질렀다.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인력 규모에 대한 고정비도 문제 입니다. 매출은 하락했지만, 조직은 계속 업무 부하 증가를 이유로 인력 충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면, 예를 들자면, 설계 조직이 실제 수주와 무관하게 계속해서 인력을 소모하고 활동을 확장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숫자로 보면 바빠 보이고, 내부적으로는 ‘열심히 일했다’는 보고가 올라오죠. 비용 증가만 가중된다는 의심입니다.”


티제이는 이 대목에서 고개를 들었다. 티제이 역시 이전 직장에서 유사한 상황을 수차례 목격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매출과 연결되지 않는 투입된 시간과 인력은, 현업에서는 필수적인 일이지만, 회계적으로 볼 때는 그저 비용이 증가하고, 그 비용 증가분은 그저 매몰 비용처럼 증발해버리는 것이 로군요”

“맞습니다, 티제이. 설계와 구매에서는 현재 과부하 상황이라는 이유로, 인력 충원을 계속 요구하고 있어요. 현재 상황에서의 인력 충원 그리고 경비 증가는, 제가 주장하는 ‘보이지 않는 비효율’이 실제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누적되어 현실이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그렉은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티제이는 그렉이 단순히 CFO로서의 책임감을 넘어서, 체계적 진단 없이 반복되는 현재의 상황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는 루이스에게 받았던 느낌과도 비슷했다.


“결국 CPS의 현재 원가 구조 상황으로는, 그러니까 매출 증가보다 원가율 증가가 더 빠른 현재 상황에서는, 매출 증대만으로는, 흑자 전환이 어려울 수밖에 없겠군요.”

“그래서, 간접비 중에서도 경비 절감 목표를 10%를 부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씀하시는 수익성 개선에는 간접비 외에 직접비도 영향을 미치겠지요. 아니 영향도로만 따진다면 재료비와 같은 직접비의 절감 효과가 더욱 크지 않을까요? 저는, 재무에서 직접비 절감을 위한 계획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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