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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을 좋아한다.

MIDNIGHT EXPRESS 2024-2025

by bobae

자우림을 좋아한다.

2021년에 자우림 11집이 나왔다.. 우리가 만난 지 24년, 자우림 24살이었다.

자우림 11집, 영원한 사랑은 총 12곡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세 번째 트랙이다. 음반이 열리자마자, 우리는 모두 사라진다고 ('We all fade away, all fade away') 마치 '빗물 속의 눈물처럼' 사라진다고 말하고 나서는 (1. Fade Away ) 그러니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말해달라더니 바로 '영원한 사랑 따위' (2. 영원한 사랑)라고 외치며 위악을 떨다가 세 번째 트랙에서야 냅다 외친다.

'내일은 너무' 머니까, '지금 바로 여기 있어' 달라고, 전주도 없이 냅다 외친다.

그러고는 부끄러운 듯이 구구절절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지만, 사실 이유는 없다. '그렇잖아 약속은 그저 약속일뿐이야'라고 하면, 그렇지 그렇지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지만 그건 그냥 발끝으로 바닥을 휘휘 젓는 제스처일 뿐이지 지금 하는 말은, 바로 냅다 여기, 바로 내 옆에 있어달라는 거다. 날카롭게 찌르는 Right now에서 나는 허벅지를 세게 치며 '내 말이!!'를 소리 내 외친다. 사실 그 모든 마음은 항상 지금 당장 여기를 바라고만 마니까.

내 출근길의 마지막은 상습 정체구간인 잠실사거리인데, 어떤 날은 잠실대교에서부터 차들이 꼬리를 물고 서있다. 출근길의 주문(읽은 지 오래되어도, 이상하게 출근할 때마다 이 책을 종종 떠올린다. 어떤 책은 마음의 거대한 부적처럼 붙어있기도 한다. 나는 지지 않고 천천히 뚜벅뚜벅 출근해야지 하며), KBS클래식 FM으로 일상에서 사무실로 들썩거리던 마음을 차곡히 접어 넣어 들어서던 나는 다시 슬금 발을 빼고, '지금 바로 여기 있어줘'로 핸들을 틀 수밖에 없다. 노래는 수미상관으로 지금 당장 옆에 있어 달라고 외쳐서 나는 이 노래를 한 번만 들은 건지, 지금이 세 번째 인지는 잘 모르고 차 안 가득 채워 Right now를 외친다.

네 번째 트랙에서는 이제는 세상에 없는(2023년 고양이별로 가셨다.) 윤아님의 오랜 반려묘 '빼옹이'가 부르는 용맹한 음악이 비장하게 흐른다. (4.peon peon) 나는 까닭 없이 어깨를 반듯하게 펴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세계의 지배자'니까 생각하고 만다.


영원한 사랑에 좋은 점은, 아니 자우림의 좋은 점은 항상 변함없이 여전히 지속적으로 아름답다.

열두 곡까지 가는 길은 이런 식으로 앞곡이 뒷곡을 불러내고, 뒷곡이 앞곡의 뒤통수를 냅다 치고, 다시 그다음곡에서 다시 끌어안고 부등부등하고 만다. 6.SAND BEACH에서 '모래사장에서 반짝이는 돌을 찾으며 우린 하루종일 햇빛에 그을리며 온 하루 다' 가느라 '해일이 오는 것도 모'른다는 걸 생각하면 문득, '아 가서 꼭 일해야 하나' 같은 세상 무상함에 대해 천천히 되짚어 본다. 하지만 결국 돌이켜 보면, 인생이란 그토록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너를 만나 다행'이었고, 우리가 나눈 것은 결국 '잎새에 적은 노래들'처럼 사소하고 아름다운 것들 뿐이지 않을까 하고 (7. 잎새에 적은 노래), 새삼 날아가 버리려는 작은 하루하루를 잡아다 손바닥 위에 차례로 차곡차곡 쌓아보고 만져본다.

