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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Dec 14. 2023

당신의 무난한 삶을 위하여!

난 내 삶의 끝을 본 적이 있어

내 가슴 속은 갑갑해졌어

내 삶을 막은 것은 나의 내일에 대한 두려움

반복됐던 기나긴 날 속에 버려진 내 자신을 본 후

나는 없었어 그리고 또 내일조차 없었어


-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홈, 1995>


나는 무난한 삶을 살아왔다. 공부를 못하지 않았고, 친구를 잘못 만나지 않았고, 대학을 못 가지 않았다. 연애도 못하지 않았다. 직장을 못 잡지도 않았고, 결혼을 못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의 지원이 적지도 않았다. 아이가 없지도 않다. 모든 것들이 결핍되거나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 넘치는 것은 없지만 모자란 것도 없는 나는 무난한 삶을 살아왔다. 


그 무난한 삶이 때로는 약점이 되곤 한다. 직장을 잡거나, 인터뷰를 할 때면 어떤 어려움을 직면했는지 어떻게 극복했는지 묻곤 한다. 나는 딱히 어려움이 없었다. 프로젝트에 대한 것들은 당연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니 쉽지 않았던 것일 뿐. 성장과정이나 삶에 부족함이 있어도 어려움은 없었다. 부족함을 어려움이라 한다면, 극복하기보다 받아들이며 인정한 것일 뿐 해결책도 극히 단순하고 무난한 방법이었다. 견딘다. 해결책을 찾는다. 행한다. 나는 그렇게 무난하게 해결했다.


때로는 무난한 삶이 재미없어 보였고, 시시해 보였다. 영화, 드라마, 소설, 각종 이야기들은 주인공의 희로애락과 무난하지 않은 일들을 해결하는데서 오는 카타르시스와 쾌감들을 뿜어냈다. 그 쾌감에 중독된 나는 나의 삶의 무난함이 죄악 같았다. 무난한 삶을 사는 모습은 게으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고, 인생에 충실하지 못한 듯 느껴졌다. 


무난한 삶은 어렵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인생의 해결 가능한 범위 안에서 문제가 일어나고 수습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경우다. 


첫째. 내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자원이 풍부할 때. 한마디로 내가 잘났을 때 인생은 무난해진다. 다른 사람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도 내게 해결하기 쉽다면 내 인생은 무난한 것이다. 무난과 험난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누군가의 무난함이 어떤 이의 고난과도 같다. 내가 인생을 무난하다 느꼈다면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뛰어난 셈이다. 


두 번째. 내가 정말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은 내게 오기 전에 미리 차단된 것이다. 금전적인 어려움의 경우 개인의 능력을 벗어나는 경우가 쉽게 다가온다. 사고 싶은데 살 돈이 없다. 써야 하는데 쓸 돈이 없는 경우가 흔하다. 작게는 이런 문제부터. 집이나 차. 등록금 등의 큰 문제들도 내게 문제로 다가오기 전에 내 주변에서 문제를 해결해 놓은 경우다. 대학 등록금 대출을 받지 않아도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월세를 벌지 않아도 되는 전세를 구해주셨다. 이런 일들은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미리미리 걸러주신 내 주변의 능력이다. 이런 경우도 삶은 무난해진다.


무난한 삶이 어려운 이유는 내 능력, 내 주변의 능력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 이룰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무난한 삶에 지루해한다면, 당신은 생각보다 꽤 능력 있는 사람에 꽤 능력 있는 집안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당신은 매일의 끼니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웬만한 공과금에 벌벌 떨지 않아도 된다, 직장 상사의 괴롭힘이나, 실적에 대한 압박도 어느 정도 느끼지 않는 두루 갖추고 있는 인재인 셈이다. 당신은 꽤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이런 무난한 삶을 나는 내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이 하나의 질문에 내 인생은 무난하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 다가올 험난한 일이 걱정이 아니다. 내 아이에게 다가올 험난한 일들이 혹여 아이를 상하게 할까 걱정이다. 날아오는 돌을 모두 막아주지 못할까 걱정이다. 나아가 내 이런 걱정이 아이의 자립심을 상하게 할까 걱정이다. 무난했던 삶이 갑자기 험난하게 다가왔다.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는 이런 감정을 어떻게 극복하셨을까? 어떻게 이런 두려움 속에서 우리들을 키우고 비를 막아주고, 바람을 치워주셨을까? 내 인생의 무난함은 부모라는 든든한 우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이제 나는 내 아이의 우산이 되고 있다. 이제야 내 인생이 마냥 무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난 내 삶의 끝을 본 적이 있어

내 가슴 속은 갑갑해졌어

내 삶을 막은 것은 나의 내일에 대한 두려움

반복됐던 기나긴 날 속에 버려진 내 자신을 본 후

나는 없었어 그리고 또 내일조차 없었어


-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홈, 1995>


이제야 이 노래의 가사가 무겁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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