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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를 좋아한다.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 특별전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2

by bobae

작년은 3월이 가장 마음이 힘들었다. 나에게 일어난 문제는 결국 내가 겪어 나가면 된다. 가깝고 먼 친구들에게 일어난 문제는 내가 겪어내지 못하지만 손을 잡아주거나 안아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아이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들은, 그것이 종국에 겪어 나갈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힘들어하는 것 밖에 도리가 없다. 그 며칠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는 아이를 어르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무의미했다. 저녁 9시에 잠들면 다음날 아침 8시까지 꼼작도 안 하고 푹 자는 아이가 몇 번이나 벌떡 일어나 한숨 쉬는 걸 듣는 일이라니. 내가 어르고 재워도 이 아이의 마음의 무거운 돌을 드러내 줄 수 없다, 아니 거기 어디 근처로 손도 넣어볼 수 없다. 그날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손톱만 한 글자가 B5용지 양쪽이 꽉 차도록 편지를 썼다. 결국 선생님에게 보내지 못할 것을 내가 알면서도, 그래서 내 일기장에 쓰면서도 진심으로 꽉꽉 채워서 썼다. 일주일을 앓던 아이는 자신의 방법으로 시간을 지나갔고, 요즘은 누우면 어른만큼 코를 골며 잔다. (그 소리가 너무 달다. 깊이자는 소리려니 싶어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듣고 있을 때도 있다.)

작년 3월, 그때 나는 집 근처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있어 숨을 쉬었다. 짬이 나면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야지. 3층 왼쪽에 있는 청자를 보러 가야지. 이번주 토요일에는 가야지, 아니 다음 주 월요일에는 가야지. 주문처럼 마음으로 외면 그슬러 져 날아다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그리고 정말 가게 되면 헤매지 않고 바로 3층으로 오른다. 백자관과 청자관이 등을 대고 붙어 있지만, 백자를 보는 일은 없다. 나는 청자를 본다.

진짜 토끼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지나치게 귀엽다!!!!!! 국보 청자 투각 칠보 무늬 향로, 고려 12세기
떠받치고 있는 앙증맞은 토끼 세 마리는 향로의 조형미를 배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상형물이지만 토끼의 눈에 검은 철화 점을 찍어 영특한 눈매를 만들어 주었으며, 그로 인해 청자 토끼는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강경남, 청자 사자 장식 향로와 청자 투각 칠보 무늬 향로> 중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recommend/view?relicRecommendId=16860
사진1 앞에서 보면 더 영특함, 사진2 2023년의 사진. 다 필요없고 청자들이 자기 자리에 가만 앉았는 모습은 너무 아름답다.. 그냥 갑자기 인생이 살아볼 만 해진다!!!