사실 10. 디어마이올드프렌드까지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항상 생각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나 같은 상태인 걸까?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폭포처럼 터져 나오는데, 언젠가 잘 써야지 하고 매일 한 박스씩 미어터지게 포장해서 천장까지 쌓아놓는 상태인 걸까..?) 세 번째 트랙까지가 너무 생생한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 이번 콘서트에 시작을 알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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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025년 열차의 시작은 무려 냅다 내일은 너무 머니까, 오늘 바로 여기 있어 달라고 해서 나는 오픈부터 냅다 울기 시작했다.

자우림은 이제 스물일곱 살이다.

1997년에 나는 바야흐로 드디어, 마침내 청소년이 되었다. 아파트 상가 1층에 세련된 음반가게를 손가락 빨며 지나가던 나는, 아마도 여자의 그것일, 하얀 가슴골에 자우림이 새겨진 작은 테이프를 당당히 구매하며 청소년이 되고 말았다. 집에 있는 소형오디오는 지극히 기능적이고 목적형인, EBS 교육방송 듣기용 기계였는데 음악감상용 거대한 스피커로 갑자기 변신할 수 없으니, 나를 변신시켜 온전하게 음악을 감상해 냈었다. 몸을 납작하게 엎드린 뒤 이마를 테이프 입구에 마주대면 양귀 가득한 거대한 음악 스피커로 변신했다. 당시에 이어폰 같은 고급 기계는 집에 없었기 때문에, 하교하고 와서 포대자루 같은 교복을 벗어던지고 구도자 적인 자세를 취하면 나의 심연의 길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역시 나는 그럴싸한 험한 말도 욕설도 담지 못한다. 그럼 그대들이 대신 고급스럽게 윽박질러 주고 (4. 욕) 나는 그러니까라고 외치기만 했던 날들이었다.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려면, 전화기를 쓸 수 없던 때라 마음속으로 상상만 하는 영화 접속은 아름다운 호러물이 되기도 했다. (8. 이틀 전에 죽은 그녀와의 채팅은) 이제 막 기능을 찾아가는 위성도시에 어느 작은 아파트 바닥에 내가 있었다.

XL

자우림을 좋아한다.

그때의 내가 자우림을 좋아하고, 지금의 나도 자우림을 좋아한다. 여전히 나는 그들이 불러주는 아픔에 진동하고, 아름다움에 공명한다.

테이프가 다 늘어나서 제대로 된 음악이 나오지 않는데도, 그들을 듣고 싶어 냉장고에 넣었다가 다시 들었던 나는 이제 티켓을 딸각, 혹은 척! 하고 사서 공연에 간다. 공간 가득히 노래하는 그들을 만나고 보고 들을 수 있다. 기적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지금도 여전히 나와 같이 이 시대를 살아내고 같은 진폭으로 아파하고, 내가 묻지 못한 질문을 세상에 묻고, 내가 미쳐 쏟아내지 못한 마음을 쏟아내 주며 여전히 노래하고 있다는 것. 나는 시간의 귀퉁이를 접어서 청소년인 나와 엎드려 이마를 맞댄다. 그때의 고민들과 그때 되고 싶었던 내가, 아이를 낳고 허리디스크를 견디고 있는 내 위로 쏟아져 내린다. 공연 내내 나는 사랑한다고 외치고 눈물을 흘렸다.

그네들은 앞으로도 같이 울어주고, 같이 아파해주겠다고 해서 나는 또 혼자 주먹을 입에 쑤셔 넣으며 끄억거렸다.


자우림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그러하듯이 나는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좋아했고 좋아하고 있다. 알고 있었다면 나는 더 억척스럽게 공연을 찾아다니며 좋아했을까? 혹여나 그대들이 세상에 없어질까봐 촛불에 정화수라도 올렸을까? 모든 것이 새삼스럽게 지나치게 큰 행운같다. 어떤 사고도 없이, 혹은 어떤 좌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서 내 곁에서 노래해 준다니! 내가 내 마음의 크기를 알아차릴 때까지 공연을 해주고 있었다니!


좋아한다는 말을 아낀 적은 없지만, 좋아한다는 말을 더 잘 들여다보기로 한다. 좋아하는 것들이 내 옆에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 옆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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