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털린 커리코, 돌파의 시간
정체성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국적이나 성별처럼 선택할 수 없으며 동시에 어떤 경우에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또는 그렇기 때문에 굳이 설명을 필요로 하는 ) 것들이 있는가 하며, 학교나 회사처럼 성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중 어떤 것도 그 사람을 명확히 말해주는 경우가 없다. 성별이 그 사람을 말한다고 생각한 덕분에 성차별이 만연한 전통이 자리 잡은 사회에 살고 있으며, 학위를 믿으며 숭배하는 덕분에 학벌주의가 팽배한 사회를 버티며 산다.
그 부분이 사람을 알아가는 데 큰 재미가 되곤 한다. 스테레오 타입의 기자, 회사원, 엄마, 아저씨를 생각하지만 사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불량배, 인플루언서, 장군과 소녀가 앉아 있는지. 나는 마주 앉은 사람의 눈을 볼 때 그 부분이 너무 신이 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의식하지 못했지만 학습된 필터를 찬 내가 제일 먼저 나서고 만다. 나서서 돋보기 좀 세게 들이밀라 치면, 팔을 걷어붙인 내가 나서서 그 필터를 걷어내느라 분주하다. 그런 걸 보지 마, 다른 걸 봐바! 아니야 그래도 성차별과 학벌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대우를 받으며 살면 다들 학습이 되게 되어있어 그게 있을 거야! 아니라니까 자자 그거 필터 치워봐 너를 생각해 봐 네가 그렇다고 그러니?
그렇게 요란을 떨고 앉은 나를 볼 때마다 그 모든 자잘한 재미 뒤에, 문득문득 나를 생각한다. (후일담은 저런 모든 재미는 사실 정말 재미로 끝나고 만다. 비포선라이즈에서 셀린이 말했듯이 신이란 나에게 혹은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에 있는 것 같아서, 그 모든 판단은 무색해지고 우리가 만든 관계만이 남게 되니까.)
You know, I believe if there's any kind of God it wouldn't be in any of us, not you or me but just this little space in between. If there's any kind of magic in this world it must be in the attempt of understanding someone sharing something. I know, it's almost impossible to succeed but who cares really? The answer must be in the attempt.
나에게서 저런 것들을 드러내고 나면, 나는 무엇이 남을까.
4시가 되기 전에 눈을 뜨는 날들이 있다. 5시쯤 눈을 뜨는 날들도 있고. 그 어떤 날에도 나는 읽던 책을 편다. 시간에 따라, 공간에 따라 읽는 책이 다른 편이라 항상 동시에 3,4권 정도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다. 그중 어떤 책은 평생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책은 그날 끝나기도 한다. 십여 년 전에 사무실에 출근하기 전에 항상 카페를 가던 때가 있었다. 도망갈 길 없이 열 시간은 잡혀있을 것이 빤한 날일수록 나는 산책과 운동을 하고, 영어학원을 갔다가 카페에서 책을 읽고 출근하는 요란한 일상에서 다 지우고 책만 남기고는 했다. 지금은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원이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돌아오면 밥을 멕이고 씻겨 재우는 날들이라 어느 시간대에도 카페는 넣을 수가 없지만, 책을 넣을 수 있다. 재울 때도 책을 읽어준다. 어린이가 잠들고 나면 코 고는 거실의 아이아빠와 침대옆 아이의 서라운드 시스템을 벗 삼아 읽다가 만 다른 책을 든다. 유난히 일이 많아 자정까지 근무하던 지난 연말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집을 들었다. 짧은 호흡으로도 읽고 숨 쉴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아주 오랜만에 시집에 발이 묶이기도 했다. 일상에서 회사원이기 때문에, 엄마이기 때문에 하는 일들을 덜어내고 나에게 가장 큰 파이로 끊임없이 읽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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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45분, 커털린 커리코, 『돌파의 시간』(조은영 옮김, 까치 2024)의 마지막 장을 닫았다. 388페이지로 이루어진 비교적 작은 판형의 두툼한 책인데, 마지막장의 역자후기까지 어느 한 장 허투루 쓰지 않았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현대적인 역사성이 도드라지다 보니 사진의 대한 욕심을 안 낼 수 없었던 것이 너무 이해되고, 책 한중간에 페이지도 없이 (그러니까 192쪽 4장의 컬러쪽수에 커리코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사진이 앨범처럼 들어가 있다. 근데, 4장의 시간여행을 꼼꼼히 하고 만나는 쪽수는 193쪽이니까 우리는 388페이지짜리 책을 본 게 아니라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본 거다) 컬러판형을 보며, 책의 구성과 모양새가 작가의 인생의 무엇과 혹은 작가 자체와 너무도 꼭 닮았다는 것이 지나치게 귀엽다.
