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른 문제 해결의 역설 – Baseline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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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 조직의 원가 관리 단위: 집계와 관리 사이의 Gap
티제이는 재무 매니저 제임스를 만나며, 그가 영국 특유의 의례적인 인사조차 생략한 채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클로이가 추천한 인물 답게 제임스는 거침없었다.
“회사의 수익성 개선 활동을 리딩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티제이 역시 이런 방식이 편했다.
“경영회의 자료를 보니 프로젝트의 재무 실적, 경비 절감 목표는 관리되고 있더군요. 제가 궁금한 것은, 실제 재무에서 어느 수준까지 원가를 관리하는지 입니다.” 티제이 역시 곧장 핵심을 찔렀고, 제임스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기본적으로 회사의 원가와 매출을 다룹니다. 이를 위해 한 단계 아래 데이터인, 프로젝트와 각 조직의 고정비와 기타 경비 항목까지는 관리하죠.”
티제이는 끄덕였다. “즉, 프로젝트 단위 까지만 분석한다는 거군요. 그 안의 개별 원가 항목은 다루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경우도 있지만…그런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제임스는 목소리를 조금 높이며 방어적으로 덧붙였다.
티제이는 잠시 침묵하다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각각 조직의 원가 목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근거는 확인이 어렵겠군요?”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의 전체 프로젝트 숫자는 70여 개가 넘습니다. 거기에 각 조직의 고정비, 간접비 등이 집계 되죠. 결국, 재무에서 관리하는 원가 관리의 단위는 최소 100여 개가 넘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이야기는, 어느 조직에서 목표 대비 문제가 생기는지는 보이지만, 왜 생기는지는 어디에서 생기는지는 알 수가 없다는 이야기 로군요.”
“정확합니다.” 제임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원인 분석은 우리 재무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건 현장과 프로젝트에서 파고들어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노트북을 켜 시트를 펼쳐 보였다. 각 공사 단위, 구매 품목 단위, 인건비, 세부 비용 항목까지 꼼꼼하게 기록된 방대한 자료였다. 그러나 그가 가리킨 것은 최종 요약표였다.
“이건 실적 입니다. 우리는 여기, 이 세부 항목이 집계된 수준만 씁니다. 이 자료는 원가와 매출을 기록하고 정리할 뿐, 이익 저하의 원인 분석에는 직접 기여하지는 못합니다.”
티제이는 물었다. “이런 방식의 관리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이런 회계 위주의 재무 방식을 유지해온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임스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CPS는 오랫동안 매출과 이익에 큰 고민이 필요 없는 회사였습니다. 원천 기술이 있었고,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죠. 그러니 수익성 분석이나 생산성 평가를 위해 애를 쓸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무 조직 내에서도 이 분야에 경험도, 지식도 쌓이지 않았죠.”
티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CEO의 현장 독립성을 중시하는 경향도 한 몫 했겠군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그는 재무의 현장 원가 관리 시도를 일종의 ‘불필요한 통제’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제임스는 티제이를 살펴보다 말을 다시 이었다.
“사실 저로서는 연초 계획했던 원가율이 지켜지기 만을 바랄 뿐이죠. 처음엔 ‘올해는 흑자 달성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지만, 1분기만 지나도 실망으로 바뀌고는 했습니다.”
대화는 거기서 멈췄다. 티제이가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임스가 한마디 더했다.
“직접 원가는 결국 현업에서 만들어집니다. 구매나 프로젝트 회계 담당자인 제프를 찾아가 보시죠. 아마 거기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베이스라인 확보와 성과 지연 사이의 갈등 :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전에 '무엇이 문제인가'
재무와의 대화에서 티제이는 조바심이 났다. 출발점을 재무에서 찾을 수는 없고, 현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루이스가 그를 호출했다. 글라스고 사무실에 와 있던 루이스는 그가 주재하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티제이를 찾았다.
며칠만의 만남에 인사도 없이 그의 첫마디는 곧장 압박이었다.
“티제이, 앞으로 무엇을 목표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건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습니까?”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계획이라니….’ 티제이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CPS의 원가 관리 절차와 수준은 어느 정도 파악했습니다. 이제 구매와 프로젝트 회계 담당자를 통해 원가 데이터를 더 세부적으로 확인하면서—”
루이스는 그의 말을 잘랐다.
“티제이가 파견된 미션을 잊은 건 아닌지 우려됩니다. 그런 얘기는 우리 직원들에게 조차 새로울 게 없어요.”
루이스는 2주 전 경영회의에서 티제이가 '원가 항목별 분석을 통한 개선 목표 부여'를 언급했던 부분을 상기시켰다.
“원가율 개선을 위해서라면, 원가 항목별로 쪼개 분석해서 개선 목표를 부여해야 한다고 했었죠. 저는 그 부분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현업 담당자를 만나 원가 구조를 파악해 보려는 겁니다. 분석을 통해 현재 수준 대비 얼마나 개선해야 하고, 개선 가능한 아이템을 케이스로 만들어서 달성 가능한 목표를 수립하겠습니다. 그 목표가 흑자 전환에 충분한 수준인지도 확인할 겁니다.”
