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고 3학년. 우리나라 나이로 10살.
또래보다 작은 체구로 자신의 키와 비슷한 악기 통을 들고 어린 나이에 혼자 편도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레슨을 다니던 한 꼬마.
한국 정통 국악기 ‘해금’의 연주를 우연히 듣게 되며 어린 나이에 어떤 감성을 가졌는지 격하게 슬피 우는 사람의 소리와 같은, 한(恨)이 서린 악기 소리에 매료되어 ‘해금 연주가’를 꿈꾸게 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1990년대.
한국음악의 음계와 다른 음악은 귀에 담고도 싶지 않은 고집에 가요가 나오는 자리는 피하며 여느 아이와 다른 고집스러운 사춘기를 보냈다.
잠시, 잠깐 하나보다 지켜보시던 부모님은 예술 고등학교 진학을 반대하셨고, 사흘 단식으로 부모님의 승낙을 받아내며 소녀는 자신을 꿈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IMF.
전기제품 생산 공장을 운영하시던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라고 한다.
뉴스에서 쏟아지는 말들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앞으로 집의 가계 형편이 어렵겠구나. 정도로 짐작했지만 생각보다 힘든 상황이 많았다.
어쩌면 상황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으로 연습시간을 8시간 이상으로 늘렸다.
거의 4시간 잠자고 학교와 레슨 시간 빼고는 악기 연습이 일과였다.
해금연주의 정 자세는 바닥에 앉아 양반다리를 하고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으로 올린 후 그 위에 악기를 올리고, 오른쪽 발바닥으로 해금을 고정시키고 연주한다. 이 자세로 장시간 연습한다는 건 쉽지 않았지만 소녀에게는 연주는 놀이와 같았다.
음반 회사인 ‘SONY’에서 유망 연주자 지원 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
학교에서는 서울대학교 진학의 기대를 가지고 계셨다.
1년에 100만 원씩 3년 , 그리고 교내 성적 장학금까지...
어려워진 가계 살림이었으나 나 스스로의 학비 정도는 충당이 되었다.
그러나 혹시 내 꿈을 포기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할 수 있는 것은 더욱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오른쪽 무릎의 ‘퇴행성관절염’
20살 소녀의 진단명이 적혔다.
장시간 한 자세로 연습하며 지내다 보니 고질병처럼 가끔 통증이 있었으나 병원을 다닌다거나 치료를 하며 앓을 여유가 없었다.
너무 어린 나이라 수술은 무리이고, 앞으로 ‘줄기세포’ 의술의 발달을 기다려 보자고 하신다.
그때로 기억한다.
지옥.
‘연주자’란 모든 감정을 소리로 표현해야 한다. 생각, 마음, 감정을 담아한다.
10년의 시간 동안 모든 감정을 해금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했다.
소녀의 모든 시간 속에 웃어주고 , 울어주었다.
때로는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은 소리가 되어 연주가 되었고, 음악이 되었다.
이제 해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소녀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잊었고. 슬픈데 그 슬픔을 감당하는 법을 몰랐다.
신비로움, 아름다움 등 복잡 미묘한 감정의 표현을 표출할 방법이 없었다.
지옥이었다.
이제 소녀는 말을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감정의 표현을 하나씩 배워 나가야 했다.
기쁠 때는 가볍게 스치는 활대의 스킬이 아닌 환하게 웃는 법을, 슬플 때는 농현(현을 밀고 당기는 울림)이 아닌 입으로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고,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것을 연습해야 했다.
그렇게 20여 년...
해금을 ‘첫사랑’이라 마음에 깊숙이 넣어 놓은 소녀는 이제 중년이 되었다.
그리고 ‘창작의 욕망...’이라는 문장 앞에 영화 같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그 시간을 글로 적는다.
글을 쓰며 아픔을 가슴으로 앓고, 눈물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