심지어 보통 책이 목차에 2페이지는 내어주는 여유가 있는 한 편 이 책은 필요한 정보를 딱 필요한 페이지만큼 쓰느라, 목차도 딱 1페이지를 꽉 차게 사용한다.
『돌파의 시간』은 말을 보탤 여지없이 아름답다. 생화학자가 쓴 회고록이라니, 심지어 일흔의 나이에도 현재진행형의 삶을 사는 여성 생화학자의 삶 전체라니. 나는 가지고 있는 인덱스테이핑을 2개나 동나게 하고 말았다. 보통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름다운 문장, 기억하고 싶은 문장, 그냥 좋은 문장을 필사하는데 (구분이 무의미하군..) 이 책은 그것 말고도 코로나 백신의 핵심이 되는 mRNA를 연구한 역사도 같이 있어 공부하고 싶은 부분까지 지나 차게 빼곡하게 사용되고 말았다. 다시 톺아볼 생각에 두툼해진 책 옆구리를 보고 있으니 속이 든든하다.
사실, 아직 필사하지 못한 다 읽은 책들이 두어 권 옆에 더 쌓여있다. 아껴읽는다고 아껴 읽었지만 결국 금세 다 읽어버리고 만 김소영 작가님의 『어떤 어른』, 오래전에 사놓고 잊고 있었는데 지난 연말 긴 야근과 무한한 업무의 루프 속에서 나를 구해내고 만 전도연 닮은 김영민 교수님의 책『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조너선 하이트의『불안세대』까지.
다시 저 세계들의 마무리 매듭을 지어놔야 이 귀여운 책으로 돌아올 수 있는데 싶어서 뒤적이다가, 그 어느 하나도 흘려보내거나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신나서 주위를 돌아본다. 읽으려고 뒀던 책이 뭐였더라, 그다음에 읽으려고 리스트 해두었던 책을 내가 잊은 건 아니겠지! (이야기 꺼낸 김에 잊지 않고 40페이지 까지 읽은 장일호 작가님의 『슬픔의 방문』에 좋아하는 책갈피를 끼워두었다. 휴 놓치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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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고는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일이 좀체 없는데, (어린이 친구가 자신의 친구를 초대하는데 집중되다 보니..) 재작년 한 번 놀러 온 가까운 친구가 오래된 교수님의 엉망진창 연구실 같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 워딩은 모두 정확하지 않으나 그 뉘앙스는 적확할 것 같다.
나에게서 책을 드러내고 난다면 나는 무엇으로 남게 될까. 그동안 필사해 온 독서노트로 남게 되려나. 그렇다면 그것들은 다 무엇을 향해서 나침반을 돌리고 있는 걸까.
어쩌면 이런 난데없는 통찰의 순간이 당신에게는 영영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깨달은 바를 함께 나누고 전하려는 것이다. 멈추지 말아라.
앞으로 당신이 미래에 하게 될 기여는 아직 가설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인 것처럼 대하라. 그런 태도는 설령 그 결과를 직접 보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되더라도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일단은"한 가지 더"부터 실천하라. 그다음에는 또 다른 한 가지 더 한 가지 더를 계속하라.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이것이다. 모든 씨앗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 이 생명은 다시 자기의 새로운 씨앗을 만들고, 그 씨앗이 자라 계속해서 많은 것을 낳는다는 것. 계속해서. 당신 안에 있는 것을 신뢰하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당신이 찾는 것을 키우고 보살펴라. 누구 하나 돌볼 생각이 없어 보이더라도 그곳에서 찾은 것을 돌보아라.
내가 말하려는 것은 간단하다. 계속하라는 것. 계속 성장하고, 계속 빛을 향해 나아가라.
p378 커털린 커리코 『돌파의 시간』까치 2024
커털린 커리코의 책을 읽고 나면 이 무형의 문장들이 얼마나 많은 세월을 단단히 받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이런 말을 허투루 하지 않는 과학자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이 문장들이 가진 힘이 너무 크다.
그녀의 삶과 문장의 깊게 기대고 싶다. 내가 무엇인가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무조건적인 이 탐독이. 어떤 날은 방향과 맥이 보이는 것 같아서 손을 뻗어 정갈하게 잡아내보려다 놓쳤던 수많은 어떤 길이.
우선 읽는 사람은 계속 읽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