나의 최애는 저 작은 토끼인데, 무엇보다 떠받치고 있는 향로의 완벽함과 대비되는 하찮음이 마음을 한껏 끌어안는다. 이 향로의 칠보무늬는 여러모로 완전하게 아름다운데,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그 완결성이다. 균형감 있는 타원형 모양새에 안정감 있게 그려진 칠보무늬는 만듦새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린다. 저 타원은 그냥 저 타원이라고, 누군가의 손가락으로 둥글둥글 굴려서 서로 이어 붙였다고도 보기 어렵고, 그렇다고 구멍을 뚫은 흙판을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타원으로 만든다고 할 수 있을지.(그니까 투각이니까 면을 도려내거나 깎았다는 건데.. 저 아름다운 구형은요? 응?) 그냥 처음부터 저대로 존재하는 타원으로 여겨진다. 때로는 ‘정점’이라는 표현은 이처럼 과하지 않고 적확하게 쓰인다. 원형 아래로 켜켜이 붙은 연꽃의 잎은 오래 쳐다볼 밖에 방법이 없다. 한 장 한 장 연잎의 마지막이 휘어진 부분이 조금씩 다른데, 세월에 쓸려 모서리가 나간 꽃잎도 있고, 아주 조금만 벌어진 꽃잎, 그것보다는 조금 더 혹은 조금 덜이 조화롭다. 자연은 그 자체로 다채롭고 완전한데, 절대 어떤 이파리도 서로 같은 모양이지 않아서다. 조금도 같지 않지만 완전한 자연을 모방하는 일은 언제나 인간의 도전이었을 텐데, 이 연화는 그 도전에 빠져있을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상상이지만, 아마도 그이는 얼굴이 말간 사람이었을 거다. 이만큼의 완벽을 기하기에는 언제나 호기심에 차서 주변을 살펴봤을 테고, 예민하게 일어나는 눈과 정신은 뭐든 잘 먹지 못하게 했을 테고 아마 물만 마시면서 천천히 손을 놀리지 않았을까? 오직 청자만 만지는 이렸으려나. 아니지, 어쩌면 타고난 천재라 세상오만가지에 푹 빠져서 뛰어놀다가 문득 저렇게 정갈한 아름다움을 툭 놓고 옆에 사람들을 다 한탄하게 만들었으려나? 아니아니 여럿이 매일 토론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성실하게 뭉쳐서 만들었을까?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연꽃은 종교적인 색채를 지워도 신성하게 여겨지는 색을 지울 수 없다. 완전한 타원과 연꽃을 지나면 마음은 이미 숙연해지려고 하는데, 그 아래 갑자기 양발을 가지런히 하고 총명하게 눈을 뜬 아기 토끼가 있는 거다! 귀가 짧은 것으로 보아, 아직 다 크지 않았을 아기 토끼가!! 늠름하게 몸통의 반은 거대한 연화에게 내어주고, '영특'하게 눈을 반짝이고 있다. 발도 너무 짧아 아무리 오래 보아도 이 아이는 아기토끼인 것 같다. 네가 먹을 풀은 어디서 구하는지는 알고 있니? 그게 뭔지는 알고 그 아래에서 그렇게 늠름하게 지키고 있는 거니?


완전함 아래에 이 작고 하찮은 아기토끼를 보고 있으면 광대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오래도록 은은하게 웃으며 높이 15cm의 이 작은 향로를 앉아서도 보고, 내려도 보고 한 바퀴 둘러도 본다. 문제는, 내가 이렇게 알뜰살뜰 즐기는 청자가 이 한 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청자관의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발을 붙잡는 통에 나는 몇 번을 가도, 몇 번 다 내가 쓸 수 있는 내 시간은 모두 다 내어주고 온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한 사람이 되어 요란한 사랑을 마음속으로 쏟아붓다가 괜찮아져서 돌아온다.

포스터에 있는 아이는 청자 원앙모양 향로뚜껑인데, 진짜 얘도 너무 작다. 여기서 엄청 웅장한 척해서 더 귀엽다.

그런데 고려 상형청자 특별전이라니! 이미 그들은 그들 자체로 특별한데, 특별전까지 해준다니. 내가 안 갈 수 없다. 포스터가 붙은 그날부터 다시 또 마음으로 중얼중얼 외었다. 이번 주말에 가야지. 아니 다음 월요일에 가야지. 아니 휴가를 내고 가야지. 아니 3월에는 세 번 가야지. ‘특별전’ 전시관은 1층 중앙에 광개토왕비를 두고 왼편에 있는데, 곧장 들어가야지. 그리고 마침내 이제야, 1월 중순에 발을 들이밀었는데 이제야 갔다. 시간은 한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어도, 다음번에 세 번 갈 거니까.


고려청자 특유의 비색은 우아한 형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전시 프롤로그 중)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기 전, 작은 공간에서 이 전시를 준비한 사람들이 전시에 어떤 부분을 신경 썼는지 말해주는 영상이 있다. 커다란 화면 덕분에 화면 속의 사람은 나와 비등하거나 혹은 조금 더 크다. 알지 못하는 평범한 얼굴들이 자신의 최애(이 표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청자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나는 전시를 보기 전부터 신나 버렸다. 당연히 나의 최애인 청자 투각 칠보 무늬 향로도 나왔고, 포스터에 제법 멋지게 등장한 청자 원앙모양 향로뚜껑도 나왔다. 다들 점잖았다. 어떤 부분이 이 청자의 매력인지 이야기하는데, 나는 연신 손바닥을 (실제로 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쳐다볼 테니..) 요란스럽게 마주치며, 그치그치 저게 매력이지. 내 말이 특히 그 부분이 나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이 전시는 그러니까, 나에 이 좋아요 너스레를 같이 해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이미 충분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예를 들면, 청자의 자연적인 색감을 보여주는 연출을 위해 자연의 노을 같은 것을 연상시킬 수 있는 구성이라는 설명도 너무 좋았다.