티제이는 차분히 설명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원가 구조를 파악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입니까? 확보가 쉽지 않은 자료 때문에 초반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 아닌가요?”
티제이는 단호히 말했다. “현재 수준을 모르면, 문제와 원인은 물론, 목표도 수립 할 수 없습니다.”
루이스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문제는 이미 정의됐습니다. 얼마나 개선해야 하는지도 재무 슬라이드에 있잖습니까? 다만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거죠. 그걸 준비해 달라는 겁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티제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마터면 ‘그 정도 수준이 문제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쏘아붙일 뻔했다. “저에게 문제를 제대로 정의할 시간을 주십시오. 그래야만 실행 가능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루이스는 팔짱을 끼며 물었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대략 한 달은 필요합니다.” 티제이는 여전히 그 기간을 가늠할 수는 없었다.
루이스의 얼굴에 긴장과 조바심이 스쳤다.
“티제이, 2주 내에 경영진 보고를 준비하세요. 그때가 이 활동의 공식 시작일이 될 겁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못을 박았다. “기억하세요. 아무것도 없이 시간이 흘러버리면, 활동은 동력을 잃습니다. 이 조직은 시간이 지나면 변화를 자기 방식대로 흡수해버리고, 일상으로 묻어버려요. 공식적인 시작과 틀을 잡을 수 있는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티제이는 문을 나섰지만, 루이스의 속내가 귓가를 스쳤다.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몇 달 전 본사에서 파견된 인력도 결국 성과 없이 돌아갔다. 티제이만큼은 그러지 않길 바란다.' 그는 낡은 가방을 고쳐 메며 복도를 걸었다. '성과에 대한 조급함'과 '정확한 문제 정의' 사이에서, 티제이는 첫 번째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티제이는 낡은 가방을 고쳐 메며 복도를 걸었다.
조급한 문제 해결 시도의 역설 : 현재를 모르면 미래도 없다.
티제이는 루이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리암에게 '프로젝트 단위'가 아닌 '원가 항목 단위'로 데이터를 집계해 '베이스라인'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티제이는 제임스로부터 받은 프로젝트 원가 자료를 리암에게 넘겼다.
리암은 자료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분석 자체는 어렵지 않아 보이는데요…그런데 지금 경영회의 자료만 봐도 간접비 절감 목표가 나오잖아요. 그럼 그걸 바로 실행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티제이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리암, 개선하려면 기준이 필요해. 그 기준이 바로 ‘베이스라인’이야. 예산에 대한 분석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야.”
리암은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현재의 금리 자체보다도, 전 분기 대비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따른 효과 분석이 의미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요?”
“맞아, 예산을 분석하다 보면, 뭔가 손쉽게 개선할 수 있거나 근본적인 문제가 숨어 있는 지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거야. 최소한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티제이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더 중요한 건, 만약 이렇게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마음이 급해서 목표를 잃고 헛된 시도만 반복하다가 성과는 없고, 오히려 피해만 커진 뒤 에야 문제 해결에 나서는 ‘조급한 문제 해결의 역설’ 상황을 맞이하게 되지.”
리암이 되물었다.
“조급한 문제 해결의 역설?”
“서둘러서 눈앞에 드러난 원인을 서둘러서 해결하다 보면,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늦어지고, 결국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일어난 다음 에서야 진짜 문제의 원인을 깨닫는 거야.”
티제이는 잠시 과거를 떠올리며 진심을 담아 설명했다.
“내가 설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차체 크랙 문제가 있었어. 품질 임원이 방방 뜨고, 연구소장도 난리가 났었지. 난 당시에 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서 인정 받으려는 욕심이 컸지.”
“그저 내 짧은 직감으로, ‘생산 불량일 거다’라거나, ‘특수한 조건에서만 생기는 문제일 거다’ 하는 식으로 지레 원인을 짐작하고 임기응변으로 대응했지.”
그는 잠시 리암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크랙은 계속 발생했고 문제가 심각해지자, 설계 데이터부터 생산 공정, 테스트 절차, 현지 운행 조건까지 현상과 원인을 하나씩 확인하니까, 그제야 하나씩 해결이 되기 시작했어. 하지만 이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차량은 세 달 이상 그대로 생산되었고, 회사는 막대한 품질 비용을 감당해야 했어. 물론 회사는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도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이 들어갔고.”
티제이는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힘을 담았다.
“이 경험에서 내가 배운 건 단순해. 현재의 현상과 원인을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은 반드시 지연된다는 거야. 현상, 즉 베이스라인이 없으면 목표도 불분명해지고, 해법도 헛돌게 되고, 결국은 ‘조급한 문제 해결의 역설’로 이어질 뿐이지. 겉으로는 빠른 해결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문제를 더 늦게 풀게 만든 거야.”
리암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예산과 원가 구조를 일단 정리해야 하는 거군요. 그게 단순한 수치 정리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는 거네요.”
“맞아.” 티제이가 단호히 답했다.
“천천히 가는 것 같아도, 제대로 된 출발선에 서야 오히려 가장 빠른 길이 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