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과 책가방

by May Lim

'애들아, 일어나! 얼른 나가야 해!’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우리를 깨운다.
한 참 단잠에 빠져 있을 새벽녘.
부스스 눈을 비비며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부모님을 멍하니 바라본다.
창 밖에는 크리스마스트리 전등처럼 반짝이는 밝은 빛이 집 안을 비춘다.
“어서 밖으로 나가! 어서!”
화급하고 단호한 아빠의 목소리에 우리 세 자매는 잠옷 차림으로 황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현관 밖에는 환한 빛 사이로 동네 사람들이 보였다,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
뜨거운 기운.
불이 났다.
집과 집이 다닥다닥 붙여 있는 서울의 주택가.
옆 집에서 시작된 불이 춤을 추듯이 바람을 타고 우리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임 사장님! '진선 엄마!'
아직 부모님이 집 안에 계신다.
동네 사람들과 우리는 아빠와 엄마를 목청껏 불렸다.
다리가 부들부들 너무 떨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평소 새침한 언니는 혼자 우두커니 서있다.

나는 겁을 잔뜩 먹은 여동생을 안고 울부짖고 있다.

우리 아빠, 엄마가 집에 있어요!

살려주세요!
소방차가 동네 진입이 어려워 소방대원들은 더욱 분주하다.
시간은 지체되고 불기둥은 우리 집 현관 앞까지 달했다.
소리 지르며 동동 구르던 다리 사이가 뜨거워진다. 소변이 나도 모르게 흘렀다.
소방 호스가 연결되고 집 현관으로 물이 뿜어졌다.
그 사이 움직임이 보인다.

아빠와 엄마가 보인다.
호스로 뿜어지는 물줄기 사이로 무엇인가 품에 가득 안고 뛰쳐나오신다.
동네 사람들이 환호를 한다.
소방대원들이 달려가 붙잡고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눈으로 우리를 바쁘게 찾고 계셨다.
엄마...”

이내 우리를 발견하시고 두 분이 달려오신다.

품에 안고 있던 것들이 길에 쏟아졌다.

딸 셋의 가방과 교복.

“이 딴 거 가지고 나오려고 안 나왔던 거야?
까칠 한 언니가 주저앉은 아빠와 엄마를 향해 씩씩 거리며 소리쳤다.
귀중품을 챙기느라 늦은 줄 알았는데 내일 학교 갈 교복이라니...
본격적인 진화 작업이 이뤄졌고 삽시간 불길이 잡혔다.
천만다행으로 우리 집은 외형만 그을린 정도였다.
오늘은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해서 동네 분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고집스럽고 퉁명스러운 언니는 집에 가서 자겠다고 고집을 피우다 경찰 아저씨한테 혼이 나고서야 말없이 따라온다.
울보 막내는 껌딱지 마냥 엄마에게 달라붙어 계속 울기만 한다.

전기 제품 제조 회사를 운영하던 아빠는 둘째 아들이었다.
형의 공부 뒷바라지로 본인의 공부를 포기하셨다고 한다.
아들을 못 낳았다고 시집살이가 심했던 엄마는 우리 딸 셋이 남자 사촌들보다 공부 잘하는 게 큰 자랑이셨다.
앞서 걸어가는 두 분의 뒷모습이 보인다.
물에 젖은 아빠와 엄마의 손에는 여전히 우리의 가방과 교복이 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