청자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하늘빛을 가지고 왔다고도 혹은 물빛을 가지고 왔다고도 어느 벽에선가, 어느 도록에선가 읽은 듯한데 자연 그 자체에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이 전시에 아름다운 점은 그 부분을 요란하지 않게 반영하는 것이다. 반원구의 아름다운 해넘이 또는 해돋이 사이로 상상의 동물 어룡이 두둥실 떠있다. 어룡을 중심으로 두고 푹신한 바닥을 천천히 한 바퀴 걸으면, 해넘이에서 들리는 조용한 개구리울음소리가 다가온다.

전시는 일종의 환기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상을 잠시 벗게 놔줘야 한다. 어깨에 걸친 무거운 코트를 잠시 벗어둘 수 있어야 하고, 머리의 무거운 짐도 잠시 저 뭍에 벗어 넣고 발을 담그게 해야 한다. 이 전시는 입구에서는 그 매뉴얼을 친절히 안내하고, 처음 만날 때 적극적으로 환기를 돕는다. 이 커다란 반원구가 놓인 위치는 환기를 돕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청자의 가장 큰 특징, 그 색감을 오래도록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아무리 청자가 놓여있는 상설전시실을 백날 가야 이런 호사는 누릴 수가 없다. 다양한 색을 받아 다채롭게 빛나는 청자라니!! 특별하다!!!!!!!!!!!



진짜 귀여운 게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닫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만큼이나, 청자 너스레를 떨어두고도, 나에게는 아직도 너스레를 떨 청자들이 한아름이라니.( 세 번 더 갈 특별전이 더 기대된다.)

전시는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전시는 고려의 상형청자를 가지고 진행된다. 때문에 1부에서는 동물, 식물등의 형상이 담긴 "1부 그릇에 형상을 더하다"라는 주제로 작품들이 전시된다. 고려뿐만 아니라, 상형이 이루어지는 주요 시대를 가지고 오는데 역시 너무 귀엽다.

가야 5세기 귀여움과 완전함 어떻게 안보죠...?
그래도 고려청자를 못 이기는 건,.. 역시 내 마음에서도 그렇습니다.
2부 제작에서 향유까지

2부는 고려청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전체를 조망한다. 지역을 나누어서 그곳에서의 과정에 속한 고려청자들을 가지고 온다. 예술의 가장 큰 재미는 결국 상상 아닐까? 아주 작은 실마리를 쥐어주면 우리는 그 꼬리를 붙잡고, 거대한 코끼리도 그리고 작은 생쥐도 그린다. 누가 그 실마리를 쥐고 있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게 예술이라서, 우리는 아니 나는 어디도 가지 못하고 내내 그 앞을 서성이게 되는 것 같다.

지도를 바탕으로 설명이 진행된다. 이건 또 다른 역할을 하는데, 나에게 결단코 떠나야 할 이유를 마련해 준다. 대규모 유물이 발굴되는 경우, 유물은 그 지역에 터를 잡고 박물관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지도와 설명은 내가 갈 수 있는 지역의 땅을 상상하게 해 준다.

웃지마 바보야... 너는 결국 완성품이 아니었어..ㅜ
3부 생명력 넘치는 형상들

3부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본 것 같다. 크게 상형 고려청자 안에 그려진 형상들은 실제 존재하는 동물들, 그리고 앞서 이야기 한 어룡과 같은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들, 꽃과 풀인 식물. 3가지로 나뉜다. 세 가지 종류가 다양하게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최근의 자사호를 들이고 싶은 욕심이 넘쳐나서 그런지 다기구들은 정말 지나치게 매혹적이고 현실적이었다. 대표적인 참외모양으로 두루뭉술 몸집을 만들고 줄기의 형태를 따른 손잡이 같은 것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저 부분을 어떻게 잡고 차를 내리지 하며 천천히 머릿속으로 직접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쓰는 다기구 보다 전체적으로 큼직해서, 번거롭게 여러 번 움직일 필요 없이 차를 즐길 수 있겠지 싶었다. 무엇보다 크기가 주는 투박함이 더 눈에 들어왔다. 정교한 꽃들과 어우러지는 다층적인 매력이라니!

