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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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경영회의 : CPS 최고 문제 해결 기구
“내일 당장 경영회의에 참석하라고요? 저는 그저께 밤에 스코틀랜드에 도착 했다고요.”
티제이는 아직 회의실 위치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처지인데, 루이스의 갑작스러운 요청은 당황스러웠다.
“더구나, 하루 종일 진행한다고요?”
루이스는 경영회의의 참석자와 안건 그리고 회의의 중요성에 대해 티제이에게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회의에는 CEO, CFO와 기획 임원을 포함한 주요 임원들이 참석합니다. 비즈니스 성과와 현황은 기본이고, 다양한 의사 결정도 즉석에서 이루어지곤 하죠.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주요 임원이라면…”
“임원 중에서도 일부만 참석하는 일종의 최고 경영회의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 회의에 참석하는 임원과 그렇지 않은 임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구분이 존재합니다.”
티제이는 눈앞의 실무 데이터와 경영위원회의 아젠다가 머리속에서 동시에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을 상상했다.
“티제이가 앞으로 경영회의에 정식 참석한다는 것은, 회사의 중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걸맞는 기여를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와 더불어, 회사의 수익성 개선 활동을 직접 설계하고 추진하는 책임도 잊으면 안되겠죠.”
“제가 추진하고자 하는 개선 방향의 의사 결정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군요.”
티제이는 장점을 생각했다.
“물론입니다. 티제이가 경영 회의에 참석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현업에서는 티제이의 의견에 더 공감하려 노력하고, 해결 방안에 대해 무시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힘이 생기게 될 겁니다.”
쉽게 보이지 않는 회의의 의미
티제이는 회의실에 30분 일찍 도착해 있었다. 아직 회의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회의실 가운데엔 타원형의 회의 테이블이 이어져 있다. 메인이 되는 가운데는 피해야 했고, 너무 구석 자리는 스스로의 존재감을 없애 버릴 것 같았다. 적당히 중앙에서 벗어난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티제이가 자리를 잡자 한 임원이 다가왔다. “그 자리는… 제가 앉던 곳입니다.”
티제이는 말없이 옆자리로 옮겼다. 회의실의 테이블에는 보이지 않는 구분선이 분명했다.
회의 참석자들이 하나 둘 회의실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티제이를 대부분 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환영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더 이상 자리를 옮겨 달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문 쪽에서 짧고 묵직한 인사 한마디와 함께 CPS의 CEO인 앤드류가 등장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임원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오늘 회의 자료를 들춰보았다. 이윽고, 그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회의 참석자들은 일제히 그를 바라보던 시선을 회의 자료에 옮기며 회의가 시작했다.
회의 시작은 인사 임원의 사내 우수 사례를 활용한 오프닝은 좋았지만, 잘 다듬어진 기획물과 같았다. 이어서 앤드류의 아젠다가 길게 이어졌지만, 모두들 조용히 메모를 하거나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질문은 없었다. 앤드류의 지시 자체는 명확했지만, 그 내용만으로 당장 떠오르는 이슈와 액션은 불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회의는 소프트한 주제에서 점차 경영 안건으로 움직여가고 있었다.
"중동 시장에 새롭게 진출할 것인가에 대해, 전략 및 영업 조직에서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척된 내용이 있습니까?" 앤드류가 무표정하게 영업 임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영업 임원인 윌리엄은 순간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바뀌며 대답했다.
"지난주에도 몇 건의 고객사와 미팅을 추진했고, 현재로선 곧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입니다."
앤드류는 "쉽게 결론이 나지는 않겠죠. 특히 그 고객사는 가격이 중요한 요소일텐데…"라며 말을 닫고, 영업 임원에게 믿고 맡긴다는 표정으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HR 평가 시스템 도입건은요? 구성원 평가의 체계화와 효율성 제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앤드류가 HR 임원과 IT 임원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현재 평가 과정 전반에서 시스템 도입이 필요한 영역을 정리 중입니다. 내부 검토는 일부 진행됐고, 아마 다음 달 중에는 방향성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똑같은 흐름이 반복되었다. 수치도, 마일스톤도 없었다. 앤드류는 “다음 달 확인하겠다.”는 피드백으로 마무리 되었다.
티제이는 이 회의의 목적과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루이스가 티제이를 소개했다. 앤드류는 ‘흑자 전환은 전사의 과업이며 티제이는 그 구조화를 맡는다. 협력이 관건’이라며 소개와 당부를 밝혔다. 티제이의 짧은 인사 후 곧바로 재무 성과 리뷰로 들어갔다.
공격적인 목표, 불분명한 실행 계획
회계연도 두 달째, CPS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이미 목표를 밑돌고 있었다.
CFO 그렉은 차분히 설명했다. “작년 말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올해 실적을 작년에 미리 당겨서 선 반영한 부분이 있고, 비용 집행도 일부 올해로 미룬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올해는 반드시 흑자 전환. 매출 +30%, 순이익 1파운드”라고 강조했다. 숫자는 강조되었지만, 부진의 원인과 대책은 없었다.
티제이는 빠르게 계산해보니, 전년 대비 40% 수익률 개선이 필요한 무거운 목표였다. 문제는 목표의 과중함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할만한 실행 로드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렉의 보고는, 프로젝트 단위의 재무 숫자만 나열되었을 뿐, 목표 대비 차이가 나는 부분이나, 이에 대한 원인이나 대응 방안도 보이지 않았다.
티제이는 답답했다. 이익률은 낮고 수치는 빠지는데… 왜 아무도 원인도, 만회 계획도 말하지 않는 거지? 재무와 현장은 숫자를 공유하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책임만 떠넘기는 듯 보였다.
‘공격적으로 영업이익 목표를 설정해 놓고, 정작 그 이익의 실현 여부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프로젝트 실적에 대해서는 이렇게 형식적으로 넘긴다고?’
경영회의는 향후 계획에 대한 논의를 끝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회의의 마지막 순간까지 구체적인 목표와 수치는 보이지 않았다.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자원의 규모나 역량의 차이도 언급되지 않았다.
티제이는 회의를 마치고 앤드류와 루이스는 잠깐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는, 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려 루이스에게 다가갔다.
“루이스, 올해 재무 목표는 수치만 보면 정말 공격적입니다. 직접비 뿐 아니라 경비까지 10%를 줄이겠다는 게… 인상적 이더군요.”
루이스는 짧게 웃었다. “그렇죠. 경비가 가장 눈에 잘 띄는 비용이다 보니, 손대기도 쉬워 보이죠. 매출 증대와 함께 앤드류가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저항도 만만치 않습니다. 각 조직의 리더들에게는 경비 절감이 자신들의 활동 반경을 실질적으로 제약한다고 느끼거든요.”
“그렇다면 실제 절감 계획은 아직... 수립된 건 아니네요?” 티제이는 실망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공감대는 있죠. 목표도 부여된 상태고요. 하지만 실행 계획은...” 루이스는 답변을 얼버무렸다.
“즉, 세부 목표와 방법은 없다는 거군요.”
루이스는 티제이를 잠시 바라보고는 그의 말을 받았다.
“다음 경영회의 전까지는 각 리더들과 아이디어를 모아볼 생각입니다. 오늘 회의 끝나고 앤드류와 논의했던 것도 그 부분이었어요.” 루이스의 스스로 말이 점점 간걸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CFO인 그렉을 직접 만나보는 게 좋겠습니다. 어차피 재무 개선 목표는 그가 전체를 총괄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미리 말해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