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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Nov 22. 2023

怪談 ; 새타니

멀고 먼 옛날 전국을 돌며 소금을 파는 소금 장수가 있었다. 서해안에서 만들어진 소금을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를 돌고 돌아 팔곤 했다. 짧으면 한 달 보름이 길면 두세 달이 걸리는 길이었다. 소금이 빨리 팔리면 집도 빨리 갈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하면 소금을 다 팔 때까지 걷고 또 걸어야 했다. 내륙으로 산으로 갈수록 소금을 비싼 값에 팔 수 있었기에 사내는 험한 산골을 오르내리느라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얼마 전 몸을 푼 아내가 보고 싶었다. 아내가 낳은 딸은 저를 닮지 않고 아내를 닮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방긋방긋 웃는 얼굴을 보면 조선 팔도 땅이 다 내 것이 된 것처럼 웃음이 났다. 보드라운 볼이며 팔이며 허벅지를 보면 험한 산을 오르는 다리에 영치기 힘이 들어간다. 


벌써 집을 떠난 지 달포가 지나간다. 

매일 걸음걸음에 달덩이 같은 아이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급하다. 이번에는 제법 좋은 값에 소금을 팔았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혹여나 소금 판 돈을 허투루 쓸까 다음에 팔 소금 한 가마니를 사고 집으로 향한다. 동네 외곽에 허름한 우리 집이 보인다. 눈앞에 집이 보이는데 거리가 도통 가까워지지 않는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집에는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다. 어디 마실이라도 간 걸까? 


싸리문을 열고 들어선 집은 내 집 같지 않다. 툇마루로 이어진 방문은 죄다 열려 있고, 빨래는 마당에 뒹굴어 사람 사는 집 같지 않다. 


- 임자 나왔어~ 어디 있는가? 임자~ 아가~ 복순이 어딨니? -


대답하지 않을 거란 것을 예감했지만 불러보고 온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값어치가 될만한 모든 것들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도적인 든 걸까?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우리 복순이는 괜찮은 걸까? 

짚신도 벗진 않은 채 온 집안을 뒤적이다 안방 아랫목에 놓인 이불이 불룩하다. 설마.... 


이불을 제친 사내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않고 말았다. 볼이 통통하던 복순이는 검게 말라죽어 있었다. 아기보에 쌓여 움직이지도 못하는 작은 여자 아이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버둥거리다 말라죽어 있었다. 누가 덮어 놓은 것인지. 덮어 놓은 것인지 모르겠다. 


사내는 아이의 시신을 품에 안고 온 동네를 돌았다. 만나는 이웃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사라졌다고 야반도주했다고, 워낙 외진 곳에 있는 집이라 둘러볼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어디로 간 것인지 누구로 간 것인지 이웃들도 아는 이가 하나 없었다. 


- 이런... 금수보다 못한 년.....- 


사내는 몇 날 며칠을 아이를 안고 울었다. 남자는 눈은 너무 울어, 한쪽 눈이 멀어 버렸다. 또 울면서 한쪽 허벅지를 계속 돌로 내리쳐 남자는 다리를 절게 되었다.  아이의 시신을 장사 지내지 않고 소금짐 밑칸에 자리를 마련해 안치하였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아이를 소금짐에 넣어 다녔다. 남자는 혹여나 사라진 아내를 찾기 위해 전국 팔도를 가리지 않고 걸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어느 한 마을에 도착했다. 


- 아휴~ 이 짠내 봐... 어디 소금장수가 왔나 봐? 아휴 난 소금 냄새가 제일 싫어~- 


담 너머로 교태스러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내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저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한때는 사내를 사랑한다 말하고, 또 태어난 아기에게 다정한 자장가를 들려주던 그 목소리를 사내는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게 다정했던 여인은 없다. 


-소금 사려~ 소금. 저 바다 건너온 귀한 분홍 소금입니다~ 소금 사세요~ - 


사내는 예전 아내에게 자랑했던 적이 있다. 바다 건너 분홍색의 소금을 팔면 우리는 부자가 될 거라고, 그 소금은 아주 곱고 비싸 부잣집에 비싸게 팔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아내는 그 소금 이야기를 좋아했고, 어서 부자가 되고 싶어 했다. 


-소금 장수요 여기 마님이 부르요 따라 오이소 - 


분홍 소금 잊지 않았구나. 


- 정말 내게 분홍 소금이 있는 게냐?- 


한쪽 눈을 잃고 다리를 저는 사내를 그 여인은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예전 남편에게 들은 분홍 소금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소금장수는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분홍 소금은 꼭 보고 싶었다. 


- 그럼요... 잠시만 계셔요 여기 아래칸에 있습니다.-


사내는 소금짐 아래칸에 잘 안치된 아기보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기는 소금기에 더 말라버렸지만 썩지 않았다. 여인은 유심히 보다 곧 그것이 자신이 두고 온 아기보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눈이 방울만큼 커졌다. 


-너!!!. 너....ㄴ -

-...어..마....엄...ㅁ  ㅏ...- 


사내가 아기 보자기를 풀자. 바짝 말라비틀어진 아이가 여인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썩지도 않은 아이가 어미에게로 조금씩 기어가자, 놀란 아이의 어미는 그대로 엎어져 급사했다. 





* 새타니란 말이 지칭하는 대상은 3가지인데, 하나는 어려서 죽은 아이의 혼으로 그중에서도 무당에게 영험을 내리는 귀신을 뜻한다. 주로 천연두 등으로 병사하거나 아사한 아이의 혼령. 사전에는 주로 태주(太主)라는 이름으로 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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