이런 현실적인 상상 덕분인지, 한쪽 벽에서 주요 작품들을 모티프로 실제로 문방사우들을 쓰고 있는 그때의 풍경을 그래픽 화 한 것이 인상 깊었다. 지금까지 봐 왔던 청자의 아름다움이 '전시된' 아름다움이었다면, 상상으로 그려보는 실제 쓰여지는 청자들은 '실질적인'아름다움이었다. 이런 시도들이 때로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을 구현해서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다른 접근법과 작품의 이해를 가지고 오는 덕분에 나는 생김의 유치함과는 별개로 항상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이번 것은 당연히 이전에도 그랬지만 유치함 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정말 집에 들이고 싶었다... 나의 차생활에..
상상의 동물 기린, 역시 귀엽다
기린(麒麟)은 상서로운 길조가 보일 때 나타난다는 신령스러운 네 가지 동물 중 하나로, 특히 성인이나 성군이 태어날 때 미리 그 조짐을 알리기 위해 나타난다고 전해진다. 기린은 이마에 뿔이 하나 돋아 있고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 말과 같은 발굽과 갈기를 지니고 있으며, 다섯 가지의 몸 색깔을 가진 동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기린은 다른 짐승들을 해치지 않는 특성 때문에 어진 성품을 상징하는 동물로, 유교에서는 기린을 공자(孔子)에 빗대어 표현하며 덕(德)과 인(仁)의 상징으로 여겼다. 기린 역시 상상의 동물이기 때문에 그림에서나 형상을 찾아볼 수 있다.
- 윤열수, 상상을 펼치기 신화속에서 만나는 상상의 동물, 2016
https://www.khs.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31235&bbsId=BBSMSTR_1008&pageIndex=51&mn=NS_01_09_01

상상의 동물들 청자들을 보고 있으면 현대의 SF나 서양의 고전용 같은 것들이 모두 여기에서 나왔나 하는 생각과 여기에서 가져가면 더 잘 만들 텐데 같은 줏대 없는 애국심이 여기저기 흩날린다. 특히나 이 기린은 여러 사이트에 나오는 공식사진에서는 굉장히 근엄하고 엄격하게 생긴데 비해, 이렇게 위에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진 성품'이 느껴지고야 만다.

다른 이야기인데, 그래서 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이 불빛과 공기를 사랑한다. 작품을 온전하게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의도를 가지고 형체가 드러냐아 한다. 때문에 관객의 동선 같은 것들로 가릴 수 없으며 동시에 온전하게 자기를 비춰주는 세심한 조명들로 세팅되게 된다. 게다가 오래된 유물들, 물감들을 배려하는 습도와 온도까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을 때마다 오롯이 걷는 그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청자 사자모양 베개. 미국 보스턴미술관에서 왔다. 오신김에 계속 있어줬으면.

사자모양 베개의 경우에는 보는 각도의 따라, 용맹한 사자의 카리스마가 다채로워진다. 조금 아래에서 보면 떠받친 베개 때문에 날 선 모자가 좀 더 용맹함을 보여주는 군인 같기도 한데, 조금만 고개를 숙여 얼굴을 쳐다보면 바보처럼 이를 보이고 있는 웃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렇게 다양한 각도로 보는 게 너무 좋다. 특히 청자의 색이 다채롭게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표정이 변화하고 주는 느낌이 달라지는 오프라인의 감각을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맨 왼쪽은 술병인데, 도대체 얼마나 드신 거지?

이번전시에는 국외 네 곳과 국내 25곳까지 서른여 곳의 미술관에서 찾아온 청자를 만날 수 있다.

한 시간으로는 부족하고, 또 오래도록 바라봐여 그 은은한 빛을 더 느낄 수 있는 청자에게는 더더군다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한다.

아.. 세 번 갈 수 있을까.

+ "4부 신앙으로 확장된 세상"은 아예 쳐다보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나왔다.

+ 고려 상형청자 중심으로 전시되다 보니, 기존에 단순한 고려청자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다음번에는 3층도 가야 한다!

고려청자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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