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3등의 저주
로또 3등에 당첨되려면 45개의 숫자 중 6개를 고르고, 그 가운데 5개를 맞혀야 한다. 확률은 1/35,724. 대략 3만 5천 명 중 한 사람. 퍼센티지로는 0.0028%. 학교에서 한 반에 꼭 한 명쯤은 괴짜가 있듯이, 로또에도 그런 숫자 맞히는 괴짜가 등장하는 셈이다. 당첨금은 100만~200만 원 정도. 분명 “공돈”이지만, 인생을 뒤흔들기엔 어정쩡한 돈이다. 냉장고 한 대 사고, 밀린 카드값 메우면 그만. 사실 3등은 로또가 주는 농담 같은 선물이다.
문제는 그 위다. 단 하나의 숫자를 더 맞히면 1등이 된다. 확률은 1/8,145,060. 0.00001227%. 숫자 하나가 당첨금의 세계를 1천 배 바꿔놓는다. 10억, 20억. 기사의 제목에 실릴 수 있는 액수다. 순식간에 사람의 표정이 바뀌고, 친척이 어디서 우르르 나타나며, 친구가 빌려간 돈을 갚겠다고 전화를 거는, 그런 돈이다. 결국 로또의 잔인함은 바로 여기 있다. “숫자 하나만 더.” 인생을 갈라놓는 경계는, 늘 코앞의 그 하나다.
나는 그 경계를 직접 본 사람이다. 어느 날, 고향집에 다녀오는 길에 무심코 산 복권이 덜컥 3등에 당첨됐다. 5개 숫자가 줄줄이 맞아떨어졌을 때 손이 떨렸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평생 욕을 잘 안 하는 내가 그날은 욕을 뱉었다. “뭐야, X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소리였다. 야근하던 사무실에 혼자 있었기에 망정이지, 옆에 사람이 있었다면 ‘얌전한 ○○씨’의 가면은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기쁨은 길어야 5분. 곧 아쉬움이 밀려왔다. 번호 하나만 더 맞췄더라면… 내 통장에 찍힐 액수는 130만 원이 아니라 13억 원이었다. 그러자 130만 원은 축복이 아니라 모욕처럼 느껴졌다. 은행 창구에서 직원이 “축하드립니다”라고 했을 때 속으로는 이렇게 외쳤다. “축하요? 방금 제 돈 10억이 증발했습니다.” 인류가 오래전부터 통계와 수학을 발명했지만,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논리 바깥에서 작동한다. 130만 원을 손에 쥐고도, 나는 10억을 잃은 패배자가 되었다.
며칠 전 신문에서 고독사한 남자의 기사를 읽었다. 5평 원룸, 쓸쓸한 죽음. 방 안엔 술병 대신 로또 영수증 상자가 가득 쌓여 있었다. 그중엔 2등 당첨 영수증도 있었다. 금액은 4,400만 원. 그러나 그 흔적은 어디에도 쓰이지 않았다. 가구도 없고, 사치품도 없었다. 그는 2등에 당첨된 이후 매주 수십만 원어치의 로또를 다시 샀다. 그렇게 4,400만 원은 다시 로또 용지로 환생했고, 결국 그는 빈손으로 떠났다. 사람들은 “허무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숫자 하나만 더.”
숫자 하나의 저주는 무섭다. 사람을 5평짜리 방에 가둬놓고도 매주 종이를 사게 만든다. 그게 바로 확률 0.00001227%의 악마적 유혹이다. 인간은 숫자에 약하다. 8백만 분의 1이라는 수치는 “불가능”이지만, 한 번 경험해본 사람에게는 “언젠가 또 올 수 있는” 신기루로 바뀐다. 내게 한 번 왔으니, 두 번 안 올 이유가 어디 있겠냐는 근거 없는 자신감. 그것이 집착을 낳고, 집착은 삶을 삼킨다.
나 역시 잠시 그 늪에 빠졌다. 같은 요일, 같은 시간, 같은 판매점. 어쩌면 로또도 미신의 또 다른 얼굴이다. 행운이 온 자리에 다시 가면 행운도 돌아온다고 믿는 것. 내가 하던 짓이 딱 그랬다. 한동안은 그게 이상한 노력처럼 느껴졌다. 공부는 못해도 로또 공부는 한다는 자기기만. 다행이라면, 내가 다니던 판매점이 이사 가면서 그 습관도 끊겼다는 것.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상실감이 더 컸다. 마치 1등으로 가는 문이 눈앞에서 닫힌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 기억을 “웃픈 추억”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때때로 떠오른다. 130만 원을 들고 집에 들어오던 날, 나는 10억을 잃은 사람처럼 울적했다. 행운은 원래 없던 돈인데도, 내 것이었다는 착각은 너무나 쉽게 스며든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비루하다. 있던 돈을 잃으면 슬프고, 없던 돈을 얻어도 더 큰 걸 놓쳤다고 슬프다. 결국 로또는 우리에게 농담 하나를 던진다. “좋아, 네게 돈을 줄 수도 있지. 대신 네 주머니에서 희망을 뽑아가고, 매번 떨어질 때마다 네 자존심도 챙겨간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로또 3등은 행운일까, 저주일까. 130만 원을 손에 쥔 사람에게 축복일까, 아니면 10억을 빼앗긴 패배자일까. 아마 정답은 없다. 다만 분명한 건, 로또가 가르쳐준 진실 하나다. 행운은 크기가 문제가 아니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사람을 구원하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로 안다. 로또는 종이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긁는 칼날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